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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작가를 만들고 작가는 풍경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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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 ‘우이도 1’, 피그먼트 프린트, 100×240cm, 2019 │원앤제이 갤러리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더 줄었다. 삼복(三伏) 무더위와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감염병 때문이다. 무료한 시간을 채우는 데 역시 책만 한 것이 없더라. 역사학자 대니얼 J. 부어스틴이 지은 을 보고 있다. ‘세계를 발견하고 인류를 발전시킨 탐구와 창조의 역사’를 톺아보는 세 권짜리 책이다.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살았던 알두스 마누티우스(1450~1515)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최초의 근대적 출판사를 만든 사람이다.
지금, 여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은 얼마나 많고 다양할까? 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다. 그런데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신하는 세상으로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책보다 사진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얻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강홍구, ‘뻘밭, 화도’,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드로잉 콜라주, 138×276cm, 2002

책, 사진, 그림 넘나드는 ‘B급 작가’
작가 강홍구를 처음 알게 된 건 순전히 책을 통해서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1995년 무렵이었다. 그때 강홍구는 두 권짜리 책 를 펴낸 저자이자 EBS 교육방송에서 미술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한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본 건 2000년대 초반이 돼서였다. 이후로도 그는 꾸준히 미술 관련 글을 썼다. , , 그리고 같은 단행본을 냈고 두툼한 작품집도 여러 권 만들었다. 그럼에도 화가 혹은 예술가로서 자신을 언제나 ‘B급 작가’라고 소개한다.
말이 나온 김에 강홍구가 어떤 작가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가 펴낸 책들에 실린 작가 소개 글을 버무려 인용해본다.
“1956년 전남 신안 어의도에서 태어났다. 웬만한 지도에는 형태도 없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없어진 목포교육대학을 1976년 졸업했다. 1978년부터 6년 동안 소록도 근처 충도라는 섬과 완도읍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섬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섬에 대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게 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할 만했으나 학교를 둘러싼 지극히 후진적인 교육 시스템에 염증을 느껴 도망칠 궁리를 했다.
스물아홉 살 나이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미술 근처로 도망갔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작가 혹은 백수처럼 지내면서 먹고살기 위해 학원 강사, 야학 선생, 교육방송 미술 프로그램 진행, 미술에 관한 글쓰기, 대학 강사 등 온갖 일을 했다.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자칭 B급 작가지만 C급인지도 모르겠으며 아무래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작품을 팔아서 먹고살지는 못하고 온갖 잡수입으로 버티고 있다.”


▶강홍구, ‘만재도 3’, 피그먼트 프린트, 200×140cm, 2018│원앤제이 갤러리

우리 사회의 현실적 풍경 담담히 포착
말은 이렇게 해도 미술계 경력은 화려하다. 리움미술관, 로댕갤러리를 비롯해 금호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우민아트센터 같은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엔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고향인 전남 신안군 일대 섬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신작을 선보였다. 이 전시 타이틀은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신안 바닷가 풍경은 내부자로서 익숙한 장소였지만 몇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낯설게 보였다. 기억에 존재하는 풍경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 사이 낯설음을 특유의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기록했다.
강홍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현실적 풍경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고 컴퓨터로 합성하거나 물감으로 색칠한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 풍경’이란 대부분 부동산 재개발사업 과정에 얽혀 사라진 집과 사람들에 관한 풍경이다. 서울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 김포공항 인근 마을 오쇠리, 불광동 북한산 족두리봉 기슭 산비탈에 지어졌던 집들, 세종시가 들어선 충남 연기군 중촌리 등이 그곳이다.
작가는 말한다. “집이 그렇듯이 미술 작품이라는 것도 의미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사실 끔찍한 현실이 심미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 없다. 빈집과 전쟁터와 폐허가 그러하다. 현실과 심미성 사이에는 균열과 파열이 있다. 미술 작품에 의미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 갈라진 틈새에서 솟아나는 것일 것이다”라고.
강홍구의 작품은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기록한 한 권의 책과 같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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