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어르신 더 나은 삶을 위해! “폐지 비싸게 사서 예술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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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노인 빈곤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이 40.4%다. 회원국 노인 빈곤율 평균(14.2%)의 세 배 수준으로 압도적 1위다.
돈을 벌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거리로 나가 폐지를 줍고 이를 고물상에 팔아 번 돈으로 생활한다. 2023년 정부가 처음으로 실시한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폐지 줍는 노인은 전국에 4만 2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76세로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폐지를 수집했다. 월수입은 15만 9000원, 시간당 수입은 1226원에 그쳤다. 이는 2023년 법정 최저임금(9620원)의 12.7% 수준이다. 이들은 폐지 수집을 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54.8%)’을 가장 많이 꼽았고 ‘용돈이 필요해서(29.3%)’라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폐지 수집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일을 구하기 어려워서(38.9%)’가 1위였다. 향후에도 폐지 수집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88.8%나 됐다.
하지만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잇기란 쉽지 않다. 수입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 폐기물통계정보서비스에 따르면 2022년 9월 ㎏당 108원 수준이던 폐지(골판지) 가격은 2025년 4월 기준 81.3원까지 떨어졌다. 100㎏을 주워 팔아도 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유통 구조상 가장 낮은 단계를 담당하는 고물상에 가져다 판매하기 때문에 실제 벌어들이는 수입은 공식 가격보다 훨씬 적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는 이 문제에 주목했다.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일은 굉장히 힘들고 위험해요.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턱없이 적죠. 하지만 폐지 줍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요. 생계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니까요. 무엇보다 일하기를 원하세요. 이들의 노동환경과 임금체계를 개선해보자,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자고 다짐했어요.”
러블리페이퍼는 어르신들이 수집한 폐지를 고물상보다 비싸게 매입한다. 매입한 폐지로는 업사이클링(새활용)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제품 제작을 위해 지역 어르신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제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다시 어르신들의 안전과 정서 등을 지원하는 선순환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부터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러블리페이퍼는 더 많은 어르신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2024년 12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다시 출범했다.
폐지 수집 노인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결혼을 좀 일찍 했다. 20대 때 대학교도 졸업하기 전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입던 옷이나 공부하던 책을 가져다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삶에 안정기가 찾아왔다. 20대 때는 치열하게 나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30대 때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거리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을 보게 됐다. 매일 비슷한 시간·장소에서 손수레를 밀며 폐지를 줍는 어르신과 마주치면서 문제집과 전공서적을 고물로 팔던 20대 때가 생각났다. 몇 차례 경험하진 않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꾸준히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문득 의문이 들더라. 큰돈도 되지 않은 일을 왜 계속하는 거지?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대국이고 문화 강국인데 왜 노인의 삶은 이렇게 비참한 걸까? 이들이 더 나은 보상을 받고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어르신의 폐지를 비싸게 구입하는 거였나?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팔아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너무 적다. 폐지 시세가 워낙 낮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물상보다 비싸게 폐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폐지를 활용해서 제품을 만들어 팔면 수익이 생길 거고 그걸로 다시 어르신들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폐지는 얼마나 비싸게 구입하나?
시중 폐지 가격의 6배 정도 비싸게 구입한다. 폐지 시세가 1㎏에 50원이면 300원 정도에 구입한다. 다만 폐지 중에서도 깨끗하고 새활용이 가능한 폐박스 위주로 선택한다. 두껍고 촘촘한 폐박스를 활용해서 제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을 만드나?
대표적인 제품은 ‘페이퍼캔버스’다. 폐박스를 가로 23㎝, 세로 16㎝로 자른 뒤 겹겹이 쌓은 후 천을 붙여 씌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페이퍼캔버스에 재능 기부 작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캘리그래피(멋글씨)를 쓴 ‘페이퍼캔버스 아트’, 직접 페이퍼캔버스를 만들어볼 수 있는 DIY키트 등도 제작·판매 중이다. 그 수익을 어르신들의 생계와 안전, 여가를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종이가죽으로 만든 제품도 있다.
폐지를 새활용하다보니 다른 버려지는 소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단체급식소 등에서 버려지는 쌀 포대와 호텔에서 쓰고 버리는 리넨 등이다. 쌀 포대는 종이로 만들었지만 코팅돼 있어 보통의 폐지와 같이 재활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스란히 버려지는데 러블리페이퍼는 이 쌀 포대와 리넨을 활용해 ‘종이가죽’을 개발했다. 특허까지 받은 종이가죽으로 가방과 소품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자원 순환 효과도 있겠다.
러블리페이퍼가 1호 캔버스를 400개 만들면 나무 1그루가 보존되고 캔버스 1개당 17g의 탄소가 절감된다. 종이뿐 아니라 쌀 포대, 리넨을 새활용해 얻는 자원 순환 효과도 크다. 이런 활동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우리는 그래서 ‘자원재생활동가’라고 부른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위해 경량 손수레도 개발했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주로 쓰는 손수레는 무게가 50~70㎏에 달한다. 폐지 무게까지 더하면 100~200㎏으로 상당하다. 손수레 너비는 120㎝ 정도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기 때문에 인도 통행이 불법이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선 차도로만 통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비 1m 이하, 무게 17㎏으로 가볍고 안전한 손수레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안전 브레이크도 달아서 손수레를 멈춰놓고 작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근력이 부족한 어르신들을 위해 전동 손수레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지역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한다.
폐지를 비싸게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건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폐지 줍는 어르신, 지역 어르신을 고용해 가방도 만들고 페이퍼캔버스도 만든다. 어르신들이 작업하기 쉽도록 도구도 개발하고 작업 과정을 매뉴얼화했다. 일을 하면서 소득도 얻고 정서적 교감도 하면서 어른신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걸 느낀다. 지금까지 우리 사무실을 거쳐간 어르신은 총 스무 분 정도다. 지금은 세 분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처음에는 폐지 수집 어르신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어르신 덕분에 골목이 깨끗해졌다, 힘든데도 매일 일을 하시는 게 대단하다며 인사를 했더니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지 않나.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우리를 걱정해주고 음식도 나눠준다. 이런 정을 느끼며 우리도 책임감을 느낀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게 보람 있는 것 같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폐지 수집 노인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일자리 및 지원금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물품 지원을 넘어 좀 더 촘촘한 돌봄 안전망과 맞춤형 지원이 필요해보인다. 지역사회 단위로 어르신을 지원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2024년 전국 최초로 인천 부평구에 자원재생활동가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폐지 수집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거점으로 일자리와 정서 지원,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사회적 문제를 하나의 기업이 완벽하게 해결하기란 어렵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폐지 수집 어르신을 향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어르신들이 위험과 빈곤에서 벗어나 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연구, 협업을 해나가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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