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폭우에 맞서 5시간 사투 준비된 대응이 작은 기적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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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부터 19일까지 말 그대로 물폭탄이 쏟아졌다. 지독한 폭염이 불러온 강력한 폭우에 주택과 도로는 자취를 감추고 사상자도 잇따랐다. 8월 6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경남 의령군 대의면 구성마을에도 이 기간 동안 513㎜에 달하는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 특히 7월 19일 하루 강우량이 214.6㎜에 달하면서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구성마을은 합천군에서 시작해 산청을 거쳐 남강으로 흐르는 양천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양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제방이 무너졌다.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구성마을 절반 이상이 침수됐고 잠정 피해액은 60억 원에 달했다.
평소 구성마을은 배수문과 배수 펌프장이 잘 갖춰져 있어 호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하류 구간인 산청군 생비량면의 하천 폭이 좁아 빗물이 빠지지 못했고 결국 상류인 대의면 쪽 하천이 범람하면서 제방 유실로 이어졌다.
침수 당시 마을은 사실상 고립 상태였다. 수심이 최대 1.5m까지 차오르며 황토물이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일부 주택은 현관문을 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보일러에서 새어나온 기름이 물 위로 퍼지면서 감전 위험까지 있었다. 전기가 완전히 차단되기 전엔 쉽게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 204명 중 3분의 1은 60세 이상 고령층이 많아 혼자 힘으로 대피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치매를 앓고 있는 주민의 경우는 안부 확인조차 어려웠다.
그럼에도 인명피해는 ‘0’이었다. 쉴 새 없이 퍼붓는 폭우 속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물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던 순간 마을을 울린 건 스피커 방송이었다. 이장은 마이크 앞으로 달려가 목이 터져라 대피 방송을 외쳤고 군청 직원들과 경찰은 앞다퉈 주민 대피에 나섰다. 보트를 타고 황토물을 가르며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고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주민들도 거들었다. 옆집 사정을 훤히 들여다볼 만큼 작은 마을, 명단을 들춰볼 필요도 없었다. “○○댁이 안 보인다!”는 외침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무엇보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데는 철저한 사전 대비가 큰 역할을 했다. 의령군청은 “안전은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만 지켜낼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련 부처 및 기관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배수 관리와 대피로 점검 등 재난 대비 조치를 미리부터 시행해왔다. 여기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더해지며 구성마을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폭우가 마을을 덮친 지 10여 일, 그날 대피 작전을 이끌었던 이근영(66) 구성마을 이장, 정영재(57) 의령군청 안전건설국장, 최정철(50) 의령경찰서 칠곡파출소 경위를 만났다. 도로는 이미 말끔히 복구돼 침수 피해를 겪은 곳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경남 지역의 7월 한 달 평년 강수량은 311.4㎜다. 한 달 내릴 비가 하루이틀 동안 쏟아진 셈인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
(이근영, 이하 이) 내가 배수장을 운영하는데 세상에…. 60년 넘게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당일 아침 일찍부터 배수를 시작했다. 오전 11시 정도 되니까 양천 제방이 범람하면서 마을 사거리로 빗물이 밀려들었다. 수심도 깊었지만 무엇보다 물살이 너무 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영재, 이하 정) 비슷한 시간에 배수로가 역류할 것 같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거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싶었다. 곧바로 주민 대피 마을 방송을 하고 호우긴급재난문자(CBS)를 계속해서 발송했다. 비상 대비 태세 중이던 군청에서도 바로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1시께 마을이 잠겨버렸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판단하고 조치한 일은 무엇이었나?
(정) 현장에 도착했을 때 어르신 두 분이 2층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경찰관은 어르신을 등에 업고 물속을 헤치며 나오고 있었다. 혹시라도 대피하지 못한 다른 주민이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앞섰다. 함께 출동한 의령경찰서 칠곡파출소장, 의령소방서 예방대응팀장과 긴급히 논의한 끝에 수심이 비교적 낮은 구간은 군청 직원과 경찰관, 소방관, 마을 청년들이 안전로프를 착용하고 걸어 들어가 주민을 업고 나오는 방식으로 구조를 시작했다. 수심이 깊은 구간에는 고무보트 투입을 결정했다. 특히 최정철 경위가 개인 소유 레저용 고무보트를 가져와 큰 도움이 됐다.
(최정철, 이하 최) 이틀간 야간근무를 하고 7월 19일 아침에 퇴근해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마을이 침수됐다는 전화가 왔다. 곧바로 근무지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고 비상용 구명조끼 세 개를 챙겨 현장으로 나갔다. 당시 구성마을 인근 지역도 폭우 피해가 심해 구조 활동이 빠르게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이빙이 취미여서 구입해놓은 보트가 떠올랐다. 다시 집으로 가 보트를 가져와 구조 현장에 뛰어들었다.
