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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잊지 않는 것이 국가의 품격 나라 지킨 경험 살려 ‘일류보훈’ 이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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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영웅’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2002년 6월 29일은 2002 한일월드컵 대한민국과 터키의 3·4위 결정전이 예정된 날이었다. 전 국민이 축제 열기로 들뜬 그때, 북한 경비정 두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 공격했다. 적군은 무차별 포격을 가했고 우리 고속정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이었던 윤영하 대위(소령 추서)는 적의 공격이 시작된 지 약 5분 만에 목숨을 잃었다. 지휘관마저 사라진 아수라장이 된 함선. 이때 남은 병사들의 정신을 다잡은 건 이희완 중위였다. 부정장이었던 그는 윤영하 대위를 대신해 25분간 전투를 이끌며 북한군 13명을 사살하고 북한 경비정을 퇴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역시 적의 포탄이 두 다리를 관통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일궈낸 ‘승전’이었다. ‘제2연평해전(이하 연평해전)’이 벌어진 그날의 상황이다.
12월 11일 취임한 이희완 국가보훈부 신임 차관은 ‘연평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공훈으로 2002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이 차관 임명에 대해 “양 다리에 총상을 입고도 NLL을 사수한 국가의 영웅”이라며 “영웅이 대우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석열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인선”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는 윤석열정부의 주요 국정기조다. 지난 6월 62년 만에 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차관은 연평해전 이후에는 해군사관학교와 합동군사대학에서 교육 및 정책 담당 교관으로 일하면서 군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과 강연 활동을 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잃고 왼쪽 다리는 8cm의 관통상을 입는 등 심각한 부상으로 배에 탈 수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청년에게 확고한 안보관과 국가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차관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전쟁영웅들의 전사자 명비가 있는 회랑을 함께 걷는 동안 그의 걸음은 약간 절뚝거리긴 했지만 되레 동행인들이 속도를 내야 할 만큼 힘이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사용하면 몸의 균형을 잡는 데는 좋지만 의족을 착용한 다리의 근육을 반밖에 사용할 수 없어 온전히 내 힘으로 걷는다”고 했다. 서울지방보훈청으로 자리를 옮긴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결의는 그 꼿꼿함을 닮아 있었다.



신임 차관으로 임명된 소감이 어떤가?
보훈부 차관은 장관을 보좌해 240만 국가보훈대상자를 예우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적지 않은 부담감이 든다. 대단히 영광스러우면서도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민주화 이후 현역 대령이 곧장 차관에 기용된 것은 처음이다.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왜 내가 발탁됐는지 지나온 삶을 돌이켜봤다. 23년간 해군으로 복무하며 적에게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현장에 있었고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유공자가 됐다. 이후에는 호국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보훈부 차관이라는 중책을 맡겨주신 건 국가수호 현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국가유공자와 제복근무자,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연평해전 당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어떻게 전투를 지휘했나?
전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참수리 357호정 전우들의 팀워크는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을 격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27명 전우의 머릿속에 명확히 자리잡고 있었다. 평소 훈련해온 대로만 하면 되는 거였다. 포탄이 다리를 관통했을 때에도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 그만큼 전투 상황에 몰입돼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린 뒤에는 말하기조차 힘들었지만 당장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저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보훈의 의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잊지 않는 데 있다. 한일월드컵 기간 벌어진 연평해전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연평해전 유공자와 유가족들은 아직까지도 당시 정부에 섭섭해 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그들이 원한 만큼 희생에 대한 예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품격 있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훈 문화를 사회 저변에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어떤 부분에 대해 서운해 하나?
전사한 여섯 용사의 희생에 대해 당시에는 ‘전사’라고 하지 않고 ‘순직’이라고 했다. 전사라는 말은 정규 전투 상황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게 붙이는 말이라는 거다. 순직으로 처리되면 보상금도 아주 적다. 대표적인 예로 연평해전으로 숨진 박동혁 병장의 사망 보상금이 3000여만 원으로 기억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대가가 그 정도밖에 안 됐다는 거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께서는 전우들 조문도 하지 않고 한일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일본으로 갔다. 이에 대해 전우와 유가족이 분노했다.

현재 지원이나 보상은 더 늘었나?
여섯 용사는 보훈부에 전몰군경으로, 예비역 전우들은 20년에 걸쳐 전상군경으로 등록됐다. 유가족과 부상 전우에게는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취업·의료·대출·복지 등 각종 보훈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예우하는 것이 첫 번째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때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해 ‘8인의 영웅’과 함께 한미동맹 70주년 오찬을 했다. 8인의 영웅은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2010)’,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2010)’ 등에서 나라를 지키다 상흔을 입은 이들을 말한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천안함 함장을 지낸 최원일 예비역 대령과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국가 정상이 공식석상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다. 그 대상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무척 영광스러웠다. 당시 현지에서 느낀 보훈 문화도 인상 깊다. 해군 정복을 입고 거리를 걷는데 지나가던 미국 시민들이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노고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더라. 특별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제복 입은 이들을 향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미국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파워도 세계 일등이지만 소프트파워, 보이지 않는 시민의식이 최강국의 발판이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미래세대로 갈수록 보훈의식은 물론 전쟁에 대한 경각심, 애국심이 옅어지는 것 같다.
교육현장에서 느낀 건 청년들의 머릿속엔 ‘(6·25전쟁) 휴전’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거다. 젊은 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전쟁과 상관없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북한이 도발한 게 4000번이 넘는다. 그런 사건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줬다. 애국심, 보훈의식이 없는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적 위기가 왔을 때 개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보훈을 위해 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은 뭔가?
제도적으로 봤을 땐 물질적인 보상도 중요하다.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은 현실적인 문제, 즉 경제적 부분에서 고충을 겪는 분들이 많다. 정부에 따라 보상금 차이가 크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허용하는 한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상해야 한다. 보상금의 범위를 법적으로 정할 필요도 있다.

