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확장의 필수요건은 문화” K-콘텐츠 외교사절 맹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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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4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린 가운데 500여 명의 의원을 상대로 연설했다. 연설을 경청하던 의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윤 대통령이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도 없는 즉석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제 이름은 모르셨어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고 계셨을 겁니다.”
좌중에 웃음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한미 양국의 음악차트에서 상대방 국가의 가수 노래가 순위에 오르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미국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고 한국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킬러콘텐츠를 생산해 공급하는 새로운 양상의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70년간 굳건하게 이어져온 한미동맹이 전통적 영역인 안보를 넘어서 문화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 말이다. 문화동맹으로서 강화된 한미동맹의 진전된 모습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첫날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방미 첫 공식 일정은 백악관 블레어하우스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대표 접견이었다. 벨라 바자리아 최고콘텐츠책임자(CCO), 데이비드 하이먼 최고법무책임자(CLO) 등 경영진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넷플릭스는 앞으로 4년간 K-콘텐츠에 25억 달러, 약 3조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껏 넷플릭스는 특정 국가에 대한 투자 계획이나 투자 규모를 밝힌 적이 없다. 이번에 넷플릭스 경영진이 윤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K-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발표한 이유는 한미동맹과 K-컬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서랜도스 대표가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기업의 관계가 마치 한미동맹과 같다고 말했는데 100% 공감한다”며 “한미동맹은 자유를 수호하는 가치동맹인데,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서랜도스 대표도 “저희가 이렇게 결정내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창작 업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또 한국이 멋진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작품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피지컬:100> 등을 언급했다.
한미동맹의 한 축이 된 문화동맹
문화동맹은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미동맹은 경제적 이익이나 군사적 목적으로만 맺어진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동맹은 가치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5월 2일 국무회의에서 국빈 방문 성과를 이야기하며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의 주춧돌 위에 안보동맹, 산업동맹, 과학기술동맹, 문화동맹, 정보동맹이라는 5개 기둥을 세웠다”며 “이들 5개 분야의 협력이 확대되고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미래로 전진하는 행동하는 한미동맹’이 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4월 27일 방미 당시 미국영화협회(MPA)에서 개최된 ‘글로벌 영상콘텐츠 리더십 포럼’에서 한 인사말과도 맞닿아 있다. 이 포럼에는 미국영화협회를 비롯해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NBC유니버설, 소니픽처스, 월트디즈니, 넷플릭스 등 6개 글로벌 영상콘텐츠 기업의 경영진이 자리했다. 점유율만 따져봐도 세계 영화 및 비디오 시장의 77%,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45%를 이들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6개 기업이 한자리에 모일 일이 드문 만큼 대통령실은 이를 두고 “한국 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콘텐츠는 자유의 가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며 “세계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핵심요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양국의 문화 분야 협력이 오늘 행사를 계기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세계가 하나의 싱글마켓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 있는 여러 가지 문화나 영화 관련 규제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철폐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문화와 소프트파워의 부흥을 위해서는 규제 철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월 28일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연설한 후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대담한 자리에서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예정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규제를 해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영화 <미나리>와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을 언급하며 K-콘텐츠의 성공은 “순수하게 민간과 시장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마켓을 단일 마켓으로 만들 수 있게 개별 국가에서 규제를 먼저 풀어가는 쪽이 소프트파워를 키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발맞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문화동맹 관련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체부가 구성하기로 한 ‘한미 문화동맹 태스크포스(TF)’가 대표적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확장된 문화동맹 관련 정책을 면밀하게 재점검하고 후속조치를 짜임새있고 신속하게 추진하는 조직이다.
촘촘해진 ‘한미문화예술 동행’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문화동맹을 더욱 촘촘하게 이어나간 기회이기도 했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여러 약속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4월 25일에는 워싱턴DC에서 ‘K-관광 전략회의’가 열렸다. 백악관 인근에 있는 19세기 외교유산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열린 회의에는 미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과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미국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MZ세대들은 K-팝과 드라마의 영향으로 K-푸드와 패션, 뷰티 등 K-컬처 전반에 관심이 생기고 한국여행을 꿈꾸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만이 가진 무기인 K-컬처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가족여행 수요를 공략하고 타깃층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문체부는 2023년 미국 관광객 1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MZ세대 팬덤을 겨냥한 K-컬처 특화상품 개발과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7월에는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8월에는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케이콘(KCON)과 연계한 ‘K-관광 로드쇼’를 열어 K-컬처와 함께하는 한국관광의 매력을 소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문화로 이어지는 한미동맹은 여러 협약을 통해 강화된다. 4월 27일 열린 ‘글로벌 영상콘텐츠 리더십 포럼’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넷플릭스와 협약서를 체결했다. ‘콘텐츠산업 인력교류 및 K-콘텐츠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으로 글로벌 OTT 기업과 협력을 통해 K-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K-컬처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 기관은 K-콘텐츠 제작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교류 기회 제공, 신진 콘텐츠 인력 육성 프로그램을 후원하기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OTT 시장의 현장수요에 맞는 글로벌 수준의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콘진원은 인력양성을 지원한다. 콘진원은 넷플릭스와 함께 넷플릭스 시리즈와 영화를 통해 한국 문화와 한류를 확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영진위와 넷플릭스는 신진 영화인력 육성에 협력해 ‘넥스트 봉준호’ 발굴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체부와 미국 스미소니언재단의 업무협약도 이뤄졌다. 예술기관을 관장하는 한미 정부기관 사이의 첫 양해각서로 양국 문화기관 간 교류·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취지가 담겼다. 이를 통해 문체부 산하 23개 국립박물관·미술관 등 국내 문화예술기관과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기관인 스미소니언재단 산하 21개 문화예술기관 사이에서 전시 소장품 교류, 인적 교류, 역사문화 공동연구를 포함해 다양한 문화협력을 펼칠 수 있는 획기적인 기반이 마련됐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정상외교 동안 문화·예술·과학·역사의 세계 최대·최고의 전시공간인 스미소니언과 양해각서 체결은 70년 한미동맹이 ‘한미문화예술 동행’으로 새롭게 확장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이번 양해각서에 들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상호 연구 교류 협력 사업과 관련해서 양국 간 MZ 미래세대 교류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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