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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공은 나! 이야기 들려주며 잃어버린 꿈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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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 이야기예술인 서바이벌 ‘오늘도 주인공’ 도전자들
6월 30일 서울 광화문에 모인 4명의 6070 이야기예술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방영희·허현숙·방인혜·홍영란 네 명 모두 젊었을 적 연극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한때 네 사람은 연극배우를 꿈꿨다. 홍영란 씨는 결혼하고 나서도 성우로 활약하며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 <피구왕 통키> 같은 작품에서 연기한 적이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된 일이다. 네 사람 모두 몇 십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살았다. 덕분에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낼 수 있었지만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방인혜 씨는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꿈이 있었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40대 후반에 대학로에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려본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도 없었죠. 알음알음 프로필을 돌려서 겨우 단역을 얻었어요. 감지덕지하면서 나갔는데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거예요. 재미있는데 또 허전해요. 그러면서 점점 위축됐어요.”
60대가 돼서는 아예 꿈도 내려놓게 됐다. 꿈을 되살려준 건 ‘이야기할머니’라는 활동이었다. 전국 유아교육기관에 직접 방문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업이다.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하고 유아의 인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활동 중인 6070 이야기예술인은 3179명에 달한다. 이야기예술인들의 활약이 주목을 받으면서 최고의 이야기예술인을 가리는 TV 예능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6월 13일부터 tvN STORY 채널을 통해 전파를 탄 <오늘도 주인공>이 그 프로그램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제작지원한 프로그램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된 6070 이야기예술인들이 이야기 구연 배틀 서바이벌을 펼치고 있다. 예술·문화 시장에서 소외된 노년층이 창작 예술인으로 활약하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이야기예술인이 펼치는 전통 이야기 구연을 K-전통문화 콘텐츠로 육성하자는 취지다. 최종 16명이 결선에 올라 4명씩 팀을 이뤄 우승자를 가리는 <오늘도 주인공>은 7월 18일 최종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 중 네 사람이 이날 한데 모인 것이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경쟁을 하는 일이 긴장되고 피곤할 만도 했지만 마냥 행복했다는 것이 네 사람의 이야기다.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인생의 봄을 맞이한 것 같았다”,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예술인 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방영희, 이하 ‘희’) 2015년부터다. 이야기예술인 활동을 하기 몇 년 전 구연동화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우연히 나가게 된 대회였는데 최고상을 받고 시 낭송대회를 나가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회에 나가 또 좋은 성적을 거두니 이번에는 이야기예술인에 응모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됐다.
(허현숙, 이하 ‘허’) 2016년, 8기로 시작했다. 사실 나도 연극을 했는데 우연히 이야기예술인을 알게 됐고 순간 ‘기쁘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오면서 받은 도움이 많은데 그걸 되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것도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지원을 했고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그때의 기쁨이란 출산했을 때의 기쁨과 맞먹었다고 하면 과장하는 것 같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방인혜, 이하 ‘혜’) 2018년, 10기다. 사실 젊을 때 연극을 했다. 연극하겠다고 떼를 써서 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전공했는데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서 집안일에 매여 살았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종종 학부모로서 학교에 가서 동화구연을 해주곤 했지만 그뿐,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환갑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야기예술인을 알게 됐다.
(홍영란, 이하 ‘홍’) 2021년에 시작했으니 내가 제일 막내다. 이야기예술인 이전에는 성우로 일했다. 1979년에 TBC에 입사했는데 그 전에는 다른 분들처럼 연극을 했다. 성우로 일하면서는 어린이 인형극도 많이 하고 어린이들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조금씩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집안일을 하면서 방송과 멀어졌다. 한때는 직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예술인 활동을 보고 가슴이 다시 뛰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땠나?
(희) 처음 이야기예술인이 됐을 때 손녀를 맡아 키우고 있었다. 손녀를 보면서 교육을 받는 게 쉽지 않았는데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손녀를 업고 이야기 연습을 했다. 이제 겨우 돌 지난 아이가 무얼 알겠느냐만 그래도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몇 년 뒤 손녀는 미국에서 오랜 시간 살게 됐다. 꽤 오래 살았으니 한국말이 서툴러질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손녀의 한국말이 그 누구보다 유창하고 어휘력도 풍부하다고. 그때 딸이 그러더라. ‘이게 다 엄마 덕분이야, 고마워’라고.
내 일을 하면서 손녀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던 일은 이야기예술인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내 선택을 칭찬해주고 싶다.
(혜) 나는 첫날 공연이 생각난다. 이야기예술인은 20분 동안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첫날 긴장을 해서인지 12분 만에 이야기가 끝나버렸다(웃음). 내가 말이 원래 빠른 편인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빨리 말을 한 거다. 그 이후로는 분초까지 보이는 시계를 가지고 다닌다. 연습을 많이 해서 이제는 정확히 20분에 끝낼 수 있다.

