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육상은 안 된다? ‘괴물 신예’의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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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은 수영과 함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48개)이 걸려 있는 종목이지만 우리나라는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등 일부 선수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가운데 트랙 종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선수가 신기록 행진을 펼치며 육상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국군체육부대 소속 이재웅이다.
32년 만에 한국 신기록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선수에 불과했던 이재웅이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 5월 경북 구미에서 열린 2025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 때부터다. 이 대회 남자 1500m 종목에서 그는 3분 42초 79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9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김순형 이후 30년 만이었다.
한 달 만에 그는 다시 ‘사고’를 쳤다. 6월 14일 일본 홋카이도 시베쓰에서 열린 호크렌 디스턴스챌린지 2차 대회 남자 1500m 경기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한국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의 기록은 3분 38초 55. 1993년 12월 필리핀 마닐라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 김순형이 작성한 3분 38초 60을 0.05초 앞당긴 것이었다. 32년 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한국 신기록의 벽을 넘은 것이다.
신기록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달 뒤인 7월 16일 이재웅은 일본 홋카이도 기타미시에서 열린 2025 호크렌 디스턴스챌린지 4차 대회 남자 1500m 경기에서 3분 36초 01로 일본의 아라이 나나미를 제치고 우승했다. 한국 신기록을 세운 지 한 달 만에 자신의 기록을 또 경신한 것이다. 그 속도도 놀라웠는데 6월보다 무려 2초 54나 빨랐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재웅은 포효를 하며 벅찬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들어오면서 소리를 지른 건 나에게 더 이상 안될 거라고, 못할 거라고 얘기한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며 웃었다.
육상 1500m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기록을 줄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거짓말 같은 기록 단축에 대해 이재웅은 “한국 육상은 안 된다는 말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싫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꼭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이적인 신기록 행진의 원동력으로는 엄청난 훈련량과 악바리 근성, 그리고 남다른 승부욕이 꼽힌다. 그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스스로에게 지는 것도 정말 싫어한다”며 “훈련 중에도 나와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다시 힘을 낸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金 넘어 올림픽으로
이제 스포츠계의 관심은 깜짝 스타로 떠오른 그의 질주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일단 1차 목표는 내년 9월 일본에서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카타르의 모하마드 알 가르니의 기록은 3분 38초 36으로 이재웅보다 한참 뒤처진다. 현재 이재웅은 2025 시즌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위는 인도의 걸비르 싱으로 이재웅보다 0.57초 느리다. 즉 현재로선 금메달 가능성이 충분하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이재웅은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아시안게임 1500m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그렇다면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2024 파리올림픽에서 남자 육상 1500m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선 최소 3분 33초대를 뛰어야 했다. 이재웅은 지금보다 적어도 3초는 줄여야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이 가능하다. 참고로 남자 육상 1500m 세계신기록은 1998년 로마 그랑프리대회에서 모로코의 ‘불멸의 스타’ 히참 엘 게루즈가 세운 3분 26초 00으로 이재웅의 한국 기록보다 10초 01, 거리상으로는 70m 이상 앞서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잠재력과 강인한 의지를 고려하면 올림픽 결승 진출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재웅 스스로도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기록을 많이 줄이긴 해야 하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무대로 계속 달려가며 우리나라도 육상 종목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권종오 SBS 기자
1991년 SBS에 입사해 30년 넘게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등 모든 종목의 스포츠 경기 현장을 누볐다. SBS 유튜브 채널인 ‘스포츠머그’에서 ‘별별스포츠’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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