보훈 대상자를 위해 보훈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
보훈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지난 6월 대전보훈병원 재활센터의 문을 열었고 12월에는 중앙보훈병원 치과병원과 부산보훈요양병원을 완공했다. 보훈 대상자의 정신건강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보훈병원의 심리재활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치료-신체재활-심리재활’로 잇는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에 678곳인 보훈병원 위탁병원을 2027년까지 1140곳으로 확대해 유공자 고령화에 대비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집배원이 유공자 자택을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파악하면 보훈부가 신속히 대응하는 ‘일류보훈 복지우편서비스’, 전국 권역별로 운영 중인 ‘찾아가는 보훈심사회의’,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의 전국 확대’ 등 보훈 대상자를 최고로 예우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보훈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앞으로 큰 도움이 되겠다.
2022년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후원단과 함께 활동했다. 히어로즈 패밀리는 전몰·순직 군경의 남겨진 미성년 자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류보훈의 가장 적합한 정책 중 하나라고 느꼈다. 순직한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줌으로써 자녀들에게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밖에 주로 제도개선 분야에서 역할을 했다. 저소득 보훈 대상자 지원, 보훈단체 관리·감독을 위한 법률 개정 등과 관련해 여러 위원과 좋은 의견을 주고받은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23년 보훈처에서 보훈부로의 승격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장의 실질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 국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거다. 즉 보훈을 국가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국민의 기대감도 커졌다. 비유하자면 나를 지원해주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격상된 거다. 보훈부 입장에서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다.

보훈부 차관으로서 목표는?
국가유공자 중 상당수는 전쟁이나 전투에서 다치거나 돌아가신 분들이다. 보훈이 국방, 안보와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졌던 한 사람으로서 이 세 가지를 통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정책, 품격 있는 보훈정책을 만들어나가겠다. 이와 함께 세대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를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보훈의 주체는 앞으로 미래세대로 옮겨올 것이다.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한 콘텐츠, 보훈에 대한 콘셉트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보훈 정책 수립과 보훈 문화 확산이라는 양축을 통해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데 성심을 다하겠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이희완 차관은?
197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 54기로 입교해 2000년 항해소위로 임관했다. 스물여섯에 참수리 357호정의 부정장으로 제2연평해전의 승리를 이끌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오른쪽 다리를 잃고 왼쪽 다리에는 8cm의 관통상을 입는 등의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전쟁이나 전투 중 본보기가 될 만한 행위로 장애인이 된 경우 군복무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전역하지 않고 군에 남았다. 이후에는 ▲해군사관학교 심리학 교수 ▲해군대학 작전전술학 교관 ▲해군본부 인재개발 및 교육정책담당 등으로 복무했다. 12월 11일 국가보훈부 차관으로 취임하며 대령 전역했다.

제2연평해전
잊지 않아야 할 승전의 기억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9분 북한 경비정 두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며 시작됐다. 북한군은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전차에 장착하는 85㎜ 대형 화포를 경비정인 등산곶 684호에 설치한 뒤 고속정 참수리 357호정을 선제 기습 포격했다. 이 공격으로 정장 윤영하 대위가 쓰러지자 부정장이던 이희완 중위가 25분간 전투를 지휘했다. 장병들은 적군에 맞서 즉각 응사했고 참수리 358호정 등 아군의 지원 사격으로 오전 10시 50분 등산곶호는 반파된 상태로 퇴각했다. 13명이 사살된 채였다. 우리 장병은 6명이 전사했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현재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에는 258개의 피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해군은 무장을 강화한 유도탄고속함을 차례로 도입하면서 제2연평해전으로 목숨을 잃은 여섯 용사의 이름을 붙였다. 첫 번째 유도탄고속함인 ‘윤영하함(PKG-711)’을 비롯해 ‘한상국함(PKG-712)’, ‘조천형함(PKG-713)’, ‘황도현함(PKG-715)’, ‘서후원함(PKG-716)’, ‘박동혁함(PKG-717)’이다. ‘서해교전’이라 불리던 전투는 이명박정부 들어 ‘제2연평해전’으로 재명명됐다. 전투가 발생한 지 20년 만인 2022년 승전기념식이 처음 열렸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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