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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길게 살고 싶다면 달팽이마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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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창평 슬로시티, 전통 5일장
요즘 핸드폰을 보느라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아침은 늘 피곤하다. 이런 일상을 보내다 여행을 떠나 하루 종일 걷다 보면 금세 피곤해져 일찍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느긋한 햇살이 낯선 숙소의 창문으로 들어오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어디로 떠나볼까?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은 이렇게 여유롭게, 또 새로운 곳을 만날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번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슬로시티 삼지내마을(삼지천마을)이다.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이곳은 여행자들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물한다.





느릿느릿 달팽이 여행길
창평 삼지내마을은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슬로시티’는 지역 고유의 자연환경과 역사, 전통, 문화를 지키며 계승하기 위한 도시 만들기 운동으로 2002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현재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30개국 244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창평의 전통 문화성을 소재로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지정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지역 고유의 문화와 음식을 지키는 느린 삶을 추구한다.
삼지내마을에 도착하니 한옥으로 멋스럽게 지어진 창평면사무소가 슬로시티의 대문처럼 우리를 맞이해줬다. 푸른 잔디 위에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 마을 광장을 지나 담장 사이 이단 서까래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슬로시티, 삼지내마을이다.
작은 한옥문 너머로 한 발 내딛자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시냇가의 물소리가 들린다. 조급했던 마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졸졸’ 시냇물 소리에 맞춰 천천히 걸으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변이 신기할 정도로 평온하고 조용해서 오직 물 흐르는 소리만 귓가에 들렸다. 여유로운 휴일 정오, 우리는 슬로시티 품 안에 완전히 안겼다. 부드러운 흙바닥을 밟으며 옛 담장을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자연과 하나가 돼 살고 있었다.
삼지내라는 명칭은 마을 동쪽에 있는 월봉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세 갈래로 마을을 가로지른다고 해서 붙었다. 이곳은 ‘담양 고재선 가옥’, ‘담양 고재한 가옥’, ‘춘강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전통 가옥 여러 채가 잘 보존돼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한과, 쌀엿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생활 속 예쁜 정원’ 장려상을 수상한 한옥을 만날 수 있다.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아름다운 정원에 반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나무 조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널따란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을 가운데로 한옥이 ‘ㄷ’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친절한 한옥집 사람들의 미소가 봄바람 같았다. 뜨거운 햇살에 발갛게 익은 양 볼을 식히며 한옥 정원을 천천히 둘러봤다. 목적지 없이 담장 길을 따라 걷다가 시원한 우물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한옥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나른한 휴식을 취했다. 소나무 정원의 산책길을 따라 새끼 고양이들이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옥 한쪽에 ‘추월산 단풍’이라는 시가 걸려 있었다. 담양의 북단에 위치한 추월산의 붉은 단풍을 보고 이곳에 머물러 자녀를 키우고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써내려간 시였다.
들꽃이 가득 핀 삼지내마을 옛 담장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논 한가운데 담양10정자 중 하나인 남극루가 자리 잡고 있다. 담양군 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인 남극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형 건물로 다른 정자보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한참 너른 논두렁을 걷다가 드디어 삼지내마을의 마스코트인 달팽이를 만났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달팽이는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느림보 달팽이 뒤로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집들이 나타났다. ‘맛있는 쌀엿집’, ‘돌탑을 사랑하는 집’, ‘정원이 이쁜 집’ 등 멋진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한옥들이 왠지 정겹다.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비우고 삼지내마을을 걸으니 따스한 햇살에 몸이 노곤해졌다. 마을 쉼터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쉼터의 정자에 벌렁 드러누웠다.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이 눈부셨다. 따뜻한 공기가 콧속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다 나도 모르게 쪽잠이 들었다.





