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쌀로 만든 칼국수·케이크는 어떤 맛? 남는 쌀 해결사 ‘가루쌀’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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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196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30년 전인 1992년(112.9㎏)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쌀 소비량이 주는 데도 국내 쌀 공급량은 여전하다. 어쩔 수 없이 남는 쌀이 쌓인다. 쌀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다.
반면 빵이나 라면과 같은 밀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국민 1인당 밀 소비량은 33㎏으로 쌀 소비량의 절반이 넘는다. 문제는 국내 밀 자급률이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부족한 밀은 수입에 의존한다. 매년 수입되는 밀은 약 200만 톤에 달한다. 전쟁이나 환율 상승으로 가격이 올라도 부르는 값에 밀을 사와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물가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쌀 공급 과잉과 밀 자급률 향상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가루쌀’이다. 가루쌀은 쌀을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밀가루를 대체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루쌀 전문재배단지 육성과 가루쌀을 활용한 고품질 제품 개발 등 가루쌀 산업 활성화에 107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수입 밀가루 수요의 10%를 가루쌀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2023년 가루쌀 1만 톤을 생산해 본격적인 상품화에 나선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지난 3월 23일 신제품 개발에 참여할 식품업체 15개사와 제품 19개를 선정했다.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가루쌀을 제분하는 일은 사조동아원이 맡았다. 4월 4일 충남 당진시 사조동아원 제분공장을 찾았다.
쌀 게임체인저 자처한 사조동아원 가보니
“한쪽은 밀가루, 다른 한쪽은 가루쌀입니다.”
사조동아원 최용석 생산본부장이 두 개의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밀과 쌀, 엄연히 다른 곡물로 만들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어느 쪽이 밀가루고 어느 쪽이 쌀가루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했다.
실제로 가루쌀은 밀과 전분구조가 비슷하다. 기존 밥쌀은 치밀한 전분구조 때문에 물에 불려서 가공해야 했다. 때문에 쌀뜨물 등 폐기 비용을 포함해 가공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반면 가루쌀은 물에 불리는 작업 없이 곧바로 건식 제분이 가능하다. 별도 제분 생산라인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밥쌀 제분 비용을 기준으로 보면 건식 제분 비용은 1㎏당 200~300원으로 습식 제분 비용(600~1200원)의 20~30% 수준으로 저렴하다. 제조공정도 습식 제분은 세척과 불림(2~3시간), 탈수, 열풍건조를 거쳐야 하지만 건식 제분은 이런 공정이 필요하지 않다.
사조동아원은 이러한 가루쌀의 특성과 활용 가능성, 상품성 등을 높게 평가해 정부의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 사업에 필요한 가루쌀 미분(쌀가루) 대량 생산에 참여했다. 지난 3월 22일 사조동아원은 총 32톤을 제분하고 2023년 신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15개사에 전달한 상태다.
이날 최용석 생산본부장, 이재강 제분연구소장과 함께 제분 공장 내부를 둘러봤다. 당진 제분공장에서는 5개 생산라인을 가동해 박력분, 중력분 등 다양한 종류의 밀가루를 하루 최대 1200톤까지 생산한다. 수입 밀 외에도 우리밀과 유기농밀, 메밀 등도 제분한다. 24시간 돌아가는 기계 소리로 공장 안은 매우 시끄러웠다. 생산라인마다 여러 단계를 거쳐 누런 밀이 뽀얀 밀가루로 변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가루쌀도 밀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제품화를 위한 재료로 탈바꿈한다.
최 본부장은 “가루쌀도 밀가루와 같은 공정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내년에는 가루쌀 생산량을 더 늘리고 가루쌀 제분 원료를 연구·세분화해 더 다양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루쌀로 라면·케이크 등 19개 제품 만든다
사조동아원에서 생산한 가루쌀 미분으로 어떤 제품이 탄생할지도 기대된다. 2023년 가루쌀 가공산업 활성화 지원 사업에는 농심, 삼양식품, 하림산업, SPC삼립, 해태제과, 풀무원 등 굵직한 대기업이 도전장을 내밀고 가루쌀 제품 개발에 나섰다. 성심당, 이가자연면, 미듬영농조합법인, 대두식품 등에서도 가루쌀 사업에 뛰어들었다. 농식품부는 이번 사업자 공모에 총 77개 식품업체가 신청해 7.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5개 식품업체에서 면류 4종, 빵류 5종, 과자류 7종, 기타 3종의 가루쌀 제품을 개발한다. 삼양식품은 2022년 출시한 ‘짜장라면’에 가루쌀을 첨가해 ‘글루텐프리(gluten-free)’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밀가루와 달리 쌀가루는 글루텐이 없어 소화가 잘된다. 해태제과는 초코과자 ‘오예스’에 가루쌀을 첨가해 프리미엄 상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가루쌀은 기존 밥쌀로는 넘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식품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 밀가루 생산공정을 이용해 대량 제분까지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되면서 무궁무진한 발전이 기대된다.
