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의 추억 놀이에서 죽음의 게임까지 전통놀이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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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중국 실크로드에 여행 갔을 때였다. 둔황에서 투루판으로 가기 위해 유원역에서 밤기차를 탔는데 거의 7시간을 기차에 갇혀 있어야 하는 여정이었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밤기차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싶었을 때 옆 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낯선 여행객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언어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게임규칙이 간단해서인지 각자 자기 나라말로 탄성을 지르며 열심히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서의 인간 본질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아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국인은 어디서든 잘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것에 관한 한 한국인의 신명을 따라갈 만한 민족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잘 노는 만큼 놀이문화도 발달됐다. 특별한 도구 없이도 놀 줄 알았던 한국인의 놀이가 이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는 ‘오징어놀이’를 비롯해 ‘숨바꼭질’, ‘딱지치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줄넘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가 등장한다. 이 밖에도 우리 놀이 중에는 ‘핀치기’, ‘자치기’, ‘공치기’ 등 ‘치기’라는 접미사가 붙은 놀이문화가 많이 유행했다.
특히 딱지치기는 ‘오징어 게임’의 시작과 끝을 열어주는 중요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딱지치기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맞붙는 게임으로 사각으로 접은 딱지를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쳐 상대방의 딱지를 뒤집으면 승리한다. 딱지는 헌 달력이나 신문지 또는 광고 전단지 등으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접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형이나 누나의 교과서를 찢어서 딱지를 만들다 혼난 아이도 있었고 동생이 아끼던 왕딱지를 잃고 오면 형이 쫓아가서 대신 따오기도 했다. 딱지는 폐지를 활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점과 정해진 원칙만 따르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딱지치기나 공기놀이 등과 같은 놀이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밝혀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준근의 ‘투호놀이’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투호놀이는 마당이나 잔디밭에 병을 놓은 다음 일정한 거리에서 병 속에 화살을 던져 넣는 게임이다. 두 사람이 경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편을 나눠 많이 넣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을 더 선호했다. 그림에서처럼 조선시대에 투호놀이는 남자들이 즐기는 놀이였지만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부녀자들이 집 안에서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인에게 K-컬처의 위력을 보여줬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우리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더 많은 놀이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창의적인 활동에 시간을 투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공부뿐만 아니라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 온라인 게임에 밀려 아이들이 골목에서 하던 놀이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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