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가방·밀수 농산물·매트리스… 세관에 압수당한 물품 종착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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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본부세관 압수물품 창고 가보니
인천본부세관(이하 인천세관)은 2025년 1월 겨울철 먹이를 구하기 힘든 철새들을 위해 녹두를 비롯한 각종 곡물 10톤을 지역 환경단체들에 기증했다. 2024년 9월에는 침대 매트리스 25점을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했다. 배고픈 야생동물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이 곡물과 매트리스는 세관이 압수 후 몰수한 물품들이다. 곡물은 400% 이상의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 신고하지 않고 몰래 국내로 들여오려다가, 매트리스는 상표권을 침해한 혐의로 압수됐다.
이처럼 관세법·상표법 위반으로 적발된 물품이 매년 수천 톤이 넘는다. 이 물품들은 압수된 후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전국에서 가장 큰 압수물품 창고를 보유한 인천세관의 협조를 얻어 2월 21일 압수물품 창고를 살펴봤다.
900평 창고에 1120억 원어치 압수품 쌓여 있어
인천세관이 보유한 압수창고는 인천세관 통합검사센터 구역 내 통합검사장 압수창고(1414㎡, 약 416평), 인천세관 본관 인근의 제2지정장치장 압수창고(1636㎡, 481평) 등 두 곳이다. 천장의 높이가 양쪽 모두 15~20m에 달할 정도로 높아 팰릿 단위의 물건을 대규모로 보관할 수 있다. 두 창고에 보관 중인 압수품은 위조 상품과 담배류, 불법 의약품 등 총 1120억 원어치에 달한다고 한다. 두 곳을 비롯해 인천공항본부세관, 서울본부세관, 부산본부세관 등이 운영 중인 압수창고는 모두 26곳이다.
인천세관 창고 두 곳 중 2023년 12월 문을 연 통합검사장 압수창고를 먼저 찾았다. 사람이 들고나는 작은 문 옆으로 큰 물건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거대한 입구가 별도로 있었다. 트럭에서 바로 물건을 내려 지게차로 실어나르기 좋게 동선이 설계돼 있었다. 마치 택배 상하차를 하는 물류센터와 같았다.
내부에 들어서니 크고 작은 박스가 즐비했다. 줄잡아 수천 개는 넘어 보였다. 인천세관 조사총괄과 정병삼 총괄기획팀장은 “한 달에 1~2번 이뤄지는 폐기 작업이 며칠 전 이뤄져 그나마 비어 있는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각 사건 단위로 수십 개의 박스가 투명한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워낙 물건이 많다보니 다른 사건들끼리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박스 곳곳에는 사건을 접수한 날짜와 총물량 등이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높은 곳에 따로 적치한 박스도 많았다.
물건들은 선입선출(先入先出)이 어렵다. 일찍 들어온 압수품이라도 피의자가 해외로 도주하는 등 수사나 재판 진척이 어려울 경우 몇 년이고 계속 보관할 수밖에 없다.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적치된 물품도 있다. 정 팀장은 “사건 해결이 안될 경우 규정상 압수품은 사진이나 샘플을 채취해 보관하고 나머지는 폐기할 수 있지만 나중에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어서 최대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채, 담배, 술, 약 등 짝퉁 천지
압수품의 대부분은 상표법을 위반한 일명 ‘짝퉁’ 상품이었다. 품목도 명품 가방부터 지갑, 우산, 스카프를 비롯해 중저가 브랜드 의류, 골프채, 담배, 술, 과자, 인형 등으로 일일이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일부 명품 카피 제품의 경우 누가 봐도 가짜라는 걸 알 정도로 조잡한 경우도 많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이 어려운 제품도 있었다.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카카오프렌즈의 인형 ‘라이언’, ‘춘식이’ 수백 개가 큰 마대자루 안에 담겨 있었다. 모두 들어온 지 꽤 됐는지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정 팀장은 “압수물품들도 유행을 탄다”며 “한때는 유명 브랜드의 고무 신발을 장식하는 제품인 ‘지비츠’가 엄청 많았는데 요새는 열쇠고리로 쓰거나 가방에 매다는 키링 제품, 특히 산리오 캐릭터들을 베낀 제품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멜로디’, ‘쿠로미’, ‘시나모롤’ 등 산리오의 유명 캐릭터를 활용한 압수품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한쪽에는 건축용 우레탄 바닥판 수백 개가 곳곳이 뜯겨진 채 쌓여 있었다. 지난해 바닥판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11만 정, 위조 국산 담배 8만 3000갑, 녹두 1톤 등 시가 73억 원 상당의 물품을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것이었다.
높은 관세에 밀수입되는 농산품들… 부패되는 여름 고역
1997년부터 운영된 제2지정장치장으로 이동한 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컨테이너들이었다. 자물쇠가 채워진 채 압수창고 마당 한편에 쌓인 이 컨테이너 역시 압수품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국에서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대추 박스들이 전체 공간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정 팀장은 “고양이 용품으로 신고해 들여왔는데 막상 열어보니 대추가 있었다”며 “농산품의 경우 관세율이 높아 이렇게 몰래 들여오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콩은 400~600%로 관세가 높다고 한다. 관세율이 약 480%인 서리태 1000만 원어치를 수입하려면 세금만 4800만 원을 내야 한다. 정 팀장은 “국내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면서도 “관세율이 높다보니 이를 피하기 위해 농산물을 몰래 들여오려는 시도가 많다”고 말했다.
