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해 영웅의 이름으로 해군 2함대 NLL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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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는 우리가 지킨다!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날’이다. 제2연평해전(전사자 6인), 천안함 피격 사건(전사자 46인), 천안함 구조 활동(순직 1인), 연평도 포격전(전사자 2인)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서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55인을 기리고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2016년 시작돼 올해로 여덟 번째다. 2023년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은 55인이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3월 24일 열렸다.
서해의 ‘예리한 창끝’ 황도현함에 오르다
2002년은 대부분 한일월드컵의 해로 기억할 것이다. 6월 29일은 우리나라와 튀르키예가 3·4위를 결정짓는 날이었다. 월드컵 사상 첫 4강 진출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던 이날 경기가 열리기 10시간 전 서해에서는 우리 해군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기 위해 북한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북한 중형 경비정에서 85㎜포 기습 발사로 시작된 교전으로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다쳤다. ‘제2연평해전’이다.
이날 오전 9시 54분 북한 해군 육도 경비정(육도 388호정)이 서해 연평도 근해 NLL을 침범했다. 오전 10시 1분 북한 해군 등산곶 경비정(등산곶 684호정) 한 척이 추가로 NLL을 넘어왔다. 이에 우리 해군 2함대 소속 고속정(참수리 357·358호정)은 적선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경고 방송과 차단 기동으로 대응했다.
제2연평해전은 북한의 계획된 도발
이날 북한 해군은 아군 함정을 향해 함포를 조준한 채 NLL을 넘었다. 우발적 충돌이 아닌 계획된 도발이었다.
오전 10시 25분 등산곶 684호가 참수리 357호를 향해 선제 기습 포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추서 계급, 당시 대위)이 쓰러졌다. 윤 소령 옆에 있던 부장 이희완 중위(현 대령)가 전투 지휘에 나섰다. 357호 장병들은 즉각 응사하며 용전분투했다. 참수리 358호를 비롯해 아군 함정이 지원 사격에 나서자 등산곶호는 오전 10시 50분 반파된 상태로 퇴각했다. 우리 해군의 응전으로 적 13명이 사살됐다.
당시 북한 해군은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발생, 우리 해군 승리)에 대한 보복을 위해 전차에 장착하는 대형 화포를 등산곶 684호에 설치했다. 이날 전투에서 북한은 참수리 357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흘수선(배와 바닷물이 접하는 경계선)을 집중 공격했다.
전투가 끝난 후 참수리 358호는 선체에 357호를 연결해 예인했지만 오전 11시 59분 357호는 끝내 침몰했다. 이날 25분간 치러진 전투로 우리 해군 장병 네 명이 전사, 19명이 부상, 한 명이 실종(한상국 당시 하사)됐다. 357호는 2002년 8월 21일에야 인양됐다.
피로써 NLL 지켜내
21포(20㎜ 벌컨포) 담당 조천형 상사(당시 중사)는 적의 집중 사격으로 벌컨포에 불이 났음에도 마지막까지 적을 향해 응사했다. 22포(20㎜ 벌컨포)를 맡은 무장 부사관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도 끝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황 중사는 적 포탄에 머리를 맞아 전사했다.
M-60 기관총 사수였던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는 집중 포격을 받는 상황에도 은폐가 어려운 고속정 중앙 갑판에서 기관총을 놓지 않았다. 결국 적 탄환이 왼쪽 가슴을 관통해 숨을 거뒀다.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다친 전우를 돌보기 위해 오른팔이 관통됐음에도 갑판을 누볐다. 박 병장은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돼 83일 동안 투병하다 눈을 감았다. 박 병장 몸에서는 3㎏에 달하는 포탄 파편 130개가 나왔다.
이희완 대령은 박 병장에 대해 “나를 보며 눈물 흘리며 지혈하려던 모습, 전우를 구하기 위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구급상자를 들고 포탄을 누비고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정장 윤영하 소령을 대신해 전투를 이끈 이희완 부장은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 다리 일부를 절단했다.
