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도 올리는 여행 멈출 수 없다면 이렇게 바꿔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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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행자의 새로운 여행 제안
2024년 가을, 태국 치앙마이는 밤새 쏟아진 폭우로 인해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다. 100년 만의 홍수였다. 강 주변 저지대의 작은 집들은 이미 물에 잠긴 지 오래. 오갈 곳 없는 이재민들의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같은 시각, 호텔이 즐비한 님만해민 거리는 추석 연휴를 보내러 온 한국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여행자끼리 모인 메신저 방에는 홍수에도 열리는 야시장은 어디인지, 수영장 이용이 가능한 숙소는 어디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공정여행 네트워크 이매진피스의 임영신 대표도 당시 그곳을 여행 중이었다.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 공존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홍수와 재난 속에서도 여행을 멈출 수 없다면 앞으로 우리의 여행은 어떤 여행이어야 할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임 대표가 찾은 답은 ‘기후여행’이었다. ‘기후여행’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할 수 있는 책임있는 여행 방식이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고민해보기, 한 여행지에 오래 머물기, 탄소중립 숙소 찾기, 텀블러에 물을 채울 수 있는 가게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리필마이보틀’ 사용하기, 카약을 무료로 사용하고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캠페인 ‘그린카약’ 참여 등이다.
그가 책임있는 여행 방식에 대해 고민해온 지는 오래다. 2003년 반전평화운동을 위해 찾은 이라크에 이어 인도네시아 아체, 팔레스타인, 태국 국경지대 등 분쟁 지역과 마주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명과 암이 또렷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관광이란 명목 아래 울창한 숲이 베어져나갔고 한 마을이 점령당하기도 했으며 인간의 비행을 위해 철새들의 터전이 사라졌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올리브 숲을 지키는 여행, 학대받는 코끼리를 지키고 돌보는 여행, 공정무역 커피를 고수하는 여행 등 2007년부터 ‘공정여행’을 제안하고 실천해왔다. 그가 이번엔 ‘기후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을 외치면서 ‘기후여행자’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기후여행은 우리가 머문 곳의 숨과 삶을 지키는, 지구 온도 1.5℃ 상승을 막는 공정여행의 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2025년 1월 한 달에만 내국인 출국자 수는 약 300만 명에 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시대, 여행이 기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후여행자가 되려면 무엇부터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 그를 만났다. 3월 중순인데도 이상기온으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날씨가 뒤죽박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날씨면 많은 사람이 ‘환경 문제가 심각하구나’라는 경각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날씨가 또 이러네’하고 마는 분위기다. 안타깝게도 낯설고 이상하기만 했던 이상기후에 익숙해지고 있다.
기후여행자는 어떤 옷차림으로 나타날지 내심 궁금했다.
일정이 빠듯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급하게 지인 옷을 빌려 입었다. 아, 이 천가방은 어느 여행지에서 10여 년 전에 샀는데 여전히 튼튼하다.
가장 최근 여행지는 어디인가?
네팔에서 지역 호텔에 묵었다. 대규모 체인 호텔은 어느 나라를 가든 그 안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다를 게 없다. 반면 지역 호텔은 그 지역 감각이 살아 있고 현지식당, 상점 등과 연결돼 내가 쓰는 돈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이 제일 맛있는 식당을 알고 있으니 추천받을 수도 있다(웃음).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행한 ‘1.5도씨 라이프스타일 가이드북’에 따르면 하룻밤 호텔 숙박으로 발생되는 온실가스가 85.19㎏에 달한다. 또한 4성급 이상 호텔은 작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20배 이상의 전기와 자원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로컬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재생건축이나 냉난방을 자연적 방식으로 하는 곳, 로컬푸드와 채식 중심 식단을 제공하는 곳 위주로 숙소를 고르려고 한다. 로컬의 시선을 따라가면 더 깊은 여행에 다다르게 된다. 깊은 여행이 내 여행의 기준이다.
