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번역은 단어 사이 공백을 전하는 것 번역이 한국문학에 날개 달아”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좋은 번역은 단어 사이 공백을 전하는 것 번역이 한국문학에 날개 달아”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한강 작품 번역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윤선미 교수
2013년 ‘채식주의자’ 스페인어판이 출간된 직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도서전에 참가한 한강 작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도서전에서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행사장엔 그를 만나기 위해 온 이들로 가득했다.
“작가님은 행사장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작품을 읽었고 질문도 매우 훌륭했다며 무척 신기해했어요. 지구 반대편의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이토록 잘 이해할 수 있냐면서요.”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 번역아카데미 윤선미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윤 교수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아르헨티나 등 스페인어권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이후 2015년부터 ‘채식주의자’는 영미권과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 작가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윤 교수는 “해외 독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강의 글을 사랑해왔다”면서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힐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덕”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2017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2023년)과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2024년)에 이어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의 작품은 번역원을 통해 28개 언어로 전 세계에서 총 76종의 책으로 출간됐다. 특히 한국문학이 세계무대의 중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번역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도 훌륭한 번역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일찌감치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199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번역원을 설립해 한국문학의 번역·출판을 뒷받침해왔다. 지금까지 번역원이 지원한 작품은 44개 언어, 총 2171건에 달한다. 윤 교수가 ‘채식주의자’에 이어 번역한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번역원의 지원을 받았다. 번역원은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인재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번역원이 배출한 번역가는 1400여 명. 해외에서 출간된 한 작가의 작품 중 6건이 번역아카데미 출신의 손을 거쳤다.
5세에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30대에 한국에 돌아온 윤 교수는 해외 독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매력적인 한국문학과 작가가 많다고 말한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는 정유정, 윤고은, 천운영 등이다. 그는 “훌륭한 한국문학 작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번역의 힘을 길러야 한다”며 거듭 입술에 힘을 줬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남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10월 수상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무척 놀랐다. 수상 발표를 앞두고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너무 많이 울려 집안에 큰일이 났나보다 생각했다(웃음). 이전까지 노벨문학상은 공로상처럼 주어졌기 때문에 한 작가의 수상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받을 만한 분이 받았다고 느꼈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 최초의 수상, 변방에 있던 한국문학의 주류 편입, 방탄소년단(BTS)?‘오징어 게임’의 나라의 문화적 저변 확대 등 이번 수상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지금 한국문학이 세계무대의 중앙에 선 것은 새로운 문학의 등장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간 한국문학은 덜 알려졌을 뿐이다. 무엇보다 한 작가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과 한국작가를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각에선 노벨문학상이 한국의 높아진 국가 위상에 따라 주어진 상이란 의견도 있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영화·드라마·웹툰 등은 이미 세계 중심에 있다. 그 안에 한국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표출되고 있었는데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순수예술 분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발견이 이뤄진 것이다.

‘채식주의자’ 첫 페이지만 읽고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 작가 작품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한 작가의 작품에는 전 세계 어느 독자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고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떤 음식에 대한 불호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폭력을 거부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국가든 개인이 가부장제와 사회폭력 아래 억압을 받아온 역사가 있다. 때문에 한 작가의 작품이 널리 읽힐 수 있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이 아니다. 소설은 끝없이 잔인한 동시에 한없이 아름다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를 설명하거나 폭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거다.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주석을 하나도 달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질문, 보편성이 독자를 강하게 끌어들인다. 더불어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영웅성은 한강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은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읽을 수 있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한강의 작품을 읽었다”고 밝혔다. 변역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번역의 중요성을 방증하는 발언으로도 들린다.
좋은 번역이 없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는 있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바탕엔 좋은 작품이 있었지만 좋은 번역이 따르지 않으면 그조차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노벨문학상 수상에 있어 번역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노벨위원회는 한 작가의 작품을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성이 번역하는 데 있어 어려움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한강의 작품은 상징, 비유가 많고 함축적이다. 공백이 많다는 뜻이다. 문장을 직역하면 전혀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 공백을 해석하고 채우면서 매우 섬세하게 번역해야 한다.

