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찾은 마음 처방전 농업이 치유가 된다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텃밭에서 찾은 마음 처방전 농업이 치유가 된다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 ‘농업’은 땀과 노동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농업이 마음을 치유하기도 한다. 농업과 농촌 자원을 활용해 신체적·정서적 안정을 돕는 활동, ‘치유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23년 12세 이상 인구 중 9.7%가 최근 1년간 우울감을 경험했으며 2024년 기준 100명 중 한 명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정신질환 치료를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비약물적 심리 지원 기술’로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해오고 있다. 조현병 환자를 위한 ‘긍정심리모형 프로그램’과 우울 고위험군을 위한 ‘인지행동전략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긍정심리모형은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과정에서 몰입감과 행복감 등 긍정적인 정서를 회복하고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을 병행한 조현병 환자군은 기존 약물치료만 받은 집단보다 음성 증상이 10% 감소했고 일반 정신병리 증상도 2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행동전략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울 고위험군 역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우울감은 30% 감소했고 감정 안정과 내면 성찰 능력 향상을 뜻하는 ‘상대적 세타파(RT)’는 29%,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를 의미하는 ‘상대적 알파파(RA)’는 18% 증가했다. 식물의 생애주기(파종→수확→수확 후 활용)를 삶과 연결지어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고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치유법의 핵심이다.
최근 ‘인지행동전략 적용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전북 완주군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을 찾았다. 이날 열린 1회 차 수업 ‘싹이 나오긴 할까요?’에는 총 9명이 참가했다.





자라나는 식물 보며 긍정의 마음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내에 있는 치유텃밭과 치유정원은 약 991㎡ 규모다. 치유텃밭은 ‘테마텃밭’과 ‘어린이텃밭’으로 구성돼 있다. 테마텃밭에는 고혈압, 당뇨 등 생활습관성 질환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 심어져 있고 어린이텃밭은 아이들이 쉽게 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치유정원은 ‘감각자극’을 주제로 꾸며졌다.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식물이 있다. 또 무장애텃밭으로 설계돼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무리없이 작업할 수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개방된 공간 주변으로는 온실과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있고 정자와 그늘 공간도 눈에 띄었다. 초록 식물과 꽃들 사이로 식물 관리 작업에 한창인 재배사들도 보였다. 첫 수업이어서 낯선 탓인지 참가자들 모두 말없이 앉아 수업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최소 주 1회, 하루 90분씩 총 8~10회에 걸쳐 진행된다.
“안녕하세요? 오늘 주진행을 맡은 치유농업전문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각자 앞에 놓인 태블릿이 보이나요? 프로그램 시작 전과 후, 누적스트레스와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측정을 먼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인사말과 함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검지에 장치를 끼운 뒤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설문에 집중했다. 말소리가 사라진 공간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5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진행자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그는 “일반적인 농업활동이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과정이라면 우리는 식물이 가진 힘을 통해 일상 속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배워나갈 예정”이라며 “그 첫 번째 단계가 파종”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에게 지피펠렛(압축된 토양)이 전달됐다. 이들은 최종 8회 수업 때까지 각 지피펠렛에서 ‘당근’과 ‘20일 무’를 기른다.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나누며 긍정적인 심리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업 방식이다.
진행자가 “씨앗을 뿌리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묻자 한 참가자는 “싹이 잘 나면 좋겠다. 안 나면 속상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진행자는 “싹이 안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나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일상에서 어떤 순간에 나타나는지 짚어보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씨앗이 담긴 지피펠렛은 정원 옆 텃밭으로 옮겨졌다. 참가자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지피펠렛을 텃밭에 심고 가볍게 흙을 덮었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자신의 지피펠렛을 바라보며 “잘 자라라”며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 참가자도 있었다.