기후여행이 20년 가까이 실천해온 공정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느꼈지만 이제 여행이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평소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외치다가도 여행갈 땐 어떤가. 비행기도 타고 단기간에 여러 도시를 이동한다. 대책이 없다는 핑계로 여행은 제로웨이스트 예외 영역으로 여긴다. 지난해 녹색전환연구소의 ‘1.5도씨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로 내 연간 탄소발자국(탄소배출량)을 합산해봤다. 주거, 교통, 먹거리, 소비 등에선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여행 부문에서 수치가 확 오르더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거다. 저가항공 시대가 열리면서 여행이 좀 더 쉬워졌다. 더 이상 여행에 대해서도 눈 감아선 안된다.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관광도 예외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여행이 우선돼야 하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좀 오래 머무는 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긴 호흡으로 지역의 일상을 공유하는 여행이다. 여행 패턴만 바꿔도 선택지가 달라진다. 가령 오래 머무는 여행자들은 빠르게 많은 것을 눈에 담지 않아도 된다. 산책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카페와 공원, 도서관 같은 로컬 공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마트한 세상이잖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머무는 여행을 위한 인프라를 찾을 수 있다. 여행 방식을 무조건 이렇게 바꿔보자는 게 아니다. 늘 하던 여행 중에 하나쯤은 다른 선택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평소 여행 계획을 어떻게 구상하는지 궁금하다.
숙박 예약 플랫폼부터 바꿨다. 환경도, 누군가의 삶의 자리도 파괴하지 않는 숙소를 찾아낼 수 있는 플랫폼 중 하나인 페어비앤비(2014년 베니스의 공정무역·협동조합 활동가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세운 공유숙박 스타트업)를 활용한다. 여행의 전반적인 계획은 반만 짜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현지에서 발견하고 느낀 것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
여행지에 머무는 동안 주로 무엇을 하나?
같은 여행자든 그 지역 사람이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또 어느 도시에 가든 그곳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어 도서관에 다닌다. 그렇게 나만의 장소를 매핑(mapping) 해두면 여행이 더 풍요로워진다. 여행은 그곳에 내 일부를 두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 맺고 싶은 장소의 지도를 넓히는 여정이다.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 등 많은 것을 선택한다. 선택지 중 하나로 기후를 고려한다면 또다른 감각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여행자를 맞는 지역사회가 기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정말 특별하다고 느꼈던 덴마크 코펜하겐이 떠오른다. 코펜하겐은 2000년대 도시 전체가 보행과 자전거에 최적화되면서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문제는 생태계 한계를 넘어선 ‘오버투어리즘(관광객 과잉)’이었다. 시는 여행자들이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며 탄소중립 도시를 함께 일궈나가자는 ‘로컬후드 캠페인’을 펼쳤다. 쓰레기를 주워오면 무료 스키를 제공하고, 유기농장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비건 점심을 주고,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면 무료 카약을 보상하는 방식이었다. 지구와 지역사회, 여행자 모두가 이로운 여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코펜하겐의 이러한 실험이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겪는 지역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여행 말고도 환경을 위한 일상의 습관이 있다면.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소유보다 경험에 관심을 두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여행 갈 때 정도의 옷가지로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유난을 떤다는 시선도 있을 텐데.
나의 유난은 지구를 위한 것이고 모두 자신만의 유난이 있지 않겠나. 우리의 매일이 쌓여서 기후위기 사태가 왔다면 매일을 바꾸지 않고서야 대안이 있겠나. 작고 미약한 개인의 실천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함께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만든 인간임에도 지구를 위해 n분의 1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요즘 말로 ‘멸망테크’를 타는 거다.
이근하 기자
기후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덜 자주, 더 오래 여행하자
-더 깊고, 더 느리게 여행하자
-친환경적인 이동수단을 선택하자
-채식·비건 지향의 식사를 하자
-로컬푸드를 통해 땅과 농업, 지역을 지키자
-저탄소 숙소를 선택하자
-제로웨이스트 여행을 하자
-지역의 문화와 삶의 양식을 지키자
-비인간의 생명권, 동물권을 존중하자
-자연을 복원하는 여행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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