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교도소 출근 해외봉사 연 6차례 보훈가족 돕기 봉사왕의 제1원칙 “준 것은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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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호국보훈의 달’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박윤규 치과 원장
경남 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박윤규 원장은 최근 창원교도소에 생수 2만 병을 기부했다. 교도소라고 해도 물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이렇게 많은 양의 물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그는 이거라도 없으면 재소자들이 무더운 여름을 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물은 모두 꽁꽁 얼린 채로 보내져 일종의 냉각재 역할을 한다.
“교도소에 에어컨이 없잖아요. 하루에 몇 번씩 씻어도 요즘같이 더울 땐 선풍기만으로 버티기가 힘들어요. 얼린 물이라도 놔두면 좀 낫지 싶어 몇 년째 계속 보내고 있죠.”
박 원장은 이 밖에도 형편이 어려운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해주고 40명을 대상으로 매년 1000만 원이 넘는 영치금도 지원한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매주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은 스케줄을 비워두는 이유다. 이 지역에서 그는 ‘교도소 가는 의사’로 불린다.
교도소만이 아니다. 군으로 섬으로 의료시설이 부족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매년 대여섯 차례 해외로 치과 봉사를 떠나는 것도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된 지 오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보훈가족을 지원해온 것은 8년째.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6월 ‘2025년 호국보훈의 달’ 정부포상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재소자를 돕는 동시에 지역 범죄피해자센터 부이사장직까지 맡고 있는 그는 “재소자와 범죄피해자를 돕는 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라며 “누군가를 돕는 일엔 경계도 끝도 없다”고 했다.
죄지은 사람 왜 돕냐고? “그들이 잘 살아야 사회 건강해”
박 원장이 교도소에 첫발을 디딘 것은 21년 전이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봉사를 왔다 10년쯤 지났을 무렵 창원교도소의 치과 주치의가 됐다. 의사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다보니 그들의 어려움도 알게 됐다. 아무리 죄지은 사람이라도 아프면 힘든 것은 똑같았고 교도소 안이라도 돈이 있어야 기본 생활이 가능하기에 가족들마저 외면한 이들은 비누 한 장 구하기가 어려웠다. 험악한 인상에 온몸을 시커먼 문신으로 치장한 이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따듯한 말 한마디, 손길 한 번에 위로받는 모습을 보며 그들 또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죄지은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박 원장은 “재소자들이 다시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손엔 그간 재소자들이 보내온 편지봉투가 가득 들려 있었다. 26년째 교도소에 머물고 있는 한 무기수는 매년 잊지 않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다고 했다.
“나라고 그 사람들이 왜 안 무서웠겠어요. 어쩌다 죄명이라도 알게 되면 섬뜩해 치료하기가 싫어졌어요. 그런데 직접 말을 나눠보니 죄만 빼면 우리랑 다를 게 없어요. 안 아프게 치료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럼 착하게 살라고 하면 알겠다고 해요. 무기수들은 가족들도 안 찾아오니 사람의 손길을 무척 그리워해요. 게다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니 암같이 큰 병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 치료 안 해주면 악만 남아 다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거죠. ‘정말 아팠겠다’ 진심으로 위로해주면 ‘고맙다, 잘 살겠다’ 답해주는 건 그곳에서도 인지상정입니다.”
스무 살에 겪은 사고… 철도원에서 치과의사로
나 살기도 바쁜 세상, 남을 위해 사는 데 시간을 쏟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박 원장은 “난 전생에 빚이 많아서 베풀며 살아야 한다”며 농담을 하다 정색하며 “봉사는 내 삶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가 봉사를 운명처럼 여기게 된 이유는 뭘까?
