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어른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독립을!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자립준비청년’들의 홀로서기
자립준비청년 신선 씨는 어른이 되던 순간을 들뜸과 막막함이 공존했다고 기억한다. 규율에 묶여 있던 보육원을 나온다는 사실에 마냥 들떴다. 하지만 시설을 나와 혼자 세상을 헤쳐가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살 곳을 마련하고 공과금을 내는 일, 혼자 밥상을 차리고 방안의 전구를 가는 일조차 모든 게 낯설었다.
“자취하는 친구들과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에게 전화가 자주 왔어요. 잘 지내는지, 반찬 떨어진 건 없는지 묻는 전화였죠. 나는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전화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없었어요. 세상에 나 혼자였어요.”
학업보다 ‘생계’, “빨리 취업해 돈 벌고 싶어”
매년 2400명가량의 자립준비청년이 보육원 등을 나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동안 ‘시설퇴소아동’,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리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명칭의 변화는 이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퇴소 전 시설에 있을 때는 보호대상아동으로 불린다. 부모의 사망, 이혼, 학대, 비행, 가출, 빈곤 등의 이유로 일반 가정에서 양육이 어려운 아동들은 보육원으로 알려진 아동양육시설, 5~7명의 소규모 인원이 거주하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대리양육·친인척위탁·일반가정위탁을 포괄하는 가정위탁 등 크게 3가지 유형의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가 되는 순간 법적 보호가 중단된다. 성인이 됐다는 의미다. 그때부터는 스스로가 보호자다. 생계는 물론 삶의 모든 것을 직접 책임져야 한다. 대학 진학은 본인의 선택이다. 이 경우 만 24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지만 학비 지원은 대부분 국가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주로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충당한다. 생계의 조급함에 몰린 많은 자립준비청년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해 직업훈련을 받거나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에 의하면 자립준비청년의 학업 수준은 고등학교 이하 37.2%, 2·3년제 재학·중퇴·휴학 16.8%, 2·3년제 졸업 16.8%, 4년제 대학 재학·중퇴·휴학 15.5%, 4년제 졸업은 12.9%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자립준비청년의 52.1%가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휴학 또는 학업 중단의 이유로 33.1%가 ‘경제 사정이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경제적 여건으로 취업전선에 먼저 뛰어든 경우가 다수다. 아동복지시설 출신 자립준비청년의 취업 분야는 ‘전문직(25.1%)’, ‘서비스직(22.7%)’, ‘기계조작·조립(13.1%)’, ‘단순노무직(13.1%)’, ‘사무직(9.6%)’ 등으로 나타났다(아동권리보장원). 꿈이나 진로에 대한 준비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로 갈 수 있는 기반이 약해 비숙련·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구조도 무시할 수 없다. 자립준비청년 A씨는 “시설 안에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에 내몰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신 씨는 대학에 진학하며 시설에서 지낼 수 있는 유예기간을 확보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을 위해 현재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로 활동 중이다. 신 씨는 “대학에 다니지 않으면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까 직업 선택의 폭이 좁다”고 했다. 그는 진로를 고민할 시간,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지원에서 나아가 정서·교육으로 다각화
어제까진 보호의 대상이었다가 오늘부터 자립청년이 된다는 건 누구라도 힘든 일이다. 때문에 ‘자립’과 ‘청년’ 사이에 ‘준비’란 이름의 지원제도가 뒷받침되고 있다. 시설을 퇴소할 때 자립지원금 500만~1000만 원(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이 주어진다.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움이 대두하던 초기 0~300만 원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것이다. 난생 처음 거머쥔 목돈은 주로 주거 보증금으로 활용하거나 생필품을 구매하는 데 쓴다. 문제는 계획없이 돈을 모두 써버렸을 때다.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시기다. 자립준비청년은 주도적으로 원하는 물건을 산 경험이 많지 않아 억눌려온 소비 욕구가 터지기도 한다. 연락도 없던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지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립수당 제도가 있다. 시설을 퇴소하고 5년까지 매월 40만 원을 받는 것이다. 매월 안정적으로 받는 자립수당은 공과금을 내고 식비, 교통비를 충당하는 생활비 역할을 한다. 보호대상아동 신분일 때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일시에 받는 디딤씨앗통장 제도도 있다. 가령 아동에게 1만 원을 후원하면 정부가 2만 원을 추가로 적립해준다. 집을 구할 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낮은 이율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수도 있다. 만 18세에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어려운 부동산 용어를 읽어가며 서류를 구비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행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어른’은 신청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전히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자립지원금이 올랐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원할 경우 양육시설에 만 24세까지 머물 수 있게 됐다. 40만 원의 자립수당 지급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확대됐다. 자립지원전담기간이 전국 17개 시·도로 늘었고 경제 영역에 방점을 뒀던 지원은 심리상담, 취업연계, 커뮤니티 등 정서·교육 지원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고밍아웃? 당당해도 되는지 몰랐다”
자립준비청년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건 용기를 낸 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응원이 더해지면서다. 앞서 신 씨가 등장하기 전까지 자립준비청년은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례가 드물었다. 그가 용기 내어 자신의 사연을 밝히자 ‘고밍아웃(고아원 출신을 밝히는 일)’을 망설이던 청년들이 “숨기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형처럼 당당해도 되는지 몰랐다”며 뒤를 이었다. 신 씨는 “누군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계속 대물림될 것 같아 나서게 됐다”면서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환경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 얘기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자립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이다. 이때 스스로 서는 데는 금전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 자립을 포함해 삶을 설계하는 능력,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부모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 쉽다. 부모는 어른이 된 자녀에게 돈만 주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격려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돕는다. 넓은 의미에서 부모의 관점으로 제도를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도 중요하다. ‘열심히 살아라’, ‘돈 아껴 써라’ 등의 조언보다 ‘할 수 있다’와 같은 진심어린 응원이 필요하다. 세상 곳곳에 좋은 어른이 많다면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도 덜 외로울 것이다.