군청과 소방, 경찰의 공조가 잘 이뤄졌다고.
(정) 호우경보가 발령되자마자 군청, 경찰, 소방 등 세 기관이 ‘주민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협력체계를 갖췄다. 단 한 명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현장 지휘관과 읍·면장이 즉시 논의해 ‘선 조치 후 보고’ 원칙을 고수했다. 평소에도 의령군은 재난에 대비해 직원들이 각자 임무를 숙지하도록 교육하고 각 읍·면의 지형과 특성을 잘 아는 부서장을 해당 읍·면의 담당자로 지정해왔다. 이러한 준비체계가 이번 상황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이번 일을 통해 재난 대응에서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식은 ‘현장에서 함께 보고 판단하는 것’임을 다시금 느꼈다.
그 외에도 마련해둔 대비체계가 있었나?
(정) 7월 초부터 하천, 우수관로, 배수로, 하수도 등에 대한 준설과 청소 등 사전 정비를 실시했다. 7월 17일부터는 군 차원의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전반적인 사전점검에 들어갔고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즉시 현장에서 조치했다. 위험지역의 주민 대피로와 대피 장소도 사전에 점검하는 등 대비 태세를 갖췄다. 덕분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중요한 요소였을 텐데.
(정) 이미 대피한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요구에 따라 서로 이웃을 확인하고 대피소에서 보이지 않는 주민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다. 고령이다보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분도 있었고 “괜찮다”며 집에서 안 나오려고 고집을 부리는 분도 있었다. 특히 한 어르신은 전화 통화로 “물이 차오르는데 머리가 어지러워 죽겠다”고 한 이후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얼마 뒤 그 어르신이 한 경찰의 등에 업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재난의 위기 속에서 민·관이 하나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구조하면서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최) 집 안에 갇힌 주민을 데리고 나오려고 해도 문 앞까지 물이 차올라 문이 열리지 않았다. 또 집 안에 단차가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발을 헛디뎌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물살이 거센 데다 시야도 좋지 않아 구조 작업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 안전은 따질 겨를도, 따져서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인명사고만은 막아야 했고 그게 본래 내 일이다. 나중에 보니 허벅지 뒤쪽이 전부 시퍼렇게 멍들어 있더라.
7월 19일 인명 구조는 약 5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구조대는 외지에서 방문한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마지막까지 집집마다 확인 작업을 놓치지 않았다. 당일 저녁이 돼서야 비가 잦아들었고 물 빠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청은 이튿날 아침이면 복구 작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즉시 준비에 돌입했다. 모든 공무원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군내 유관기관과 사회단체, 자원봉사자를 섭외해 장비와 급식 등의 지원체계를 갖췄다. 바로 다음 날 오전 9시부터 589명이 투입돼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6월 출범한 ‘의령군 민생현장기동대’는 이날부터 열흘간 침수 피해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설비 전수 점검을 실시하고 고장난 시설을 교체했다.
지금은 침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90% 이상 복구가 완료된 상태다. 몇 년째 묵혀 있던 쓰레기들까지 정리되면서 침수 전보다 도로가 더 깨끗해졌다. 다만 집 안은 벽지나 바닥이 마르지 않아 거실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주민도 많다. 겉보기에는 정돈된 것 같지만 세세하게 손봐야 할 곳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도 집집마다 돌면서 필요한 부분을 챙기고 있다.
(정) 수시로 복구 관련 회의를 열고 있다. 단순히 집 안 보수에 그치지 않고 침수를 겪은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하고 있다. 집 안까지 물이 들이닥친 기억이 있는 어르신이 혼자 집에 계신다면 얼마나 두렵겠나. 물리적인 복구를 넘어 정서적인 회복까지 이어져야 진정한 복구라고 생각한다.
발 빠른 복구한 가능했던 배경에는 숨은 역할들도 있었을 것 같다.
(정) 보건소는 침수 지역에 지속적인 방역을 실시했고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에는 실내 특별방역을 해 주민 위생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지원팀 기술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여 침수된 농기계 200여 대를 수리 완료했다. 복구 과정에서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군민들도 피해 지역 주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자원봉사와 물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외부에서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해주고 물품과 성금을 보내준 덕분에 큰 힘이 됐다. 앞으로 다른 지역에 피해가 생긴다면 우리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보답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국지성 폭우 등 재난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로서 느끼는 대응의 한계나 앞으로 보완이 필요한 점이 있다면?
(정) 재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전 예방이다. 구성마을에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한 사전 대비 덕분이었다. 그러나 강우 양상은 더 불규칙하고 강력해지고 있고 개별 지자체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의면 양천은 여러 시·군을 거쳐 흐르는 하천인데 특정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전 구간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어렵다. 지자체 간의 협업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재난 예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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