농산품을 비롯한 식품류 압수품들은 여름철이면 더욱 관리가 까다로워진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변질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비닐팩에 넣어 압착시킨 고추는 여름이면 부패로 인해 발생한 가스 탓에 포장이 펑펑 터진다. 냄새도 고약하다. 이럴 경우 해충이 번식할 우려도 있어 긴급 폐기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압수 차량도 즐비… 압수품 대다수는 폐기 수순
제2지정장치장 압수창고는 수십 년 동안 사용한 흔적이 곳곳에 가득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이었다. 바람이 빠진 타이어를 제외하면 외관은 새 차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 멀끔했다. 다른 사람 명의로 차량을 렌트, 리스한 후 차대번호를 변조해 밀수출하려던 차량이 대다수였다.
압수물품들은 재판이 끝나 사건이 종결되면 대개 폐기 수순을 밟는다. 폐기는 인근 소각장에서 세관 직원의 입회하에 이뤄진다.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연소가 끝날 때까지 직원이 지켜보고 사진 기록까지 남긴다. 폐기 비용은 통상 1톤당 30만 원 정도. 인천세관의 경우 한 해 많게는 100톤 의 물품을 폐기한다. 폐기에만 3000만 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가는 셈이다.
상표권을 위반하지 않은 물품 가운데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한 물건들은 공매를 통해 판매한 뒤 국고로 환수한다. 상표권 위반품 가운데서도 간혹 상표권자와 협의를 거쳐 매트리스 건처럼 기증하는 경우도 있다. 정 팀장은 “상품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시중가보다 20~30% 낮은 가격으로 내놔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부분의 압수품을 폐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고유선 기자
인천세관이 적발한 주요 위반 사례
CCTV, 휴대폰 포렌식 등 동원
“어떻게 숨겨도 다 찾아냅니다”
인천본부세관(이하 인천세관)은 대중국 무역기지인 인천항을 들고나는 물건들을 주로 관리한다. 때문에 압수창고 속 물건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왔거나 중국으로 나가려던 상품이다. 이 물품들의 조사를 담당하는 조사국 직원은 사법경찰 70여 명이다. 이들은 검사의 지휘하에 밀수, 불공정 무역, 마약류 밀반입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통상 1년에 100여 건을 적발한다. 다음은 인천세관이 최근 5년 내 적발한 주요 위법 사례다.
□ 2024년 중국산 서리태 230톤(시가 13억 원 상당)을 요소수 등으로 허위 신고한 후 밀수입하고 이를 국내에 유통한 일당 13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팰릿 하단에 서리태를 적재하고 상단에 요소수를 싣거나 대형 마대자루인 톤백(TON ABG) 아랫부분에 서리태를 넣고 상단에 요소 알갱이를 붓는 일명 ‘심지박기’ 수법으로 서리태를 밀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21년에 이어 2023년에도 국내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언론보도에 ‘요소수로 신고하면 신속한 통관을 위해 세관의 검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요소수 및 요소를 주요 은닉 수단으로 삼는 지능적 수법을 사용했다. 인천세관은 폐쇄회로(CC)TV 분석, 화물운송 기사 조사 등을 통해 서리태의 최종 도착지와 구매자를 특정하고 중국 현지 공급책과 통관책, 국내 유통책까지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 2023년 40피트 컨테이너(길이 12m, 폭 2.4m, 높이 2.6m)에 중국산 위조 명품과 소시지 등 약 6만 점, 시가 700억 원의 물품을 대량으로 밀수입하려던 조직을 적발했다. 중국산 소시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염 위험에 따라 국내 반입이 금지된 식품이다. 인천세관은 중국인 밀수총책을 검거하기 위해 그의 이메일상 영문 발신인 이름과 사건 적발 전후 한 달 동안 출입국 명단을 대조해 용의자를 30명으로 좁혔다. 이후 이들의 국내 거주지를 파악해 국내 배송 총괄책임자와 같은 지역에 사는 한 명을 혐의자로 특정하고 한 달여간의 잠복 끝에 검거했다. 총책의 휴대폰 속 정보를 이용해 운송책, 통관책 등 주요 유통책도 추가로 8명 입건했다.
□ 2022년에는 중국산 문신용 마취크림 5만 개를 밀수입한 건을 적발했다. 인천세관은 인터넷에서 중국산 무허가 마취크림이 불법 유통 중인 사실과 피부 화상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크림이 항공 특송화물을 통해 개인이 사용하는 화장품인 것처럼 위장헤 밀반입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백 개씩 대량으로 밀수한 혐의자 9명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1만 점을 압수했다. 눈썹 문신에 사용 시 30만 명을 동시에 시술할 수 있는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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