농식품부는 제품 개발 사업과 별도로 가루쌀의 식품 원료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 사업도 추진한다. 신세계푸드 등이 ‘저당 쌀가루 이용 기술’을, CJ제일제당 등이 ‘쌀가루 노화 지연 소재’를 개발할 계획이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가루쌀은 밥쌀의 구조적 생산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주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식품 원료로서 식품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루쌀 제품개발 사업은 식품업계의 가루쌀 원료 활용 확산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소비자 수요에 맞는 가루쌀 제품 확산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강정미 기자
박스기사
인터뷰 미듬영농조합법인 전대경 대표
“비용·환경오염 줄이는 착한 재료… 가루쌀 가공산업 더 키워야”
경기 평택시 오산면에 있는 미듬영농조합법인은 이번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사업에 참여한 업체 중 한 곳이다. 전대경(54) 대표는 2019년부터 농촌진흥청과 협력해 이미 가루쌀로 빵, 과자 같은 제품을 만들어왔다. 스타벅스 전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라이스칩과 우리미(米) 카스텔라가 대표 제품이다. 마켓컬리와 쿠팡, 웰스토리 등에도 가루쌀빵을 납품하고 있다. 미듬영농조합법인은 그동안의 노하우를 활용해 이번 지원산업에선 가루쌀로 식사용빵과 몰드과자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가루쌀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은데.
알다시피 쌀은 습식 제분을 한다. 습식 제분은 건식 제분보다 비용이 3배 이상 든다. 쌀 대신 가루쌀을 사용하면 생산 비용이 줄어든다. 가루쌀은 밀가루처럼 활용도도 높다. 습식 제분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착한 원료다.
시행착오는 없었나?
가루쌀은 기존 쌀과 다르다. 원래 하던 방식으로 가공하려고 하면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루쌀에 맞는 가공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단계적으로 조금씩 테스트를 해가며 가루쌀을 활용하는 노하우를 얻었다.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라이스칩과 우리미 카스텔라도 가루쌀로 만든 제품이다.
스타벅스와는 2007년부터 인연을 맺고 쌀로 만든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라이스칩과 우리미 카스텔라는 스타벅스 전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인기 제품이다. 원래 쌀로 만들던 제품에 가루쌀을 넣어 제품의 식감과 풍미를 보완했다.
7.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번 가루쌀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밥보다 빵 먹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이왕 먹는 빵을 건강한 쌀로 만들면 좋지 않겠나. 가루쌀은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이 없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건강한 재료와 함께 한 끼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용 빵을 개발해 간편 편의식을 만들 계획이다. 과자류도 가루쌀로 새롭게 개발해서 많은 사람이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정부가 가루쌀 가공산업 활성화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가루쌀을 활용하는 입장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쌀을 가공하는 입장에선 원재료를 쌓아두는 게 큰 비용이자 부담이다. 가루쌀을 더 많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그때그때 신속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활용하기가 더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가루쌀 생산량을 늘리려면 농민들이 가루쌀 재배 면적을 늘려야 한다. 정부에선 가루쌀은 7월에 이양해 이모작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존 작물 대신 가루쌀을 심거나 새로운 재배법을 시도하는 건 농민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가루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장기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가루쌀을 재배하는 면적이 늘어나고 가공산업도 활성화할 수 있다.
가루쌀 공급 가격도 중요하지 않나?
아직 가루쌀 공급 가격이 정해지지 않았다. 얼마에 공급될지가 관건이다. 예전에 쌀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르자 우리 쌀을 사용하던 회사가 수입쌀로 대부분 재료를 바꿨다. 가루쌀이 대량 생산되더라도 가격이 비싸면 활성화는 힘들다.
농민들과 쌀 산업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평택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쌀농사 짓는 걸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업에 종사하게 됐지만 국내 쌀 소비량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쌀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쌀 가공식품 사업을 시작했다. 쌀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올리고 쌀 소비를 늘리는 데 매진했다. 가루쌀을 활용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에는 가루쌀로 만든 국수를 판매하는 ‘신리쌀면’을 열었고 올해 4월에는 ‘공간미학’이라는 쌀문화 체험공간을 개장해 더 많은 사람이 쌀로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문화를 즐기게 하고 싶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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