선수현 기자
박스기사
윤석열정부 자립준비청년 지원 대책
윤 대통령 “부모의 심정으로 챙겨달라” 당부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29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의 심정으로 챙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학에 진학하고 일자리를 얻고 안정된 주거지를 갖고 싶은 자립준비청년들의 바람이 꺾여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이후 발표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에는 포괄적인 보완책이 담겼다.
자립정착금은 1000만 원으로 인상하길 권고하고 자립수당은 월 3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렸다. 공공임대주택 연 2000호를 우선 공급하고 취업 후 상환해야 하는 학자금·생활비 대출을 무이자로 지원해 자립준비청년의 부담을 덜 수 있게 했다. 대학생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또한 자조모임 ‘바람개비서포터즈’ 활동비를 지급해 자립준비청년 선후배 교류의 장을 활발히 한다.
만 18세인 보호기간은 본인이 원할 경우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주거, 교육, 진로·취업 상담 프로그램 등 자립준비 특화 프로그램을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제공한다. 온라인 자립정보 플랫폼 구축, 자립준비청년 전용 콜센터 운영 등을 통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사회 진출 이전부터 자립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체험형 자립준비 프로그램, 자립캠프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박스기사2
인터뷰 | 아름다운재단 청년사업파트 김성식 파트장 대행 / ‘열여덟 어른’ 캠페인 총괄
“정책보다 양육의 관점에서 제도 보완해야”
아름다운재단은 2001년 ‘보호종료아동’ 교육비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2019년부터 ‘열여덟어른’ 캠페인을 전개하며 자립준비청년의 건강한 자립을 위한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 캠페인을 총괄하는 김성식 파트장은 자립준비청년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며 자립준비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남겨진 과제를 담은 <안녕, 열여덟 어른>을 펴내기도 했다.
인생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대개 부모, 교사 등이 그 역할을 하는데 자립준비청년의 경우는 어떤가?
양육시설에서부터 오랜 유대감을 갖고 지낸 보육교사나 후원자, 사회에서 만난 저마다의 어른을 찾고 의지한다. 간혹 멘토링 제도가 생기기도 하는데 자립준비청년 입장에서는 처음 만나는 어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시혜자와 수혜자로 관계가 설정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오히려 당사자들끼리 연결하는 커뮤니티에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편이다. 서로 숨기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일상을 나누며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립준비청년의 생활을 파악하는 자립지원전담요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
1명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자립준비청년 60~100명을 관리한다. 친밀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구조다. 양육시설에서 평생 관리를 받으며 자란 경우 마음을 열기란 어렵다. 특히 취업은 했는지, 살 곳은 정했는지, 월급은 얼마인지 등 누구라도 불편할 법한 질문을 하기에 더욱 그렇다. 영국의 개인 후견인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자립준비청년이 자신을 담당하는 후견인을 알도록 한다. 개인 후견인은 직접 청년의 거주지를 방문해 만남까지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얼굴도 모른 채 정보만 말하는 꼴이다. 자립준비청년의 입장을 헤아리고 세심한 관심이 요구된다.
제도 면에서는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
자립준비청년만큼 정부, 민간, 기업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는 분야도 드물 거다. 아직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근차근 보완되며 나아지는 건 고무적이다. 다만 양육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방적 정책보다 직접 관심사를 찾고 기획해 과정을 밟아갈 수 있게 하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도 좋다. 직접 소비하는 체험, 대학 탐방, 여행 등 다양한 기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직업을 갖고 관계를 만들고 취미를 갖는 평범한 삶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의 관점에서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할 건지 고민하고 들여다봐주길 바란다.
자립준비청년을 대하는 인식에 필요한 것은?
성숙한 의식을 갖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부모 없는 아이’, ‘불쌍한 애’ 같은 이야기가 미디어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내 자식을 고아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대사나 ‘고아원 출신의 범죄자’ 같은 설정을 여전히 마주하지 않는가. 다른 소수자를 대입하면 인권 문제로 난리가 날 텐데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은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자립준비청년이란 사실을 숨기게 된다. 이들이 당당하게 공존할 수 있게 인식을 바꿔가야 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