번역은 단순히 이 세계의 말을 저 세계의 말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 같다. 번역도 창작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원작의 의도를 훼손할 위험은 없나?
번역은 단순히 단어나 문장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인지하고 작품에 담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번역가에게 언어 능력보다 문학적 감수성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은 단어 하나하나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문장, 작품 전체가 가진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떨 땐 완전히 문장을 새로 쓰기도 한다. 직역했을 때 의미가 맞지 않는 단어는 빼고 원작에 없는 단어는 추가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번역은 완벽히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원작의 의도는 해치지 않는 창작인 것이다.

특별히 번역하기 어려웠던 문장을 꼽자면.
‘채식주의자’는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여기서 ‘끈질기다’의 의미가 뭘까 무척 고민했다. 전체 맥락으로 보면 주인공 영혜는 생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언니 인혜가 끈질긴 눈길을 던지는 이유가 뭘까. 영혜가 살아 있다는 희망, 그래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번역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번역가 양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번역원 내 번역아카데미는 어떻게 운영되나?
번역아카데미에선 총 7개 언어권(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중국어·일어)을 대상으로 2년제 정규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물론 웹툰, 영화 번역 수업도 한다. 현재 수강생은 75명이다. 여기에 각각 1년제로 운영하는 온라인 실습 야간과정, 신진 번역가를 대상으로 한 학기에 단편 작품 한 편 번역을 완성하는 번역아틀리에까지 합해 총 150명이 번역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인 번역가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원어민 번역가 중심으로 한국문학 번역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매년 번역아카데미 정규과정을 통해 30명 안팎의 수료생이 배출되는데 이 중 90%가량이 외국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번역원 내에서도 갈수록 외국인이 많아지는 추세다. 결국은 도착언어(독자언어)로 문학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강생을 선발할 때도 한국어 능력보다 문학적 표현력을 더 많이 본다. 한국어 수준이 완벽하지 않아도 번역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번역원 수료생들은 K-팝을 들으며 자란 20~30대 젊은이들이 많다. 음악에서 시작한 관심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이어지고 그러다 한국에 여행을 와 어학당에 다니며 한국문학에까지 빠져드는 식이다.

앞으로 한국문학의 해외 출간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번역원 내 출간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궁금하다.
이전까지는 번역가들이 번역본을 해외 출판사에 보내 출간을 제안해왔는데 3~4년 전부터 이 주도권을 출판사에 넘겼다.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번역을 마친다고 해도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해외 출판사에서 먼저 작품을 선정하면 번역원이 지원을 한다. 번역가는 미리 섭외하기도 하고 작품이 선정된 이후 찾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번역이 곧장 출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그 주도권이 출판사에 있기 때문에 신진 번역가가 데뷔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수강생들이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언어권별로 한두 명은 번역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가 부활해야 훌륭한 신진 번역가들이 배출될 수 있다. 더불어 번역 지원도 더욱 늘어나야 한다. 아직까지 문학번역은 지원 없이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해외 출판사가 많지 않아서다. 번역은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탓에 번역비가 무척 적다. 즉 지원금을 늘리는 동시에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 세계 독자가 한국문학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국제적인 저변 확대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뭘까?
무엇보다 해외 출판사의 관심이 커질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들의 관심은 판타지나 스릴러 장르에 국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나라에 뭔가 독특한 새로운 스토리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다양한 한국문학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문학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 번역원이 지원을 안해도 출판사 스스로 출간을 하려고 들 것이다. 번역원에서는 한국문학 해외진출 활성화 플랫폼 ‘KLWAVE(klwave.or.kr)’를 통해 번역·출판·교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포함해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소개하려는 노력에서부터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본격화될 것이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