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위 숨은 얼굴을 찾아라 지붕 장식 기와 치미의 예술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치미(鴟尾)는 왕궁이나 사찰 지붕의 맨 윗부분인 용마루 양 끝에 설치된 기와를 뜻한다. 치미는 지붕의 필수품은 아니지만 건축부재로 나름대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건물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이다. 용마루 양 끝에 좌우대칭으로 배치돼 균형미를 잡아주고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해 웅장함과 위엄을 드러낸다. 기왕이면 멋진 외관에 좋은 의미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목조건물의 최대 약점은 불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치미에 화재방지를 염원하는 벽사적 의미의 봉황새를 새겨넣었다. 치미는 ‘올빼미 치(鴟)’와 ‘꼬리 미(尾)’자가 결합된 데서 알 수 있듯 올빼미 꼬리다. 올빼미라는 뜻 외에도 솔개, 수리부엉이도 의미한다. 그러나 평범한 올빼미나 수리부엉이가 아니라 상상의 새인 봉황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충남 부여군 능산리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의 뚜껑 위에 선 봉황의 날개를 보면 치미의 날개 모양과 흡사하다. 경북 경주시 황룡사절터에서 출토된 치미(이하 황룡사치미)는 그 높이가 182㎝, 너비 105㎝로 동양 최대로 알려졌다. 보통 사람 키보다 더 크다. 그 규모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하나로 만드는 대신 머리, 몸통, 날개, 꼬리 등 각 부재를 별도로 제작해 조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치미의 왼쪽 아래 머리 부분은 용마루의 수키와에 낄 수 있도록 나사처럼 반원형으로 돌출시켰으며 용마루와 연결되는 옆 부분은 ‘ㄱ’자로 꺾었다. 황룡사치미의 특징은 양 옆면과 뒷면에 연꽃무늬와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돼 있다는 점이다. 백제 미륵사절터에서 출토된 치미(이하 미륵사치미)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바로 알 수 있다. 근엄해야 할 치미에 장난 같은 얼굴이라니. 그 때문에 황룡사치미는 미륵사치미와 같은 사실적인 새 날갯짓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당시 도공을 직접 만난 것 같은 친근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황룡사의 규모와 당시 신라에서 차지했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런 도공의 장난스러운 유희가 더욱 재미있다. 청와대 본관 지붕에 쓸 치미를 발주했다고 치자. 과연 어떤 도공이 그런 만화 같은 얼굴상을 새겨넣을 수 있겠는가.
황룡사는 고려시대 때 몽골 침입으로 소실돼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는데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로 장륙존상과 9층목탑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황룡사는 553년에 첫 삽을 뜬 후 645년에 9층목탑이 완성될 때까지 93년이 걸릴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된 대형 국가프로젝트였다. 솔거가 벽에 나무를 그렸더니 새들이 진짜인 줄 알고 날아들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도 황룡사절터다. 9층목탑은 그 높이가 80m 정도였고 장륙존상은 5m 정도의 대불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세 개의 대좌만 보더라도 불상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3구의 대불을 모신 전각이었으니 금당의 규모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 국가적인 사업의 지붕 모서리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런 유연성과 여유가 천년을 갈 수 있는 비결이었을 것이다. 근엄함과 장난스러움, 화려함과 소박함, 강렬함과 편안함의 황룡사치미에서는 정해진 룰 안에서만 자유가 허락된 경직된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위대함이 들어 있다. 그것은 포용력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