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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내 영감의 바다 세계의 도시, K-클래식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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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을 빚어낸 누룩은 훌륭한 스승과 고통스러웠던 시련 외에 바다가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에 대한 이순열 음악평론가의 평이다. 한수진에게 바다는 커다란 영감 덩어리다. 바다가 인접한 도시 부산에서 태어나서인지 어릴 때부터 바다를 참 좋아했다. 태어나서 엄마, 아빠 다음에 한 말이 바다였을 정도다. 한수진이 부산에서 보낸 시간은 유년기 1~2년에 불과했지만 부산의 바다는 한수진이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수진은 소수정예 영재 음악학교인 영국의 예후디메뉴인학교를 거쳐 퍼셀음악원, 옥스퍼드대학, 런던왕립음악원, 크론베르크아카데미 국제 솔로 연주자 과정을 거쳤다. 15세였던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2위를 하며 한국인 최초이자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수진은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마르코 레토니아와 협업한, 명실상부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다. 고향을 떠나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로 성장한 한수진은 누구보다도 부산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2022년부터 열린 부산클래식음악제의 수석 예술부감독을 맡은 데 이어 3월 23일 2030 부산세계박람회(이하 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음악회에 연주자로 섰다. 음악회에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 힘쓰는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박형준 부산시장, 45개국 주한 대사를 비롯한 많은 관객이 한수진의 연주를 들으며 엑스포 유치를 염원했다.

2022년부터 부산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얼마 전 ‘엑스포 유치 기원 신춘음악회’ 무대에도 섰는데.
부산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엑스포를 꼭 유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굉장히 크다. 나는 엑스포가 문화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이자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엑스포 유치가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 연주에 참여했다.

이번 음악회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연주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35’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곡인데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엑스포를 유치하면 부산이 세계로 나아가게 되지 않나. 그런 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는 부산이 결국에는 축제 분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곡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엑스포 유치를 위한 또다른 공연이 있나?
5월이면 우리나라에서 한국·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때 우리나라를 찾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회원국들이 엑스포 유치국을 투표할 때 생각보다 많은 표를 갖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면 엑스포를 유치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그들을 맞을 공연을 준비중인데 자문을 맡고 있다.



엑스포 유치뿐 아니라 부산의 클래식 발전을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2022년부터 부산클래식음악제의 수석 예술부감독도 맡았다. 2023년 드디어 본격적으로 공연도 잘 준비되고 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준비하고 있다. 정확한 공연 일정은 아직 상의 중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부산클래식음악제의 수석 예술부감독 자리를 맡게 된 이유는?
사실 이런 제안을 한 곳이 부산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음악제조직위원회에서도 제안했지만 다 거절했다. 연주 일정이 너무 많았고 음악제를 맡으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부산조직위 제안은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태어난 도시라 더 마음이 끌렸다.

수석 예술부감독으로서 만들고 싶은 이상적인 음악제의 모습이 있을 것 같은데.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냈는데 이런 페스티벌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다녔다. 유럽의 좋은 페스티벌을 많이 다닌 덕분에 이상적인 페스티벌이 이미 내 머릿속에 있다. 내가 꼽는 페스티벌은 영국 남쪽에 있는 땅끝마을 랜즈엔드(Land's End)에서 열리는 프러시아 코브(IMS Prussia Cove) 뮤직페스티벌이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이끄는 페스티벌인데 정말 음악가를 위한 페스티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세에 그 축제에 참가했는데 공연 리허설을 1주일 동안 했다. 휴대폰도 잘 안 터지는 곳이라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하면서 곡을 파고들고 제대로 경험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 연주할 때와 다른, 굉장히 새로운 영감이 와서 거기에 심취하며 보냈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아티스트로서 정말 밀도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연주자가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 관객도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프러시아 코브같지 않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공연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물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아티스트들 모두 정상급이니 좋은 연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연주는 또 다르다. 관객들이 잊지 못할 특별한 연주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더 많다. 부산클래식음악제는 아티스트들의 웰빙을 생각하는 페스티벌로 만들고 싶다.

그런 환경을 만들려면 수석 예술부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실무를 맡으면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나의 역할은 아티스트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은 감독님을 비롯해 공연 진행 담당자들을 계속해서 설득하고 있다. 기획자로서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는 하지만 나 역시 아티스트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부산클래식음악제는 무엇보다 아티스트를 배려하는 축제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

음악제를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런데 문화적으로 볼 때 큰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부산이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했고 많은 이야기와 영감이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발전은 더디다.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에 영화에 대한 관심과 토대는 탄탄하지만 클래식 환경은 열악하다. 부산클래식음악제를 기점으로 클래식 음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발전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한국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적은 편이라 아쉽다. 클래식 음악이 서양에서 시작됐다는 이유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보다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 행사인 ‘2023 다보스 코리아 나이트’에 아티스트 중 가장 먼저 섭외됐지만 결국 클래식 부문이 빠지게 됐다. 이런 사례가 현재 한국에서 클래식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K-팝, K-콩쿠르는 있지만 K-클래식이란 말은 없지 않나.

K-클래식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K-클래식이란 단어가 생길 만큼 클래식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우리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연주가가 많지 않나. 클래식은 한류를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굉장히 크다. 서양에서 시작한 팝음악이 우리나라의 감성과 메시지가 합쳐지면서 K-팝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K-팝이 사랑받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K-클래식도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K-클래식으로 가기 위한 우리만의 무기가 있나?
우리나라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한(恨) 같은 특유의 감정이 음악을 표현하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K-클래식이 K-팝보다 한류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이 되려면 일단 국내에서 클래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클래식에 대한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 국민에게 음악이 큰 힘이 됐다. 클래식을 비롯한 문화의 힘이 어느 때보다 크게 전해진 때이기도 하다.
문화를 소프트파워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간의 일들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데 음악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음악은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음악에 들어 있는 메시지 때문에 열광한다. 클래식은 가사는 없지만 음악으로 깊은 것을 이야기해주니까 더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K-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문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한수진도 좋지만 팬들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가장 보고 싶을 것이다. 예정된 공연은?
4월 5일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주제로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로버트 슈만의 곡을 연주한다. 모티프가 된 소설도, 곡도 다 독일 사람이 쓴 거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테, 알베르트가 소설 속에서 삼각관계인데 브람스와 클라라, 로버트도 삼각관계였다. 이게 비슷한 점이 많아서 음악으로 소설 스토리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소설의 결말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고 싶다.

장가현 기자

박스기사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1986년 출생
*영국 런던 영재 음악학교 예후디메뉴인, 퍼셀음악원, 옥스퍼드대학 수료
*런던 왕립음악원과 독일 크론베르크아카데미 국제 솔로이스트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10세 런던 로열페스티벌홀 공연
*12세 위그모어홀 독주회로 데뷔
*15세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 2등 및 음악평론가상, 폴란드 방송 청취자상 등 7개 부문 수상
*18세 마에스트로 정명훈 지휘 시벨리우스 협주곡으로 한국 데뷔
*돈 크레머, 안드라스 시프 등과 함께 실내악 연주
*런던 심포니·브라이튼 필하모닉·포즈난필하모닉·도쿄 필하모닉·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다수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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