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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이 청와대서 땀 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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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1년을 말하다 ①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대문을 열었다. 1년 만에 340만 명이 관람했다. 관람객 수로 2022년 370만 명이 방문한 에버랜드에 이어 2등이다. 흥행 대박이다. 오늘도 분수대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세버스들이 진을 치고 있다. 올 들어서는 외국인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역대 정부가 청와대 관람범위를 조금씩 넓혀왔지만 핵심시설의 빗장을 풀지는 않았다. 그나마 안내자를 따라 정해진 동선으로 다녀야 했다. 마침내 활짝 열린 청와대는 대지 25만 3505㎡로 축구장 35개 넓이다. 신분을 확인하고 문을 들어서면 무엇부터 봐야 하나 막막하다. 대개 미리 공부하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앞사람만 따라가면 되니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지형과 건물을 대충이라도 알고 가면 돌아보는 재미가 그만큼 크다.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을 보는 데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출입문은 정문, 영빈관앞문, 춘추관문 세 곳인데 들어가는 문에 따라 관람코스가 달라진다. 이 중 영빈관~본관~소정원~수궁터~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춘추관 코스를 설명한다.
영빈관은 외국에서 온 귀빈을 맞는 공식 행사장이다. 1978년 완공 뒤 첫 행사는 박정희 9대 대통령의 축하 연회였다. 화강암 기둥 30개가 떠받치고 있다. 2층까지 뻗어 있는 정면 기둥 넷은 이음매가 없는 13m짜리 통돌이다. 현대건설이 이명박 사장 시절에 지었다. 초기에는 1층 내부를 공개했으나 다시 영빈관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문 앞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 영빈관 공사를 계기로 현대건설은 1991년 본관 공사도 맡았다. 당시 이명박 회장이 나중에 17대 대통령이 되니 묘한 인연이다.
본관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던 공간이다. 1층에 영부인이 쓰던 무궁화실, 간담회 장소인 인왕실이 있다. 2층에는 집무실과 접견실, 귀빈을 만나던 백악실과 비서실장실이 있다. 본관 왼쪽 별채인 세종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오른쪽 별채 충무실에서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만찬을 열었다. 방마다 다른 조명과 스위치의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비 모양의 샹들리에는 무궁화실에만 있다. 본관 지붕에는 도자기처럼 구운 청기와 15만 장이 올라가 있다.
본관을 나서 소정원에 들어가려면 불로문(不老門)을 지나야 한다. 창덕궁 애련지 옆에 있는 불로문이 원조로 똑같은 모양이다. 커다란 화강암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 집무실로 썼던 경무대는 수궁터에 있었다. 4·19혁명 뒤 윤보선 대통령이 이름을 청와대로 바꿨다. 이를 김영삼 대통령 때 철거하고 정원을 만들었다. 고려 충렬왕 때 심은 745세 된 주목이 서 있는 자리다. 정원 잔디밭에 있는 절병통(지붕마루에 있는 항아리 모양 장식)이 옛 집무실 자리를 알려준다.
관저는 경내에서 가장 높고 깊숙한 곳에 있다. 대통령 가족의 생활공간인 만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전속 사진사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관저 정문 인수문 앞에는 노태우·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가 서 있다. 옆에 있는 연못에서 물이 흘러 녹지원 숲으로 내려간다.



관저 자리에는 본래 한옥 침류각과 정자 오운정이 있었다. 1990년 지금의 관저를 지으며 오운정은 그 뒤편으로, 침류각은 아래쪽 상춘재 옆으로 이사했다.
상춘재는 청와대를 방문한 외국 정상들과 차담을 나누는 단골장소다. 앞에 너른 잔디밭이 있고 우거진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일대가 녹지원이다. 청와대 어디나 풍광이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녹지원이다. 관저 쪽에서 내려온 물이 녹지원 개울로 흘러들어 주변은 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시원하다.
잔디밭 둘레길은 김영삼 대통령의 조깅코스였다. 1993년 서울에 온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함께 이 길을 달렸다. 본래 가벼운 이벤트였는데 현장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승부욕이 발동했다. “미국 사람이니 다리도 길고 얼마나 빨리 뛰겠노. 하지만 지지 않을 끼다” 하며 냅다 달렸다. 한두 바퀴 뛰는 모습만 보여줄 계획이 깨져 결국 15분 20초 동안 12바퀴를 돌았다. 클린턴 대통령이 당황해 땀깨나 뺐다는 후문이다.
잔디밭 옆에 서 있는 여민1관은 노무현 대통령 때 지은 집무실이다. 본관과 비서동의 거리가 멀어 소통에 문제가 많다는 여론에 따라 대통령이 비서진 옆으로 내려왔다. 여민관 옆 헬기장을 거쳐 기자실이 있던 춘추관 문을 통해 나가면 오늘의 청와대 구경 끝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길을 거꾸로 가도 된다.
청와대는 당대 최고 정원 중 하나다. 208종, 5만 5000여 그루의 나무와 셀 수 없이 많은 풀이 철마다 꽃을 피운다. 사시사철 색깔이 달라지는 청와대지만 그래도 가장 보기 좋을 때는 4월과 5월, 10월과 11월이다.
경내에 가게가 없으니 생수와 초콜릿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는 챙겨서 가시길. 걷는 거리가 만만찮은 만큼 햇빛 가리개, 가벼운 옷, 운동화 차림은 필수다. 하이힐 신고 다니다가는 주저앉는다.

안충기 중앙일보 기자· <처음 만나는 청와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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