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국민 곁으로 용산어린이정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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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간 외국군 주둔지로 쓰였던 용산이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일본군 주둔지, 주한 미군기지로 불린 용산공원은 금단의 땅이었던 과거를 흘려보내고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킨 국민과 약속
일반인에게 문을 열고 5일이 지난 5월 9일 찾은 용산어린이정원은 서울 시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 국민과의 약속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인 시절 가진 기자회견에서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수십만 평 상당의 국민 공간을 조속히 조성해 임기 중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정부는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용산어린이정원을 국민에게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킨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부지는 용산기지 약 243만㎡(약 74만 평) 중 30만㎡(약 9만 평)다. 기지반환은 한미 SOFA(주한미군지위협정)협상을 통해 용산 미군기지 반환이 결정된 뒤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2022년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기지반환이 가속화되기 시작해 정부는 2022년 58.4만㎡(약 18만 평)를 돌려받았다. 용산어린이정원은 반환받은 부지의 절반에 해당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용산어린이정원을 개방하기 위해 꾸준히 환경모니터링을 시행했다. 2022년 9월, 11월, 2023년 3월에 실내 5곳과 실외 6곳의 공기질을 측정해 주변 지역과 비교했다. 비교 지역은 유동인구가 많은 용산역과 노약자가 주로 이용하는 경로당 및 어린이공원 등이다. 모니터링 결과 실외는 측정물질이 모두 환경기준치보다 낮거나 주변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내 역시 사무실 공기관리지침 등 관련 환경기준에 모두 부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15㎝ 이상 두텁게 흙을 덮은 후 잔디나 꽃을 심었고 매트나 자갈밭을 설치해 기존 토양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 지상 유류 저장탱크를 없애는 등 안전에 문제가 될 요소들을 완전히 차단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의 주출입구는 수도권 지하철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다. 공원을 크게 두르고 있는 벽 너머로 들어가면 바깥 풍경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은 장군숙소 지역이다. 빨간 지붕의 단독주택이 밀집된 이 지역은 미군 장군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집의 내부를 새로 구성해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종합안내소에서 예약확인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나는 홍보관은 용산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놓은 공간이다. 용산은 예로부터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였다. 때문에 군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19세기 말 임오군란과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했다. 이후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군 주둔지로,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로 쓰였다. 홍보관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용산의 120년 기록을 살펴보고 난 다음에는 용산서가로 이어진다. 이곳은 어린이와 일반 방문객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휴게공간이다. 어른들이 이용하는 공간은 갈색의 서재 느낌으로, 어린이서가는 초록빛으로 공간을 채웠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울 만한 것으로 엄선됐다.
용산서가를 지나면 이음마당과 이벤트하우스가 나온다. 이음마당은 녹음 속 쉼터인데 버스킹(거리 공연)이나 페이스페인팅(얼굴 그림) 등 어린이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수시로 열린다. 일제강점기 참모장 관사로 사용한 공간은 어린이의 문화체험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벤트하우스로 새 단장했다. 현재는 이번 개방을 기념하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가 사일로랩이 만든 작품 ‘온화’는 따스한 불빛으로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의 미래를 밝힌다는 의미를 지녔다. 전통 호롱불 모양을 한 불빛들이 꺼지고 켜지면서 공간을 점점 따뜻하게 채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원을 돌아보니 공간 곳곳에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단차가 있는 공간에는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돼 있었다. 이어지는 공간은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는 카페 어울림이다. 카페 어울림은 사회, 환경 등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탄소저감 원두를 사용한다. 쿠키, 스콘, 밤만주, 파운드케이크 등 디저트류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에서 만든 것이다. 가격도 인근 커피전문점보다 저렴해 방문객이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카페 어울림을 나서면 기록관 두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첫 번째 기록관은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이곳에서 실제로 생활했던 미군가족의 생활을 재현한 곳이다. 미국 공군 제6146 공군 고문단에서 근무한 웬델 E 코스너 중령의 장녀 수 카이저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성된 이곳은 코스너 일가가 당시 살았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집안 곳곳에 카이저 씨의 추억을 기록한 글이 적혀 있어 당시 미군 가족의 일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록관에는 영화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1960년대 미국 가정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벽난로와 피아노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국의 전통 예술품을 모았던 가족의 취향도 엿볼 수 있다. 안쪽에는 웬델 코스너 중령의 서재가 있는데 1970년 6월 2일 김성룡 공군참모총장이 준 감사편지도 전시돼 있다.
두 번째 기록관은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용산 미군기지에 있었던 다양한 시설 소개를 비롯해 한국 대중음악을 선도했던 미8군 클럽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오른쪽 공간에선 미군기지에 있는 다양한 시설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기록관에서 본 수 카이저 씨가 다닌 아메리칸스쿨을 비롯해 주한 미군 및 자녀들이 주로 다녔던 대학인 메릴랜드, 오클라호마대, 센트럴텍사스대, 트로이대, 피닉스대 분교에 대한 소개도 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 관저로 쓰였다가 주한미군 군병원으로 사용된 브라이언 올굿 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에 얽힌 이야기도 볼 수 있다. 피자헛, 써브웨이 등 지금 우리에게 흔한 음식점들이 용산 기지에는 1980년대에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도 흥미롭다.
왼쪽 공간에는 1951년부터 1960년 중반까지 이어진 미8군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록관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한명숙의 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방문객을 반긴다. 당시 이곳에서 실제로 활동한 가수인 윤복희, 윤항기, 한명숙, 현미가 미8군 클럽에 대해 직접 증언했다. ‘미8군 쇼’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열어줬고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진원지였다. 스타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출연료, 무대구성, 오디션 등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노는 잔디마당
기록관까지 관람을 마치면 약 7만㎡의 푸른 잔디마당이 펼쳐진다. 과거 미군들이 야구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 캐릭터 ‘마시마로’가 반기는 잔디마당은 숨차게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넓다. 가로수가 그늘을 만드는 곳에는 빈백(쿠션이 있는 편안한 의자)이 설치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잔디마당 반대편으로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대통령실 모습이 보인다. 잔디마당에서 대통령실은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야말로 집무실 앞마당인 셈이다.
잔디마당 위쪽에 조성된 전망언덕에서는 대통령실을 더 잘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꽃이 심어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함께 심은 나무가 있다. 5월 4일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기념해 윤 대통령 부부는 함께 소나무를 심었다. 대통령 부부가 다녀간 공간에는 대통령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시민이 많았다.
전망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스포츠필드가 있다. 어린이축구장과 어린이야구장에선 대통령실 초청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와 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야구대회만 진행됐다. 야구장이 가까워지자 “담장 넘어로!”라며 목 터지게 응원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북 포항 대해초등학교와 광주수창초등학교의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앞서 경기를 마친 부산 수영초등학교 야구부 어린이들이 잔디마당으로 달려갔다. 기자가 경기 결과를 묻자 한 어린이가 “5대 1로 이겼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다른 어린이는 “우리 학교는 이대호·추신수 선배를 배출한 야구 명문학교다. 오늘 경기에서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수영초 어린이들은 잔디마당 한가운데서 야구모자를 하늘에 날리며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나게 잔디마당을 달리며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용산어린이정원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장가현 기자
용산어린이정원 방문정보
주소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38길 21
사전예약 용산어린이정원 누리집(yongsanparkstory.kr)
운영시간 매주 화~일요일
휴관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
문의 070-8833-5800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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