속마음 털어놓으며 눈물 흘리기도
파종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간 참가자들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활동지에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는지’를 적었다. 다음으로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어떤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는지’를 떠올리며 자신을 수식할 ‘긍정적인 형용사’를 이름 앞에 적었다. 한 참가자는 자신의 이름 앞에 ‘설레는’이라는 수식어를, 또 다른 참가자는 ‘당당한’이라는 수식어를 적었다.
뒤이어 발표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면의 불안과 앞으로의 바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발표 도중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다 자라서 품을 떠나니 쓸쓸해지면서 몸까지 아파 우울감이 심해졌다. 치유농업이 정말 내게 좋은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왔다”고 말했다. 평소 여러 명 앞에서 얘기하는 일이 어렵다고 털어놓은 참가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마음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떨지 않고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는 “지난주 사전 검사 때 스트레스 점수가 73점까지 오르는 걸 보니 스트레스가 더 오르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자연 속에 오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확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 검사에선 ‘0’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 수업은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긴장된 표정으로 첫인사를 나눴던 참가자들은 수업이 끝날 때는 웃으면서 “내일(2회) 또 만나자”는 인사를 스스럼없이 나누었다. 저마다의 불안을 흙 속에 묻고 나온 이들에게 작은 변화의 조짐이 싹트는 듯했다.
참가자들은 이날부터 매일, 총 8회 프로그램을 함께한다. 2회 차에는 허브 및 관엽식물 삽목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3회 차엔 초화 동반식물을 이식하며 ‘동반의 의미’를 탐색한다. 4회 차에는 병해충 방제와 유인 작업을 통해 ‘문제 예방과 능동적 자기관리’를 고민한다. 5회 차에는 삽목식물 등 이식 활동과 함께 ‘건강한 거리두기 및 긍정적 자기주장’을 연습하고 6회 차에는 비료주기 활동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익힌다. 7회 차에는 꽃차 만들기를 계기로 ‘팔색조 같은 자신’을 인식하고 마지막 8회 차에는 꽃바구니를 만들며 수확과 성취를 축하한다.
조현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유농업 프로그램 역시 식물을 키우는 경험을 통해 마음을 돌보도록 구성됐다. 씨앗을 파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돌아보게 하고 잘린 허브를 삽목하는 과정에선 상처받은 자신도 다시 뿌리내릴 수 있다는 회복 가능성을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텃밭을 함께 가꾸는 활동은 타인과 협력하고 배려하는 관계 형성의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허브차 만들기나 가든파티 같은 수확 활동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 농업은 생산 활동을 넘어 정신건강 회복을 돕는 하나의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진청은 2013년 ‘사회복귀예정자를 위한 심리적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총 46종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말기암 환자, 경도인지장애 치매안심센터 이용자, 소방관, 민원 담당 공무원, 특수교육대상아동 등 다양한 대상에 맞춘 맞춤형 프로그램들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2024년 치유농업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주요 장점으로 ‘자연과의 교감(27.8%)’, ‘정서적 안정감(26.4%)’, ‘신체활동(16.4%)’ 등이 꼽혔다. 농진청은 “약물은 근본적 치료보다는 증상을 조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감정 표현, 성취 경험, 관계 회복, 자기 돌봄을 가능하게 해 근본적 심리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치유농업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 비약물적 심리지원법의 활용을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

이근하 기자

도심에서도 치유농업을!
전국 광역 단위 센터 확대… 2027년까지 17곳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이 도시에서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국 광역 단위 치유농업센터’를 확대한다. 2027년까지 총 17곳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등에 13곳이 있다.
그중 서울시치유농업센터는 2022년 문을 연 이후 도시형 치유농업 모델 3종(스마트 치유온실·시설형·농장형)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스마트 치유온실은 디지털 농업기술과 수경재배 시스템을 적용해 사계절 치유농업 활동을 할 수 있다. 시설형은 도심 속 자투리 공간, 옥상에 배치할 수 있도록 제작한 상자 텃밭과 높임 화단 등 다양한 모형을 보여준다. 농장형은 주말농장 및 체험농장에 적합한 틀 텃밭, 디자인 텃밭 등 여러 모델을 제시한다. 이 외에도 서울시어린이병원, 광역치매센터, 국립정신건강센터 등과 협력해 발달장애인, 치매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등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매년 5000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도시민들이 심리적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해소하고 싶어도 마땅히 이용할 만한 서비스 공급 기반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도시지역에 적합한 치유농업 모형을 적극 개발하고 복지·의료·교육기관과 협업해 실효성 있는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