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 된 학교서 ‘오징어 게임’ 찍고 화개산 전망대 올라 북녘땅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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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 교동도
“이번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공기놀이, 달고나 뽑기….’ 어린 시절 추억의 전통놀이에 아찔한 긴장감을 장착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최종 시리즈가 6월 말 공개되면서 전 국민 추억의 게임도 마무리됐다. 이제 스크린을 벗어나 진짜 시간여행을 원한다면 인천 강화군 교동도가 첫손에 꼽힐 것이다. 드라마의 일부 장면 촬영지가 이곳에 있는 데다 5분 거리의 대룡시장은 1960~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에 ‘레트로 여행’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추억여행은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달려가면 시작할 수 있다. 굳이 촘촘한 계획을 짜지 않더라도 주말이나 한가한 평일에 훌쩍 떠나기 좋다.
교동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6·25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며 이곳에 마을을 형성했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 고작 2~3㎞ 떨어진 곳이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옛 연백군)이다.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과거 섬 전체가 군사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평화의 섬’이란 수식어 역시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탓에 70여 년의 역사가 오롯이 보존돼 있는 모습에서 붙은 것이다. 북한 땅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실향민들이 재현한 이북의 음식을 맛보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어린 이정재’ 뛰놀던 113년 역사 ‘교동초’
교동도는 2014년 교동대교가 완공된 뒤 강화도와 연결되면서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다만 여전히 섬 전체가 민간인통제선 너머에 있기 때문에 차량으로 출입하기 위해선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교동대교 입구에서 차를 세우는 해병대원의 등장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신분증만 제시하면 바로 패스다.
‘오징어 게임’ 시청의 여운이 가시기 전, 곧장 드라마 촬영지인 교동초등학교로 향했다. 섬 초입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교동제비집 앞에 주차를 한 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기훈(이정재 분)과 상우(박해수 분)가 뛰놀며 땅바닥에 줄을 긋고 오징어 게임을 하던 운동장이 바로 이곳이다. 기훈의 어린 시절로 문을 여는 드라마의 오프닝이 교동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덕에 짧은 등장에도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면 흑백의 화면이 컬러로 재생되는 느낌이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축구 골대와 담벼락 너머 주택 등 드라마 속 풍경을 찾는 재미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개교 100주년 기념비다. 한반도 모양을 그대로 본뜬 모습이 독특한데 드라마에선 비석에 새긴 글씨가 지워진 탓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교동초등학교는 1912년 교동공립학교로 처음 문을 열었다. 그 역사가 113년이나 됐다니 입이 떡 벌어진다. 1회 졸업생 다섯 명을 배출하며 시작된 학교의 역사도 학교 바깥 담벼락에 빼곡히 기록돼 있다. 괜히 드라마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소로 이곳을 낙점한 게 아니구나 싶다.
참기름 밀크티·강아지떡… 실향민이 만든 ‘대룡시장’
추억여행은 학교 바로 앞에 자리한 대룡시장으로 이어진다. 전쟁통에 교동도로 떠밀려온 1만 명의 실향민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면서 정착해 만든 곳으로 북한의 연백시장을 그대로 본떴다고 한다. 1960~70년대 골목의 생김새와 상점의 간판까지 그대로 보존한 모습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시장의 풍경을 자아낸다. 덕분에 이곳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주말이면 9000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대룡시장 최고의 인기상품은 단연 먹거리다. 강화도 쌀로 만든 떡과 식혜, 서해 바닷바람으로 쫀득하게 말린 각종 건어물, 족히 사람 팔뚝 길이는 될 법한 꽈배기는 물론 수제 쌍화차와 팥빙수, 참기름 밀크티 등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열풍을 타고 MZ세대의 입맛까지 저격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시장인심은 또 어찌나 후한지 발걸음을 붙잡고 “한 입 잡숴보라”는 상인들의 권유에 일일이 응하다 보면 시식만으로도 금방 배가 두둑해진다.
