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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대신 ‘연결’하다 오래된 초등학교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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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서울윤중초 체육관
도시도 늙고 학교도 늙는다. 근래 서울에서는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쳐 노후화된 도심 공간의 재정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흐름과 함께 서울의 많은 학교도 시설 증·개축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인구 급감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공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활용할지도 중요한 관심 사안이 됐다. 특히 대부분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초등학교의 경우 지역사회에서는 공간 연결의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된다.
서울의 심장부, 계획도시 여의도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윤중초등학교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다. 46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 학교엔 오랜 교사동과 증축된 특별교실동, 그 앞의 넓은 운동장이 각각 분리돼 있었다. 도시의 성장과 함께해온 전형적인 학교의 모습이었다. 분절된 공간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동선과 시선도 단절돼 있었다.
이곳에 2023년 새로운 개념의 체육관과 급식시설이 들어서면서 학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낡은 공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건축가는 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의 임승모 소장과 더코너즈 건축사사무소의 홍종화·최경철 소장이었다. 이들은 증축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덧붙임’이 아니라 기존 공간을 묶어내는 ‘연결’로 해석했다. 운동장, 교사동, 특별교실동이라는 세 축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체육관에 테라스가
외형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매스(형태)의 조절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체육관은 수직 증축을 하는데 상부로 갈수록 입면을 후퇴시키는 ‘단차형 매스’를 채택했다. 체육관 내부 중앙부의 천장고는 높이고 양쪽 측면은 낮춰 외부에서 봤을 때 육중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중앙 천장고를 높인 디자인은 배드민턴 동호회 등 지역 주민들의 체육관 사용까지 고려한 설계였다. 상부를 줄인 형태는 시각적 밀도를 낮추면서도 체육관이 새로운 중심축으로 기능하게 했다. 기존 건물의 일조권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공간이 주는 위압감을 줄이는 역할도 했다.
건축가들이 특히 공을 들인 공간은 2층에 있는 외부 테라스였다. 단순한 휴게 공간이 아니라 기능과 감성, 상징을 모두 담아낸 디자인 요소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뭉게구름처럼 돌출되게 설계했다. 부드러운 곡선 형태는 아이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실내외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시각적으로 운동장과 체육관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이자 도시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주는 서정적인 공간이다. 실내 수업과 운동장 놀이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산이 축소되면서 설계안이 여러 차례 변경됐지만 건축가들이 끝까지 양보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임 소장은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작게라도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외장재는 베이지색 벽돌을 선택했다. 건축가는 의도적으로 학교 건축에서 흔히 쓰이는 붉은 벽돌을 쓰지 않았다. 기존 학교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차분한 존재감을 갖기 위한 장치다. 연한 색조는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시각적 부담을 줄이고 자연광과 조화를 이뤄 부드러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급식실이 있는 1층 외벽은 노란 알루미늄 시트로 마감해 밝고 따뜻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상부는 진회색으로 마감해 안정감을 줬다.



바깥 풍경이 들어오는 체육관과 급식실
서울윤중초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창’이다. 안전상 이유로 보통 체육관에 유리문과 창을 많이 두지 않지만 이 건물엔 창이 많다. 시각적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다. 체육관과 식당의 입면을 가로지르는 넓은 파노라마 창은 아이들이 실내에서도 바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아이들은 운동하거나 식사할 때 창 너머 풍경을 보며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윤중초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동선의 정교한 설계다. 주민과 학생의 동선, 조리사와 식당 이용자의 흐름이 모두 분리돼 있다. 운동장과 체육관, 교사동 사이를 이동하는 아이들의 흐름은 최소한의 장애물로 부드럽게 연결된다. 단 차 조절, 옥외 보행 데크, 램프 처리 등을 세심하게 설계해 아이들의 동선이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흐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부모의 시선을 담은 건축
이번 프로젝트는 ‘공공 건축’의 역할을 되묻는 작업이었다. 서울시 공공 건축가로 활동 중인 임 소장에게는 사명감이 더 큰 프로젝트였다. 2018년 시작된 프로젝트가 2023년 완공되기까지 5년의 세월은 공공 건축이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처음 현상설계에 당선된 안은 체육관과 단설 유치원을 함께 짓는 것이었다. 설계 납품이 끝났지만 예산 부족으로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 이후 학생식당을 포함한 체육관 증축으로 재공고가 나왔다. 건축가들은 한 번의 상처를 입은 프로젝트였지만 다시 도전했다. ‘급변하는 도시에서 학교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공 건축’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당선됐고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건물이 완성됐다. 그사이 현장 소장과 담당 공무원도 여러 차례 교체됐다.
건축가이기 이전에 부모의 시선으로 공간 설계에 임했다는 임 소장은 ‘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Form follows possibility)’라는 건축 철학을 갖고 있다. 임 소장은 “아이들이 실제 사용하기에 편리한 공간이라는 기본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없을 때는 공간의 형태와 독창성에 집중했는데 아빠가 되고 유모차를 몰아보니 작은 턱 하나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지금은 기능과 안전, 사용성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긴 여정 끝에 완성된 체육관과 급식실은 오래된 학교 풍경 속에서 조용하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46년의 역사와 미래세대를 잇는 건축적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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