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한마디보다 한 번의 경험이 훨씬 중요해요”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영어 한마디보다 한 번의 경험이 훨씬 중요해요”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김순환 교수가 말한 유·초 이음교육 준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의 걱정은 학습적인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 교실을 잘 찾아갈지, 40분 간의 수업시간을 어려워하지 않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교문 앞을 서성이곤 한다.
이런 걱정을 없애주기 위해 시행되는 유·초 이음교육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부는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수월하게 연결되도록 2026년부터 전면적으로 이음학기를 확대한다.
이음학기를 맞은 5세 아이들은 초등 교과와 연계된 교육과정 속에서 초등학교 공간, 시간, 규칙과 친해지는 경험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라는 공간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이’하도록 돕는 것이다.
제3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2023~2027)에 따라 마련된 이음교육의 틀을 만들고 이끌고 있는 김순환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사실 유아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개정 누리과정에는 초등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음학기를 전면 확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음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고히 하고 학부모의 염려를 줄이기 위해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이음교육을 어떻게 시행하면 될지 ‘5세 이음교육 표준안(시안)’은 발표됐다. 이를 보완해 2026년 ‘5세 이음교육 표준안’을 만들 예정이다. 학부모들은 이음학기를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김 교수는 “한글·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학습 태도, 즉 ‘학습준비도’와 신체역량, 자기조절역량 같은 ‘학교준비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중학교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내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량’을 이야기하는 김 교수를 만나 유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왜 이음교육이 필요한가?
유아교육기관에서 초등학교로 원활하게 전이하는 경험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는 물론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응’하는 문제를 손쉽게 만든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원활하게 전이한다’는 것은 한글을 익혀둔다, 영어 알파벳을 외운다는 학업준비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길러야 하고 역량을 기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한가?
미취학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기초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신체운동, 생애학습, 자기조절, 사회정서다. 그런데 대부분 생애학습 기초역량, 즉 문해력·수해력 같은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기초체력이 없으면 끈기 있게 학습할 수가 없다. 자기조절을 하지 못하면 목표를 끝까지 이루기 어렵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즉, 신체역량과 자기조절능력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조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얘기는 영어 레벨테스트 점수를 신경 쓰는 학부모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 같다.
거꾸로 ‘5세에 치르는 영어 레벨테스트의 목적이 무엇일까’ 물어보고 싶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영어 단어 외우기, 수학 문제 풀기가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이걸 유아기 때 길러줘야 한다.

유치원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나?
개정 누리과정을 두고 ‘놀기만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놀기만 하지 않는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근육, 소근육을 발달시킨다.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도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조절하고 친구와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게 한다. 처음에는 옷의 지퍼를 올리는 것을 도와주지만 점차 스스로 할 수 있게 지도하면서 자조능력을 키운다. 누리과정을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별도의 선행학습 없이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초역량을 기를 수 있다.

이런 역량이 어떻게 아이에게 도움이 되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아이로 기르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보자.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자기조절역량의 통제력과 관계가 있다. 그림책 표지를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려면 학습에 대한 흥미를 길러야 한다. 학부모들이 바라는 아이의 행동 하나에도 이런 기초역량이 드러난다. 그걸 무시하고 오로지 책상 앞에 앉아 있게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유치원의 누리과정을 믿고 있던 부모들도 아이가 5세가 되면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준비 과정을 학업적인 측면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미리 해놔야 하고 한글을 깨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했듯이 한글과 영어 공부는 초등학교에 적응하고 역량을 키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아 언어교육 전문가로서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영유아 시기에 조기 언어교육은 필요 없다.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없다는 얘기인가?
언어 교육에는 적기가 있다. 3세에는 ABC 세 글자를 외우는 데만도 한참이 걸리지만 6세가 되면 얼마 걸리지 않아 외울 수 있다. 적기에 적절한 공부를 시키면 된다. 직접 연구해보니 일찍 글자를 깨치는 것과 학업능력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영어 공부에 필요한 것은 ‘첫 번째 언어’가 제대로 습득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한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아이를 기를 때 유아기에 영어 공부는 아예 시키지 않았고 한글도 일부러 천천히 가르쳤다. 대신 책을 많이 읽으면서 한국어를 튼튼하게 다지는 데 집중했다.

그렇다면 부모는 유아기 자녀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나?
경험과 책읽기,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경험’은 왜 필요한가?
오감을 기르는 경험은 아이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낸다. 조기 언어교육이 필요 없다고 얘기했는데 어떤 아이들은 언어에 특별히 반응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영어를 미리 가르치는 것이 좋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흥미를 보이는지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은 인지능력을 기르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시각과 청각에만 집중해서 경험한다. 미디어가 그렇고 스마트폰이 그렇다. 다른 감각을 경험하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항상 특별한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에게 와서 재료를 만져보고 다듬게 하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미각, 촉각, 후각을 모두 길러줘야 한다.

책읽기는 왜 중요한가?
문해력과 인지능력은 가르친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다. 부모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자녀가 반복해서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인데 원하는 만큼 읽어줘야 한다. 책을 고르고 빌리고 읽고 나누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흥미를 찾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자녀와 대화해야 한다.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든지 잠깐이라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다르다. 부모가 원하는 대화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대화를 해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일을 한 경험을 듣고 싶다.
워킹맘이라 아이를 돌봐주는 할머니를 고용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하루 종일 보기가 고됐는지, 이 할머니가 아이를 리어카에 태우고 온 동네를 돌면서 폐지를 수집하곤 했다. 물론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동네에 왔다가 아이가 난데없이 리어카를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전화를 했다. 이야기를 듣고 아이에게 먼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물어봤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보물섬’에 갔다고 했다. 보물섬으로 가는 길이 흥미로운 모험인 데다 보물섬에는 보물이 가득 쌓인 산이 있어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알고 보니 폐기물 업체 이름이 진짜 ‘보물섬’이었다. 진짜 보물섬에 다녀온 아이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냥 웃었다.

아이가 폐지를 줍고 있으면 화가 났을 법한데?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폐지 줍는 일이 아이의 역량을 길러주는 일이었다. 아이는 대근육 발달이 좀 늦었는데 리어카를 타고 균형을 잡고, 할머니를 도와 폐지를 줍고 나르면서 신체활동을 하고 있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할머니, 저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며 사회성도 기르고 있었다. 실제로 폐지 줍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때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탔는데 기차 칸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과 인사하는 아이를 보면서 놀란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됐는데 아직도 이 일을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잘 자랄 수 있었던 이유로 이런 기억을 꼽기도 한다.

유아기에 중요한 것은 역량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을 특별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유아를 둔 부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활동을 하고 자조능력을 기르면서 대화하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수없이 강조한다. 초등학교에 적응하는 일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실시하는 이음교육에 맡기면 된다. 초등학교를 위한 준비는 아이가 기초역량을 길러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김효정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