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많아져 베어베터 문 닫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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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 우수 기업 베어베터
김정호·이진희 대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찾은 날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다. 똑같은 백팩을 멘 사람이 줄지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기에 퇴근하는 직원들인가 싶었지만 오후 1시, 퇴근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몇몇은 작은 상자도 들고 있었다. ‘여기가 일자리 모범 기업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또 다른 무리가 똑같은 백팩을 메고 길을 나섰다. 김정호 대표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에야 수상한 백팩 무리가 일하는 중임을 이해했다.
“다들 배송 나가는 거예요. 오전·오후로 나눠 보통 4시간씩 일하는데 오전 조가 끝났나보군요.”
베어베터는 네이버 공동창업자인 김정호 대표와 네이버 출신 이진희 대표가 2012년 의기투합해 설립한 사회적 기업이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이 대표가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 김 대표와 머리를 맞대 지금에 이르렀다. 발달장애인이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하게 일하는 모습을 곰(베어)으로 형상화하고, 더 나은(베터) 세상을 향한 모험을 시작했다. 베어베터에는 발달장애인 259명, 비장애인 100명이 함께한다. 주요 업무는 명함 출력·포장·배송, 원두 로스팅, 쿠키 제조, 꽃 배달 등이다.
베어베터는 선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세워 품질이 떨어지는 순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일자리 안정성과도 직결됐다. 다만 곰처럼 느린 속도는 보완할 방법이 필요했다. 김정호·이진희 대표는 그 답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에서 찾았다. 현행법상 50명 이상의 기업은 전체 근로자의 3.1%를 장애인 근로자로 구성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3.6%로 그 기준이 더 높다. 의무고용률에 미달한 기업·공공기관에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부과된다.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과 거래하면 거래금액의 절반까지 고용부담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직원의 70% 이상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베어베터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해당한다.
이윤 대신 고용을 택한 두 사람의 ‘이상한 모험’은 장애인 일자리 창출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김정호·이진희 대표는 또 다른 모험을 감행 중이다. 기업들이 공동 출자해 직접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드는 모델을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발달장애인은 대기업 자회사에 소속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할 수 있어 고용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현재 베어베터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500여 개 기업과 함께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설립 20주년에는 베어베터가 없어질 수 있다”고 김 대표는 기대한다. 일반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표준사업장을 조성해 장애인 고용의무를 다한다면 사회적 기업의 역할이 굳이 필요 없다는 의미였지만 한 회사의 경영자로서는 이상한 목표다.
베어베터가 자리 잡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듯하다.
(이진희 대표, 이하 이) 시행착오가 많았다. 시작은 대학교 앞 복사 가게였다. 복사는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발달장애인이 한다고 품질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가게를 열었더니 요즘은 PDF를 쓰더라(웃음). 그래서 기업과 거래하며 관계를 쭉 이어갈 수 있는 분야로 얼른 방향을 바꿨다. 기업에 납품하는 인쇄·제본, 명함을 취급하다가 장애인 연계고용을 발견했고 고용부담금 감면 혜택을 활용하면서 제과·제빵, 꽃 배달, 원두 로스팅, 카페 운영 등으로 일하는 영역을 넓혔다.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준이 있나?
(김정호 대표, 이하 김) 혼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수 있어야 하고 10여 개 팀에서 한 군데라도 같이 일할 수 있겠다고 판단이 들면 채용한다. 소통은 잘 안돼도 괜찮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채용 기준이 높다고도 한다. 발달장애인 10명 중 3명 정도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장애 인구는 5.1% 정도 된다. 국민의 약 260만 명이 해당한다. 그중 200만 명이 50세 이상, 후천적 장애를 입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집중하는 부분은 성인이 되고 일을 할 수 있는 50세 이하다. 약 50만 명으로 볼 때 절반이 발달장애에 해당하고 그중에서도 30%는 베어베터에서 일할 능력이 있는 셈이다.
베어베터와 연계고용하는 기업의 반응은 어떤가?
(이) 재계약률이 약 95%다. 분사해서 조직이 작아지거나 인원이 줄어 장애인 고용의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전부 거래를 이어간다. 품질·서비스 면에서 차이가 없고 연계고용에 따른 감면 효과로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어 그렇다.
선의보다 품질로 경쟁한다고 들었다. 경쟁력은 어떻게 높이나?
(김) 명함 1통을 베어베터와 1만 4000원에 거래하면 정부에서 7000원을 지원받는다. 다른 업체와 1만 원에 거래하면 3000원을 손해 보는 구조니까 베어베터와 계속 거래하게 된다. 장애인 연계고용제도를 활용해 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중간 모델을 찾은 거다.