357호 침몰로 실종됐던 조타장 한상국 상사(침몰 이틀 후인 7월 1일 중사 진급)는 41일 만에 인양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북한 해군은 참수리 357호를 무력화하기 위해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은 아버지를 따라 해군이 됐다.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 씨(예비역 해군 대위)는 1970년 6월 29일 인천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간첩선을 나포해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윤 씨는 서해를 지킨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2일 용산 대통령실에 열린 국가보훈처의 보훈부 승격 서명식에 제2연평해전 유가족 대표로 참석했다.
제2연평해전 이후 유도탄고속함 도입
제2연평해전 이후 해군은 서해 NLL 수호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유도탄고속함(PKG, 450톤)을 도입했다. 유도탄고속함은 연평해전 당시 활약한 참수리 고속정(PKM, 130톤)보다 무장이 강화됐다. 76㎜·40㎜ 함포와 대함유도탄(4발, 사거리 180㎞)을 장착했다. 최고 시속은 약 76㎞다. 선체 측면은 레이더에 탐지되는 반사파를 줄이기 위해 매끄러운 일자 형태다.
첫 번째 유도탄고속함은 고 윤영하 소령을 기리기 위해 윤영하함(PKG-711)으로 명명됐다. 2007년 진수돼 2008년 취역했다. 참수리 357호가 속했던 해군 2함대에 배속돼 서해를 지키고 있다.
윤영하함에 이어 한상국함(PKG-712), 조천형함(PKG-713), 황도현함(PKG-715), 서후원함(PKG-716), 박동혁함(PKG-717)이 건조됐다. 제2연평해전 용사의 이름을 딴 PKG는 모두 2함대에 배속돼 있다. 유도탄고속함은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활약한 인물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해군에는 유도탄고속함 18척이 있다.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서해를 관할하는 해군 2함대(경기 평택)를 찾아 황도현함에 올랐다. 황도현함은 2009년 12월 11일 진수돼 해군 창설일인 2011년 11월 11일 취역했다. 황도현함에는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에서 적과 싸웠던 참전용사도 승선해 있다.
황도현함은 평시에는 서해연안 경비 감시와 우리 어선 보호, 통항 선박 호송 업무를 맡는다. 전시에는 우수한 무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 해상 세력에 대한 고속 기동 타격을 주 임무로 한다. 한 번 출항하면 1주일가량 임무를 수행한다. 임무를 마친 뒤에는 휴가를 제외하곤 부두에 정박해 함정에서 생활한다. 유도탄고속함에는 약 40명이 승선한다.
황도현함 함장 이대중 소령(해사 63기)은 건장한 체격에 강인한 인상을 가졌다. 그의 눈빛은 ‘적이 도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넘쳤다.
이 함장은 2009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해군 장교 15년 차다. 어린 시절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해군 장교를 꿈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2연평해전을 접하고는 우리 바다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이 함장은 “황도현함 함장으로 임명됐을 때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며 “투철한 군인정신과 사명감으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서해를 철통같이 사수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해군 제2함대는 항재전장”
이 함장은 “적이 도발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응징해 도발 의지를 분쇄할 것”이라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황도현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도현함 작전관 송병철 대위(해사 74기)는 대양해군의 일원이 되고자 해군이 됐다. 송 대위는 “해군이 되기 전부터 제2연평해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며 “황도현함에 배치돼 더욱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선배 전우가 피땀 흘려 지킨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도 해군 장병들은 필승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국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황도현함에서 무장을 책임지는 무장장 전성표 상사는 “무장사 출신인 황도현 중사의 이름을 딴 배에서 무장을 맡고 있어 막중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전 상사는 해군 1함대가 있는 강원 동해가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군인을 보고 자라 해군에 대한 꿈을 키웠다. 전 상사는 “적 도발에 대비해 팀워크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며 “유사시 적을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요충지인 서해를 지키기 위해 최상의 결전 태세를 유지하고 어떠한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완벽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일부는 해군 2함대가 가장 바쁠 때를 꽃게잡이철(3~6월)로 알고 있다. 이대중 함장은 “대표적인 오해다. 2함대는 항상 바쁘다”며 “언제 비상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항재전장’(항상 전쟁에 임하고 있다) 의식을 갖고 지낸다”고 했다.
해군 관계자는 “2함대에는 전시와 평시가 따로 없다. 해군에선 근무 강도가 가장 세고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2연평해전 영웅들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은 서해를 지키는 예리한 창끝”이라고 말했다.
이경훈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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