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삶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고 책마을해리의 마법에 빠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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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이 거대한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광화문 책마당’과 ‘책 읽는 서울광장’이 조성돼 오는 11월까지 운영된다. 세계 책의 날은 1995년 유네스코가 독서를 장려하고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제정했다.
책 읽기가 특별한 이벤트가 될 만큼 책을 멀리하는 시대, 365일 책을 통해 지역 사람들의 삶을 마법처럼 바꾸고 있는 곳이 있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 있는 ‘책마을해리’다. 이곳에서는 11년째 지역 사람들이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나이와 직업은 상관없다. 내 이야기도 좋고 지역의 이야기도 좋다. 글을 써서 같이 편집하고 책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책은 모두 정식 출판된다. 물론 인세 같은 수익도 받는다. 평생 논밭에서 일하며 글도 모르던 마을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고 책을 펴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작가다.
‘출판캠프’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콘텐츠로 연결됐다. 책뿐만 아니라 연극이 태어나거나 영화가 만들어지고 여러 매체와 결합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은 ‘책마을해리’의 이대건 촌장이다. 책으로 지역과 지역 사람들의 삶을 바꾼 마법을 일으켰다고 해서 ‘고창의 해리포터’로 불린다. 이 촌장은 서울에서 책을 편집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2012년 이곳 폐교를 인수해 책마을해리를 만들었다. 폐교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해 책마을해리가 모양을 갖추기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하자면 대하 시리즈를 펴내고도 남는다.
2005년부터 고창에 드나든 그는 폐교에 책을 읽고 만들 수 있는 공간들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북스테이를 운영했다. 그동안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책마을해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새로운 마법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 교사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벌이고 청년들이 들어 오 면서 책마을해리는 지역을 넘어 본격적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청년·마을 어르신이 하나로
책마을해리는 2019년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기 전 청년출판대학을 진행했다. 코로나19 기간엔 진행하지 못하다가 2022년 1월 보름 정도 청년책학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내용을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2023년 1월부터 닷새살이, 일주일살이 등 단기 프로젝트를 시도했는데 자연스럽게 모임으로 연결됐다. 2월에는 부산, 통영, 남해 등 다른 지역을 한 바퀴 돌며 7명의 청년이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올해는 생태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북스테이로 풀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1주일 북스테이를 하는 동안 책도 읽고 몸과 마음의 건강도 챙기는 힐링의 느낌이 더 강한 프로그램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승마장과 연계해 말과 교감하고 편백 숲을 거니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마지막에 글을 써서 모으면 책이 되는 방식이다.”
이 촌장의 말이다. ‘메이커스테이’라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플라스틱 바다쓰레기를 주워서 책갈피 같은 굿즈(상품)도 만들고 판매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더해 아트스테이, 힐링스테이, 팜스테이, 플레이스테이 등 프로그램도 다양화될 예정이다. 이런 활동들은 외국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도 연계된다. 청년 예술가들이 와서 지내면서 작품을 만들고 같이 전시하는 것도 기획 중이다.
이 모든 활동의 마지막은 결국 책으로 통한다. 프로그램의 과정은 글로 옮겨져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핸드북 형태로 제작해 시리즈로 제작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 ‘해리포터’라는 별명대로 이 촌장은 꿈 많은 소년처럼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지난해 예술가들과 마을 어른들이 협업해 고창국제생태예술제를 했다. 예술제는 처음이었지만 의미가 있었다. 서해에 많이 서식하는 상괭이들이 죽은 채 해변에 떠밀려오는 모습들이 인근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대부분 지느러미나 꼬리에 밧줄이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물 때문에 죽어간 상괭이들은 해양오염에 따른 척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 전시도 하고 큰 조형물도 만들었다. 특히 예술가들이 멘토로 참여해 반응이 좋았다.”
책마을해리를 중심으로 이곳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청년들과 마을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어울린다. 지난 정월대보름에는 청년들이 땅콩을 직접 볶아 마을 어른들에게 나눠주면서 인사를 다녔다. 풍물연습을 해서 지신밟기도 했다. 난생 처음 북과 장구를 쳐보는 청년들도 있었다. 달집을 태우며 마을 어른들과 청년들은 하나가 됐다.
몽골에도 책마을해리 만든다
책마을해리는 지난 3월 6일부터 9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린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도 참가했다. 책마을해리의 다양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들을 선보이고 그림책을 시작으로 한국어 판권을 판매하는 등 글로벌화도 준비하고 있다. 그림은 만국의 공통 언어다. 글을 몰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글로벌 책마을해리를 만들기 위해 이 촌장은 지난 1월 몽골에 다녀왔다. 몽골을 거점으로 그림책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림책 작가들을 보내 유라시아 내 다양한 테마를 책으로 엮어내는 것을 고민 중이다. 몽골에 작은 책마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몽골을 시작으로 남미와 북미, 유럽 등 글로벌 거점들도 하나씩 만들 예정이다. 어떻게 확장하고 자생력을 키울 것인지 책마을해리의 청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이다. 이 촌장은 “몽골에 갔더니 한국에서 왔다면서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책마을해리는 교사·학생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연결돼 있다. 2013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책을 주제로 한 캠프를 열어왔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졸업 후 청년이 돼서도 책마을해리와 인연을 이어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합류한 청년들은 ‘해리포터즈’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중심에는 이 촌장의 두 아이가 있다.
이 촌장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아이들도 같이 출판캠프를 진행하며 성장했다. 아이들 키우듯이 책마을해리도 같이 커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마을해리의 유학생들
책마을해리 덕분에 마을 인구도 늘고 있다. 2023년 두 가족이 책마을해리 때문에 이 마을로 이주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유학하기 위해서다. 전라북도·고창교육청과 연계해 책마을해리 인근 동호초등학교에서 1년을 다녀보는 프로그램이다. 전교생이 20여 명 남짓인 시골학교에 초등생 두 명과 유치원생 한 명이 전학온 덕분에 전교생이 10% 이상 늘어나게 됐다. 유학생들은 방과 후 책마을해리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촌장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다양한 대안학교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데 농촌 유학 프로젝트가 시작돼서 반갑다”면서 “10년 동안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줄 알았는데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촌장은 폐교로 방치된 책마을해리를 지금까지 키워온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 과제는 청년들이 이 공간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이곳에 뿌린 마법의 씨앗이 책마을해리의 느티나무처럼 큰 그늘을 만들고 많은 사람을 품고 있다.
양화니 객원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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