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전통정원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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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이자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은 작가 채수(蔡壽)는 산수(山水)를 즐겼다. 연못을 연꽃과 나무로 꾸미고 대나무 대롱을 달아 폭포를 만들었다. 돌을 산 모양으로 쌓은 석가산(石假山)을 정원에 두기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달리 마음대로 가꾸고 즐길 수 있는 정원은 그에게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채수처럼 자연을 가까이 두고 그 아름다움을 한껏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전시가 있다. 국가유산청 주최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음완보(微吟緩步), 전통정원을 거닐다’전이다. 미음완보는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구현한 한국 전통정원의 풍광에 산수를 노래한 여러 문인의 시를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24년 12월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흘간 열린 바 있다. 전시 기간이 짧아 아쉬웠다는 의견을 반영해 올 2월 24일부터 두 달간의 일정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개막하자마자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둘러봤다.
고즈넉한 전통 정원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다
전시실 입구 막을 걷고 들어가니 계단식으로 구성된 툇마루와 그 앞의 거대한 정원 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의 ‘차경(借景)’ 기법으로 구현한 자연의 풍광을 연이어 보여준다. 연못에 비친 꽃나무의 흔들림,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와 주변의 풀과 나무들, 대나무숲 사이로 난 길 등이 펼쳐진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새의 지저귐과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한적한 정원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은 전시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폭포 미디어아트.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에서 착안한 6m 높이의 폭포가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시원스레 흘러내린다.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진짜 물이 떨어지듯 머리 위에서 물줄기가 갈라진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 가능하다.
금강전도를 배경으로 석가산을 재현한 전시실도 마음에 평화를 더한다. 겸재 정선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화폭에 옮겨 담은 금강전도는 풍광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영상을 통해 펼쳐지는 금강전도의 낮과 밤 모두를 감상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고 밤하늘의 별과 그 사이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있노라면 번잡한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게 된다. 석가산은 국가민속문화유산인 논산 명재고택의 석가산을 본뜬 3차원 모형이다.
네모난 연못 안에 둥근 섬을 둔 정원 양식인 방지원도(方池圓島)를 재현한 공간도 백미다. 섬 한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우직하게 서 있다. 이따금 섬을 감싼 물을 재현한 영상에 파동이 이는데 이때도 나무가 있는 공간을 비껴가며 선이 퍼지는 것이 현실감을 더한다.
도심 속 전통정원인 창덕궁 후원의 사계(四季)와 명승지로 지정된 네 곳의 별서정원(보길도 윤선도 원림, 담양 소쇄원, 담양 명옥헌 원림, 화순 임대정 원림)을 직접 거닐어보는 듯한 체험 공간도 있다. 별서정원은 전원이나 산속에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든 곳을 의미한다. 특히 이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는 실측 정밀 데이터를 활용해 구현했다고 한다. 작은 점들이 모여 형상을 이루고 다시 흩어지는 방식으로 영상을 구현했다.
광화문을 찾았다가 우연히 전시를 봤다는 최지현 씨는 “미디어아트는 원화나 조각 등과 달리 과장된 느낌이라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전시는 전통적인 정원이 주제이기도 하고 편안한 느낌이라 좋았다”며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심 속 고요한 자연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맞춤인 이번 전시는 4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는 무료이며 별도 예약 없이 둘러볼 수 있다. 해설은 하루 두 번(오전 11시, 오후 2시) 약 30분씩 진행된다. 네이버를 통해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접수할 수 있다.
고유선 기자
미음완보, 전통정원을 거닐다
주소 |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
운영시간 | 휴관일 없음, 오전 10시~오후 7시 (오후 6시 30분 입장 마감)
관람료 | 무료
문의 (02)399-1000
[자료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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