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공간은 이런 곳! 그냥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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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부산근현대역사관 이용 정보
주소 부산 중구 대청로 104 | 전화 051-607-8001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5시까지 입장) | 관람료 무료
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 | 홈페이지 www.busan.go.kr/mmch
“사는 사람보다 팔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와글와글 들끓는 사람들의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건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옷가지를 들고, 양담배를 들고, 구두끈을 들고 모두 ‘거, 얼마요?’ 하는 소리를 눈 아프게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부산에는 피난민이 욱실거렸고, 국제시장에는 모두가 물건을 팔아야만 되는 사람들이었다.” -곽하신 ‘시장삽화’-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하 역사관 별관) 정문을 지나 1층 대청서가에 들어서니 오래된 책들과 그 책에서 발췌된 다양한 글귀가 보기 좋게 진열돼 있었다. ‘부산의 책–시대의 감정, 지역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1950년대 부산에 관한 희귀도서와 잡지 40여 점을 통해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와 장소성을 조명하는 북큐레이션 전시(6월 15일까지)였다. 그런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글이 하나 있었다. 1952년 경상북도청 기관 발행지 <도정월보> 제7호에 실린 곽하신의 소설 ‘시장삽화’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물건을 가지고 국제시장에 나온 당시 피란민들의 모습을 나타낸 구절이었다. 무려 70여 년 전 부산 국제시장을 묘사한 문장이었지만 어딘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한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70년이 지난 오늘과 별반 다를 게 없다니 무슨 억지인가 싶을 것이다. 역사관 별관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역을 출발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지도 애플리케이션 검색이었다. 부산역에 도착해 역사관 별관까지 찾아가는 대중교통 편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검색을 하자마자 부산 중구에 있는 역사관 별관 자리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핵심 중심지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부산역과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고 지척에 부산항을 두고 있었다. 또 역사관 별관 건물을 중심으로 그 유명한 국제시장은 물론 부평깡통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동광동인쇄골목에 임시수도기념관까지 웬만한 부산 주요 관광지가 다 몰려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관 별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곽하신의 소설 속 그 자체였다. 대로변 사이사이 골목마다 국제시장을 누비는 사람이 와글와글 들끓었다. 구두며 옷가지며 파는 품목도 여전했다. 소설과 다른 점이라곤 ‘욱실거리는’ 인파가 피란민이 아니라 관광객이고, 파는 사람보단 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는 정도였다.
그런 풍경을 지나 역사관 별관에서 70년 전 바로 이곳을 그린 문장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공간 역시 그랬다. 시기별로 다른 다양한 형태의 기둥이 뒤섞여 시공간이 교차하듯 신비로웠다. 건물 구석구석 지난 시간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
건물에 아로새겨진 근현대사
역사관 별관은 1929년 건립된 서구양식 건축물로 일제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다가 광복 이후 50년가량 미국문화원으로 쓰였다. 부산 근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으로 1999년 우리나라에 반환돼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돼왔다. 부산시는 새로운 형태의 박물관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부산근현대역사관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 부산근대역사관과 바로 옆에 위치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연계해 2020년 3월부터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으로 사용될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착공 이후 기둥과 보 일부에 균열이 발견돼 안전을 위한 보강공사 중이라 2023년 말로 개관이 늦춰진 상태다. 기존 부산근대역사관을 리모델링한 역사관 별관은 지난 3월 1일 먼저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침략기지로, 해방 이후엔 미국문화원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선 방화사건까지 겪으며 근현대사 통한의 역사가 서린 이곳이 비로소 부산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민의 공간’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별관 1층 대청서가는 부산 근현대사 관련 도서를 비롯한 1만여 권의 소장 도서와 아카이브(데이터 저장 파일)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북큐레이션 전시, 북토크, 문화공연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평소에는 시민들이 도서 열람, 휴식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넓은 라운지가 있는 게 인상적이다.
대청마루라 불리는 2층은 이름처럼 본격적인 휴게공간이 펼쳐져 있다. 건물의 역사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소규모 상설 전시공간과 함께 건물의 창호 형태를 본뜬 개별 좌식 공간과 대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입식 공간이 흡사 카페에 온 것 같다.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볼거리가 많다. 특히 철근콘크리트 구조, 철골 구조,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세 가지 방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역사관 별관은 2층 천장을 노출해 당시 철골 구조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동양척식주식회사 시기의 1층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대형 원형기둥을 따라 2층 슬래브(콘크리트 바닥) 일부를 철거하고 개방감을 줬다. 1층 여자화장실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시절의 응접실 천장 몰딩과 등기구가 복원돼 있어 당시 모습을 살펴보기 좋았다. 이처럼 역사관 별관에는 지나온 역사의 이력이 곳곳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도서관과 기록관, 박물관 등을 접목한 라키비움(Larchiveum) 방식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는 점일 것이다.
무엇을 해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곳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대역사관 별관을 둘러보았다. 너른 1층 라운지에는 책을 읽는 학생, 오가다 들어와 잠깐 졸고 있는 할아버지, 다음 행선지를 찾는 듯 잠시 짐을 내려놓고 지도를 보고 있는 관광객이 보였다. 2층엔 히잡을 쓴 서너 명의 외국인 학생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 공간에서 공부 중이었고 전시공간에선 커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형 테이블엔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처럼 역사관 별관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역사관 별관이 비로소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이유다.
원도심은 거의 상업지역으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역사관 별관은 기존 박물관 기능을 본관으로 넘기고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과감히 공간을 할애했다. 그야말로 휴식공간이다. ‘그냥 쉬었다 가면 충분하다’고 곳곳의 공간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때마다 전시를 하고 행사를 열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어디까지나 시민 스스로 찾아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어느 곳에서도 배움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역사관 별관의 이 같은 변신에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개관 전 1월 말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가 채 두 달도 안된 기간 동안 입소문을 타고 무려 1만여 명이 다녀갔을 정도다. 공간의 명성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사관 별관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찾지 않는 공간은 결국 잊히기 마련이다.
역사관 별관은 이제 역사적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를 즐기고 국제시장, 정부청사 등 곳곳에 흩어진 근현대 자산을 한데 묶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그 땅의 주인, 시민들에게 돌아온 공간에는 다시금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다. 온전한 그곳 사람들의 역사로 말이다.
강은진 객원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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