그중에도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룡시장의 명물 ‘강아지떡’이다. 비가 새는 판잣집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향의 맛을 잊을 수 없던 실향민들은 이북 연백의 토질과 흡사한 교동 평야의 쌀로 인절미를 빚었다. 붉은 팥소를 품은 새하얗고 동그란 찹쌀떡은 이름 그대로 강아지 모양을 하고 있다. 허연 쌀가루를 손에 묻힌 채 한 입 권하는 떡집 사장의 입에선 아버지 시대의 역사가 술술 흘러나왔다.
“군량미로 쓸 쌀을 약탈해가던 일제 순사들은 조선인들이 쌀로 술을 빚는 것까지 단속했답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떡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몰래 인절미를 만들었는데 떡을 네모지게 자르지 않고 동그랗게 빚은 모양이 꼭 강아지 같았더랬죠. 순사들이 칼로 떡을 찌르며 ‘이건 인절미가 아니고 강아지떡이다’ 하고 조소를 보냈다고 해요.”
김포보다 가까운 북녘땅 배경으로 ‘인생샷’ 한 컷
교동도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화개산 전망대다. 섬 최고봉인 259m의 화개산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에서 교동도를 감싸고 있는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다. 고작 약 2.5㎞ 거리를 두고 북녘땅을 배경으로 색다른 ‘인생샷’을 찍을 수 있어 포토스폿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걷거나 모노레일을 타거나. 일행 중 어르신이나 어린이가 있다면 모노레일 타기를 추천한다. 약 20분이면 전망대 앞에 도착하는데 올라가는 내내 산 아래 드넓게 펼쳐지는 화개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걸어서도 40분이면 족하다.
산 정상에 다다르면 독창적인 디자인의 전망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4층 높이의 전망대는 교동도에 서식하는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본떠 만들었는데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전망대 스카이워크의 바닥 일부는 산 아래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게 강화 유리로 만들어져 공중 위를 걷는 듯하다. 아찔한 기분에 잠시 뒷걸음질하려던 찰나, 눈앞에 시원하게 자태를 드러낸 북녘땅이 방문객의 몸을 끌어당긴다. 연백평야와 개성 송악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실제로 이곳에선 우리 땅인 김포보다 북한이 더 가깝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전망대에선 고구저수지와 교동벌판 등 교동도의 명물은 물론 석모도, 볼음도 등 강화의 수려한 다도해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니 애써 먼 여행에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늘여행’을 끝내고 뭍으로 내려오면 화려한 정원여행이 시작된다.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화개정원은 강화군에서 2023년 스카이워크와 함께 조성한 최신식 정원이다. 특히 ▲물의 정원 ▲역사문화정원 ▲추억의 정원 ▲평화의 정원 ▲치유의 정원 등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돼 있어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갖가지 화초와 수목이 늘어선 산책길 사이로 강화의 상징인 저어새 등 특별한 조형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넓은 정원을 걷기만 하는 게 심심하다면 ‘솥뚜껑 스탬프 투어’에 도전해보자. 화개정원 곳곳엔 8개의 솥뚜껑 조명물이 설치돼 있는데 이 중 6개 이상을 찾아 인증하면 강화 향토쌀 ‘나들미’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솥뚜껑’이냐고? 화개산의 형상이 마치 솥뚜껑을 덮어둔 것 같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들의 향연 속 새까만 솥뚜껑이 놓여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초록의 정원을 걷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조선 연산군의 유배지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뒤 중종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폐위되고 교동도로 유배됐다. 이곳엔 연산군이 유배될 당시 모습과 머물던 초가집이 재현돼 있다. 그 옆에 자리한 ‘유배문학관’에선 그간 교동도로 유배를 당한 이들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교동도는 서울과 가까운 섬이라 격리와 감시가 쉽다는 이유로 연산군 외에도 고려시대 희종, 고종 등과 조선시대 광해군, 안평대군 등 1000여 년 동안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번 주말, 도심을 벗어나 교동도로 ‘셀프 유배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자연이 반기는 섬의 품 안으로 숨어드는 경험은 그 자체로 나를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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