(이) 선의에 기대하면 한두 번은 이용하겠지만 지속하긴 어렵다. 일자리는 하루 이틀로 끝나는 분야가 아니라 품질, 납기, 서비스 등의 경쟁력이 필수다.
베어베터는 또 다른 회사 ‘브라보비버’를 운영한다.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베어베터와 달리 브라보비버는 기업들이 출자해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조성하는 형태로 유지된다. 지난 3월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에 조성한 ‘희망별숲’이 대표적이다. 베어베터는 희망별숲에 인력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삼성전자가 100% 출자한 ‘희망별숲’은 근로자 62명 중 발달장애인이 52명이다. 모두 정규직이다.
기업이 출자하는 형태의 장애인 표준사업장 ‘브라보비버’를 인천, 대구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이유가 있나?
(김) 지방에는 장애인 일자리가 많지 않다. 최근 대구에서 100명쯤 지원했는데 절반을 뽑았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베어베터는 기업에 납품해가며 직접 고용을 창출하는 모델인데 계산해보니 수천 명 채용이 한계였다. 반면 기업이 가세한 브라보비버 모델은 5만 명까지도 가능하겠더라. 베어베터는 결국 없어져야 할 회사다. 연계고용제도를 활용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유인책을 제공했을 뿐 장애인 일자리의 대안은 브라보비버다. 기업이 출자해 자회사형으로 만들고 그에 맞는 급여를 줘야 지속가능성이 있다.
100명씩 지원한다는 건 지방에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방증으로 보이는데.
(이) 서울 지역은 이력서를 받아보면 그래도 몇 줄씩 적혀 있다. 지방은 제대로 고용돼 일한 사례가 얼마 안된다. 2~3개월씩 중증장애인 인턴제로 일한 게 고작이다. 그런 건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다. 지방에서도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
(김) 10년 전만 해도 서울 역시 채용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구름같이 몰려왔다. 요즘은 상황이 나아져 공고를 3~4번씩 낼 정도다. 모순적이게도 지원자가 없으니 잘된 거다. 서울은 아까 말한 30%에서 중증장애인으로 점차 채용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다. 하지만 지방은 아직 멀었다. 일하는 발달장애인 자체가 적다.
장애인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중요할 것 같다.
(이) 장애인 자녀가 일하지 않았으면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계속 곁에 있어야 한다. 한 명의 일자리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복지 수혜자에 그치면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고용의무 이행 정도에 따라 부과된다.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을 때의 부담금은 미달인원 1인당 최저임금(월 201만 580원) 수준이다.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채우지 못했을 때 부담하는 기초금액은 120만 7000원으로 인원에 따라 차등 가산된다.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행사에 참석했다.
(이) 윤석열 대통령이 발달장애인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다. 막연하게 “좋은 일 한다”는 덕담보다 관심을 갖고 질문해줘서 좋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를 하는지 설명하고 일을 쉽게 제공할수록 더 일할 수 있다고 답했다. 참석한 기업 중에는 베어베터 연계고용사도 많아 반가웠다. 다만 여전히 고용부담금을 내는 기업이 많다. 고용부담금이 연봉보다 저렴해서 그렇다. 웬만한 의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장애인 의무고용이 확실히 이행되려면 고용부담금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애인 고용 대신 고용부담금을 내는 기업이 꽤 있나 보다.
(김) 민간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3.1%로 낮은 편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시행하고 미국, 호주 등은 의무고용률이 없다. 거꾸로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높이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할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필요한 건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고용부담금 강화다. 고용부담금이 60~100% 수준이기 때문에 고용부담금으로 대체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거다. 다행인 건 삼성전자, SK 등 대기업이 점차 의무고용률을 달성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영향력은 협력업체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SK는 장애인 3500명을 정규직으로 뽑아 의무고용률을 다 채우고 협력업체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의무를 적용했다. 대기업이 먼저 나서고 협력업체까지 이어지면 장애인 고용 문제는 웬만큼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베어베터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겠다.
(김) 2012년 베어베터를 설립했는데 20년 되는 해에 없어지는 게 목표다. 그쯤 되면 기업들이 출자한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많아져 지방의 장애인 일자리 문제도 많이 해결될 것으로 본다.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꼽는다면?
(이)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내일 봐요”라고 말할 때다. 이런 인사를 나누며 내일도 일하러 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김)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있는데 추징금이 0원 나왔다. 방송국에서 탐사취재를 나왔다가 고발영상이 아닌 홍보영상이 된 적도 있다. 그동안의 기부내역을 다 밝히고 철탑산업훈장을 받으며 시선이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대기업도 믿고 계약하며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게 된 것 같다.
선수현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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