치과의사가 되기 전 철도원이었던 그는 근무 중 열차사고로 무릎 아래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의 나이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 직후 철도원이 된 그해 겪은 사고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 단과반을 등록한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일어난 일, 그날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걱정하던 주변인들을 외려 다독일 만큼 긍정은 타고난 성정이었다. 원망보다 감사함이 먼저였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큰 사고였지만 이 정도에 그쳤다는 생각이 청년의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수술 이후 복직해 6개월을 더 근무한 뒤 퇴직한 그는 3년간의 공부 끝에 치의대 진학에 성공했다. 철도고등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남들보다 힘들었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운이라 여겼다. 그가 형편이 어려운 보훈가족을 돕는 것은 공상공무원 자격으로 당시 보훈청으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사고를 당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들은 퇴직할 나이에 난 봉사라는 중요 업무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상황이 불행하다고 그 결과까지 불행한 건 아니에요. ‘물이 반밖에 없냐’, ‘반이나 있냐’는 순전히 내 생각에 따라, 내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거예요.”
박 원장은 9월 베트남 다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매년 떠나는 해외봉사의 일환이다. 지난해엔 5개국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한 곳을 더 늘렸다. 다낭에선 의료팀과 봉사팀을 합해 10여 명이 3박 5일 일정 동안 3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할 계획이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하루에 봐야 하는 환자가 100명. 관광은커녕 제대로 쉴 시간조차 없다 보니 며칠간 하루 종일 땀으로 샤워를 하고 씻지도 못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일도 허다하다. 비행기 티켓을 포함한 모든 체재비는 그의 사비로 충당하는 대신 봉사팀에게 “신체 포기 각서를 쓰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엔 봉사에만 전념할 것, 그것이 ‘박윤규 봉사팀’의 철칙이다.
썩은 앞니 드러내며 울던 소년 보며 ‘해외봉사팀’ 꾸려
해외에서조차 이같이 치열하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처음 해외봉사를 간 것은 1997년 의료선교활동을 통해서다. 여러 진료과가 협진을 가면 언제나 치과 줄이 제일 길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어딜 가나 이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 데다 제때 치료를 못 받아 만성 환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태국 방콕에서 만난 소년은 개인 봉사팀을 꾸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후에 캄보디아로 넘어가야 하는데 하루 종일 진료를 봐도 환자가 좀체 줄어들질 않는 거예요. 계속 ‘한 시간만 더…’ 하다 약속시간을 훌쩍 넘겼죠. 이젠 진짜 안 되겠다 하고 철수하는데 자기 앞에서 줄이 딱 끊기니까 열 살짜리 남자애가 엉엉 우는 거 아니겠어요? 새까맣게 썩은 앞니를 드러내며 우는데 그 모습이 내내 잊히질 않더군요. 이후 개인 해외봉사팀을 꾸렸고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가려고 합니다. 환자를 볼 땐 꼭 앞니부터 치료해주죠. 자신있게 웃으며 살라고요.”
박 원장은 치과봉사 외에 지역 유소년축구팀을 지원하고 저소득·다문화가정을 돕는 일도 한다. 얼마 전엔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에 수백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경계 없는 나눔의 이유는 “의사로서 하는 봉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버는 것의 절반은 봉사에 쓴다는 그의 삶의 명제는 ‘준 것은 잊어라’다. 그는 “아내에게 굳이 봉사내역을 자세히 알리지 않는 것 또한 건강한 부부관계를 위한 삶의 소소한 원칙”이라며 미소지었다.
“예전엔 뭔가 베풀고 나면 은근히 돌려받을 걸 기대했어요.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이만큼 줬는데 저 사람은 왜 안 줄까?’ 하고요.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 ‘주되 잊자’ 하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가진 걸 나누면 어떤 방식으로든 돌려받게 된다는 거예요. 가령 해외봉사도 나가고 병원을 자주 비우니 환자가 점점 떨어질 것 같지만 봉사하는 의사, 좋은 병원이라고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그 손님한테 번 돈으로 또 봉사할 수 있고요. 그러니 나누는 걸 아깝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겁니다.”
박 원장의 꿈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해외에 학교를 짓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인생 후반기는 마음공부를 하며 살겠다고 했다. 여전히 자신은 수행이 필요하다는 이 시대의 ‘봉사왕’, 그를 보며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본다.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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