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만들기 할머니 강사단이 간다! ‘손맛 잇기’로 노인 돌봄·일자리 한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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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5%를 넘어섰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특히 강원도는 2021년 기준으로 여성 노인이 전체 노인 가구의 69.3%에 달한다.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 노인 가구가 많지만 성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원주 지역에서는 여성 노인의 일자리 창출과 고령자 돌봄을 연계한 ‘손맛 잇기’ 프로젝트가 5월부터 8월까지 진행됐다. 9월 초 프로젝트 추진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할머니 강사단 10명 선발
손맛 잇기는 ‘할머니 강사단’과 취약계층 고령자가 모여 고추장을 만들어보는 체험이다. 완성된 고추장은 지역 독거노인에게 전달된다. 전통 식문화의 ‘손맛’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건강한 식생활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돌봄이 동시에 만들어지는 효과다. 지역 기관들이 자원과 역량을 결집하는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방식으로 운영돼 사회문제 해결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할머니 강사단’은 원주노인소비자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모집됐다. 지역에서 강사 활동을 희망하는 60~70대 여성 10명이 선발돼 농업회사법인 ‘초맘’에서 5월 한 달 동안 관련 교육을 받았다. 이후 민간자격증을 취득하며 본격적인 강사로 나섰다. 초맘은 춘천의 여성 농업인들이 함께 만든 회사로 건강한 먹거리 만들기를 지향한다.
최근 손맛 잇기 수업이 열린 원주 명륜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굵은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어르신들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왔다. 이날 수업은 두 차례 진행됐고 회차마다 12명 안팎이 참여했다. 참석자의 대부분은 독거노인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에 머물렀을 시간이지만 “할 일이 생겨서 집 밖에 나오니 너무 좋다”고 입을 모았다.
강사 양국순(72) 씨의 인사말로 수업이 시작됐다. 그는 “여러분 앞에 서니 설레고 긴장됩니다. 곧 함께 고추장을 만들어볼 텐데 생각보다 훨씬 쉽고 간단해서 깜짝 놀라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굳어 있던 참가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본격적인 실습에 앞서 양 씨는 고추장의 유래와 전통 장류를 소개했다. “우리나라 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교실 여기저기서 손이 번쩍 들렸다. 참가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된장!”, “간장이요”, “청국장도 있지”라고 외치자 교실은 금세 활기를 띠었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맞장구 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에 교실은 점점 더 북적였다. 동네 장터 한편에서 반상회라도 열린 분위기였다.
이어 참가자들 앞에 ‘고추장 만들기 키트’가 놓였다. 초맘이 개발한 키트로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숙성 조청, 재료 섞을 통이 준비돼 있었다. 참가자들이 차례대로 재료를 붓고 젓자 통 안에서 걸쭉한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고추장이 되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요리에 자신 없다던 한 참가자는 “내 손으로 이런 걸 만들 줄은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교실은 장 냄새와 이야기 소리로 가득 찼다. 서로 옆자리 참가자의 통을 들여다보며 “좀 더 저어야 한다”며 훈수를 두기도 하고 “옛날엔 마당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장을 담갔다”면서 옛날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잊혀가던 기억과 생활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 위해 지역기관들 힘 합쳐
양 씨가 준비해온 삶은 감자와 오이를 꺼냈다. 참가자들은 감자·오이에 자신이 직접 만든 고추장을 곁들여 맛을 봤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다”, “옛날에 먹던 고추장 맛이 난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 참자가는 “집에만 있으면 말수가 줄어요. 여기 오면 손도 쓰고 말도 하게 된다”고 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날씨가 안좋아서 망설였는데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이 나이에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삶의 활력소가 생겼다”는 반응도 있었다.
양 씨는 “고추장 하나를 두고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음식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손맛 잇기는 양 씨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2024년 말 몸이 아파 수술을 받은 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우울감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고 싶어 용기를 내서 강사단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한 달간 고추장 이론과 만들기 강의법 등을 익히고 수료증을 손에 쥐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는 강의 내용을 녹음해 자녀들에게 보내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강의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과 즐거움을 주고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다는 데 큰 자긍심을 느낀다. 손맛 잇기가 잘돼서 꾸준히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손맛 잇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기관이 힘을 보탰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전반적인 기획과 협업 조정을 맡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교육 운영비와 재료비 등을 지원한다. 명륜종합사회복지관은 돌봄 대상자를 모집하고 체험공간을 제공한다.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교육장소를 지원하고 청소년 사회적경제 체험프로그램과 연계해 실습 기회를 넓힌다. 초맘은 교육 운영과 자격증 발급 및 고추장 체험 키트 제작을, 원주노인소비자사회적협동조합은 참여 노인 발굴과 사업 운영을 담당한다.
참가자 85% “외로움이 줄었다”
손맛 잇기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고령층이 집 밖으로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 참여가 확대되고 사회적 고립감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네 달 동안 총 303명(남성 53명, 여성 250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80세 이상이 56%로 가장 많았고 ▲75~79세(23%), ▲70~74세 (16%), ▲65~69세(5%) 순이었다. 참가자의 93%는 ‘활동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고 89%는 ‘정서적 도움이 됐다’, 85%는 ‘외로움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여성 노인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창출 효과도 뚜렷하다.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전원이 ‘심리적 사회 기여도’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사회적기업과 공공기관이 함께하는 구조로 운영돼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한 점도 주목된다. 기관 간 자원과 역량이 연계되면서 사회서비스 확대는 물론 사업 확장 가능성도 커졌다. 뿐만 아니라 화학첨가물 없는 고추장이 고령친화 식품으로 보급되면서 건강한 식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시범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지속 여부가 논의될 예정이다. 정승국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고령화, 돌봄, 일자리 등 지역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한 기관이나 단체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공공과 민간, 시민이 협력해 지역의 지속가능한 변화와 사회적 가치 확산을 이끄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계속해나가겠다”고 전했다.
이근하 기자
제3차 노후준비 지원 기본계획 수립
의료·요양 통합돌봄 체계 구축, 초고령사회 대응
정부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준비하는 노후를 위한 정책을 논의하고 의료·요양 통합돌봄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7월 말 ‘제3차 노후준비 지원 기본계획(2026~2030년)’ 수립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노후준비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은 노후준비지원법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노후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5년마다 수립·시행하는 법정 중장기 계획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김평식 부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초고령화 완화를 위한 제도 마련과 노후준비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남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제2차 기본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고 3차 기본계획 수립의 핵심방향으로 ▲서비스 추진체계 간 협력 및 연계 강화 ▲인공지능(AI) 기반의 사업 전환 등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9월까지 기본계획 초안을 마련하고 관계부처 의견조회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12월 중 3차 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8월 6일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의료·요양 통합돌봄 시범사업 추진현황을 점검했다. 의료·요양 통합돌봄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시·군·구를 중심으로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하는 것이다. 2026년 3월 27일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 장관은 시범사업의 운영 현황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개선점을 확인했다.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필요한 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했다. 복지부는 이번 현장 점검을 계기로 통합돌봄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정 장관은 “돌봄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로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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