이야기예술인 활동을 그저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이야기를 ‘잘 들려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다.
(희) 이 일은 돈이나 다른 무엇 때문에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몸가짐도 바르게 해야 하고 외모도 정돈해야 한다.
(혜) 게다가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야기 하나를 외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툭 치면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막상 현장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돌발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 이야기를 뚝심 있게 끌고 나가려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달달 외워야 한다.
(홍) 우리는 이야기 전달자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은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사람들인데 그것 또한 연습의 산물이다.
(희)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키운다.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혜) 공연한다는 생각을 하고 간다. 젊었을 때 꿈 그대로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거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사실 이야기 중에 위인전 같은 것은 재미가 좀 덜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한 가지 포인트를 찾아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목표는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웃기는 거다. 재미있게 하려고 하니까 동기도 생기더라.
(희)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집중력 있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종종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같이 들으라고 얘기한다.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하며 곁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들으며 앉아 있는 것의 집중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중력 있게 행복하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 병원에 가서도 ‘오늘 할머니 오는 날이라서 빨리 유치원에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할머니 왔어요’ 하면서 뒤에서 안아오는 아이들을 만날 때 그저 행복하다.
(허)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에게 올바른 말,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우리는 연습을 할 때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일일이 심사를 받는다. 사람마다 말버릇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말버릇을 넣거나 이야기 흐름을 자기 식대로 끌고 나가지 않도록 일일이 점검받는다.
(홍) 예를 들어 이야기 속에 할아버지가 등장한다고 하면 대충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으로는 안 된다. 슬픈 목소리도, 기쁜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에 맞게 목소리를 풀어내는 연습도 필요하다.



<오늘도 주인공>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홍) 그동안 이야기예술인을 하면서 많은 기회를 얻었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어서 막상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을 때 지원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딸과 아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번 해봐라 떠밀어서 프로그램에 나가봤다. 막상 나가기 전에는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감기를 앓다 무대에 섰는데 다들 장기자랑 하나씩을 하더라. 뭐 할까 고민하다가 닭소리, 개소리를 흉내 냈다. 사실 이건 아이들에게 무척 좋은 반응을 얻는 장기인데 방송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만약 내가 노래를 부르거나 그랬다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거다.
(혜) 우연히 관계자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배틀 예능 프로그램을 할 건데 한번 나가보라는 얘기였다. 네네, 하고 대답하고 들어와서 자리에 누웠는데 심장이 뛰었다.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는 최고야, 그러니 나가봐.’
가슴 뛰는 일을 하자.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등수나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심사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한번 나가보자. 그리고 도전했다.
당당하게 나갔지만 막상 무대에 서기 전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었다. 너무 떨려서 소파에 누워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일부러 더 당당하게 무대에 나갔다. 진행을 맡았던 개그우먼 박미선 씨가 그러더라. ‘너무 당당하게 나오신다’고. 속으로는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허) 방송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고민했다. 나는 이야기예술인 활동을 하면서 많은 힘을 얻은 사람이다. 이야기예술인 활동을 시작하며 여기저기 도전을 해봤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그 전에는 삶이 조금 우울했는데 아이들을 만나고는 힘이 생기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원서를 썼다.
(희) 나는 객관적으로 나를 판정받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나는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다.

방송을 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
(홍) 방송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많은 카메라가 나를 비출 줄도 몰랐다. 카메라들 앞에 서며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았다.
(허) 처음에는 방송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렇지만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새로운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내 성격과 방송은 잘 안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불꽃 튀는 경쟁도 벌이면서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얻는 성취감 같은 것은 어디다 비할 바가 아니다. 마음이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희)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도 나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나와 다른 할머니들을 보는데 무척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예쁘고 다 좋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그저 반갑고 좋다.
(혜)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지원서를 내면서부터 무대에서 내려오는 시간까지 너무나 행복했다. 이 행복은 짧게 끝나지 않고 계속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많이 위축돼 있었다. 내가 뭣 하나 이뤄낸 것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었다면 어디서도 눈에 띄었겠지’, 그렇지 못했던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나를 바꿔놓았다.
이제 나는 대학로에 자신 있게 나간다. 후배들이 그런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한다. ‘선배를 보면서 희망이 생겼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눈물이 나왔다. 나이가 먹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나를 만들어나갈 수 있구나. 그동안 캄캄한 감옥 속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감옥도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을 뿐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 아마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모두가 바라는 것을 한번 해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을 잃고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 않다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그저 감사하다.
(혜) 나의 멘토였던 육중완 씨가 그랬다. 그분은 그저 행복해 보이잖아. 어떻게 그렇게 늘 행복하느냐고 물었더니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즐거움과 행복은 노력해야 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이야기예술인, 초등학교도 찾아간다

‘6070 이야기예술인(이야기할머니)’의 활동무대가 유아교육기관에서 초등학교로 넓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월 28일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교육부와 협의해 이야기예술인과 늘봄학교 연계 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8월부터 이야기예술인은 늘봄학교에서 방과 후 초등학생에게 옛이야기를 구연한다. 기존에 어린이집에서 전통 이야기 구연 활동을 벌였던 이야기예술인은 별도로 개발된 늘봄학교 특화 프로그램에 맞춰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문체부의 주력 정책인 6070 이야기예술인과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늘봄학교를 연계해 노년층의 이야기 구연 무대를 초등학교로 넓히고 옛이야기 구연을 통해서 유아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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