영산강변의 전통시장, 담양 전통 5일장
담양의 영산강변에는 전통 5일장이 선다. 매달 2일, 7일에 서는 장으로 2·7·12·17·22·27일에 장이 열린다. 5일장이 서는 날에 운이 좋게 담양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먹는 아침밥을 추천한다. 담양군은 대나무의 고장으로, 옛날부터 대나무를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죽세공업이 발달했다. 담양 5일장은 지역 특산품인 대나무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유일의 죽물시장으로 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70년대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오면서 담양의 죽세공품을 찾는 사람이 줄어 현재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판매하는 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방천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시장 입구에서 고소한 튀김 냄새가 진동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파는 곳을 지나자 하얀 설탕이 솔솔 뿌려진 도너츠, 옛날통닭, 쫄깃한 인절미를 판매하는 포장마차들이 보였다. 살찔 걱정에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남편은 이미 계산을 마치고 팔뚝만한 꽈배기를 물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여행은 이런 맛!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먹어야지. 분식 매대로 달려가 옛날 핫도그와 담백하고 짭짤한 번데기를 사서 양 볼 가득 집어넣었다. 샤인머스캣, 블루베리 등 과일도 시식했는데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았다. 인심 좋은 어르신들이 맛보기 과일을 잔뜩 줘서 배가 불렀다. 굳이 뭘 사지 않아도 에너지 넘치는 상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터 구경은 신나는 일이다.

조유리 작가
여행작가이자 인스타그램(@curryuri) 팔로워 19만 8000명을 보유한 인스타 셀럽.
남편인 코미디언 김재우와 함께 ‘카레부부’로 불린다. 저서로 <카레부부의 주말여행 버킷리스트>(2021)가 있다.

박스기사1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인트


‘생활 속 예쁜 정원’ 장려상을 수상한 한옥의 정원
아름다운 한옥 정원의 사랑채에 앉아 마님과 돌쇠 사진을 남겨보자. 운이 좋으면 풀밭을 돌아다니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도 만날 수 있다.


삼지내마을 옛 돌담
청평면사무소의 한식 담장을 따라 이단 서까래 문으로 들어가면 돌담길이 시작된다. 삼지내마을의 포인트인 옛 돌담과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장소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보자.


박스기사2
함께 가면 좋은 여행지


1. 소쇄원
담양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다. 소쇄원(瀟灑園, 국가 명승 40호)은 1530년경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영한 별서(別墅)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해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주된 일상을 위한 저택에서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별저(別邸)를 지칭하는 말이다. 담양에 유명한 정자가 많은 이유는 선비들이 이 평온한 땅에 은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간정원 중에서 최고라고 칭송 받는 소쇄원은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소쇄원을 천천히 걷다 보면 조선시대의 고고한 선비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0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어 담양의 다른 관광지를 본 후 잠시 들러도 좋을 만한 장소다.


2. 관방제림
천연기념물 제366호인 관방제림은 담양읍을 지나 흐르는 담양천의 북쪽 제방에 나무가 심어진 길을 의미한다. 이곳에는 200~300년 동안 자라난 노거목이 줄지어 있는데 1648년 부사 성이성이 제방을 수축했고 1854년 부사 황종림이 관비로 3만여 명을 동원해 관방제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관방제림은 낮에 보면 활기차고 밤에 보면 반짝반짝 로맨틱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길이다. 담양군에서 관광객을 위해 관방제림과 영산강문화공원 길에 별이 반짝이는 조명 연출과 스토리가 담긴 로고젝터(바닥에 특정 로고나 문구를 투영해주는 장치)를 설치해 별빛 달빛길을 조성했다.


3. 담양국수거리
담양은 특히 맛있는 음식이 많고 손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관방제림 강둑을 따라 국수 식당이 줄지어 있는 국수거리가 있다. 구수한 멸치육수의 향과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비빔국수를 보면 어느덧 주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담양천 근처에 대나무 제품을 사고파는 죽물시장이 서는 날에만 열리던 국수 포장마차들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 담양의 명물인 국수거리가 생겼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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