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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슬픔이 아닌 자랑 서해수호의 길 이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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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나(22). 딸 셋 중 첫째다. ‘해처럼 빛나는 아이가 돼라’는 의미로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집에서는 그녀를 ‘해빛나’라고 부른다. 해나의 아버지는 서해를 지키는 군인이었다.
해나(당시 9세)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2010년 3월 16일. 이날 오후 12시 22분 해나의 아버지 고 김태석 원사(당시 중사·37세)는 서해 수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군 2함대(경기 평택) 소속 천안함(PCC-772)에 올라 백령도로 향했다. 김 원사는 세 딸을 뒀다. 당시 7세였던 둘째 해강(21세)은 대학교 2학년이 됐다. 해강이라는 이름은 ‘해와 강처럼 맑고 넓은 아이가 돼라’는 소망으로 김 원사의 어머니가 지었다. 당시 6세였던 막내 해봄(19세)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해봄은 ‘해가 빛나는 봄’이라는 뜻을 담아 김 원사가 지은 이름이다. 해봄은 천안함 침몰 후 수색 당시 TV 화면에 김 원사의 얼굴이 나오면 “아빠다~”를 외치며 반가워하고 뽀뽀를 해서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 원사는 출항에 앞서 해나에게 “돌아오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해나가 학교 갈 때 타려고 자전거를 한창 배울 무렵이었다. 마침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 이를 채워넣어야 했다.
출항 열흘 뒤인 3월 26일 밤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 난 채 백령도 인근 서남쪽 해상에 침몰하고 말았다. 김 원사는 침몰 12일 만인 4월 7일 저녁에야 차가운 몸으로 가족 품에 안겼다. 해나는 끝내 아빠가 바람을 채워준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해나는 아빠처럼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2021년 3월 우석대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해 같은 해 8월 해군 군장학생에 선발됐다. 공군과 해병대에도 합격했지만 해군을 택했다. 2025년 졸업한 뒤 3개월간 군사 교육을 마친 후 해군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다.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 서해수호의 날은 해나에겐 남다르다. 3월 13일 충북 진천에 있는 우석대 진천캠퍼스에서 김해나 씨를 만났다.



부모님, 딸 중 한 명은 군인이 되길 바라

왜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나요?
엄마는 어릴 적 꿈이 군인이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빠를 만나 결혼했죠. 부모님은 “세 딸 중 한 명은 군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저도 아빠처럼 군인이 돼 나라를 지키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해군을 선택했나요?
아빠가 해군이니 저도 해군을 택했죠. 아빠를 포함한 삼형제가 모두 해군 출신이에요. 큰아빠는 장교, 작은아빠는 수병이었죠. 고모부도 해군 출신이고요. 친가·외가에 해군 출신만 일곱 명이에요.

아빠는 어떤 분이셨나요?
자상한 분이셨어요.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를 도와주고 저와 동생들과 함께 놀아주셨어요. 엄마는 자전거를 못 타서 아빠가 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페달을 밟으면 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셨죠. 너무 어릴 때 아빠와 헤어지는 바람에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해 아쉬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빠의 모습이 있나요?
여름에 입는 카키색 해군 근무복을 입고 출근하시는 모습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어요.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날도 아빠는 안방에서 카키색 근무복을 차려입고는 ‘갔다 올게’ 하고는 집을 나섰거든요.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아침이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죠.

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매년 이맘때면 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를 봐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울컥하는 감정이 몰려오며 마냥 슬펐죠. 시간이 지날수록 ‘슬퍼하기보단 존경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천안함 46용사 모두가 자랑스러워요.

언제 아빠가 가장 보고 싶나요?
유독 3월만 되면 보고 싶어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내내요. 3월에는 서해수호의 날, 천안함 추모식도 있으니까요.



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은 사실이자 상식

천안함 사건을 두고 북한 소행을 부정하거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어떤가요?
이해가 잘 안돼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고 상식이잖아요. 더군다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유독 이런 사실을 부정하잖아요. 의아할 뿐입니다.

지난 3월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 서명식에 천안함 유가족을 대표해 참석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보훈 유가족을 더 잘 예우하기 위해 국가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고 직접 서명까지 하시는 걸 보고 ‘정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윤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난 3월 10일 윤 대통령이 평화는 강한 국방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상대방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는 ‘진정한 평화’를 말씀하셨잖아요. 군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서해수호의 날은 서해를 지키기 위해 전사한 55용사를 기억하는 날이에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1년에 한 번쯤은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산책을 오셔도 좋아요. 벚꽃이 피면 아주 예쁘거든요. 한 번씩 들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스로 지킬 힘 있을 때 평화 찾아와

제2의 천안함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적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튼튼한 국방력이 필요해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를 위해 군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군을 많이 응원해주세요.

어떤 군인이 되고 싶나요?
아빠를 잘 아는 분들은 아빠에 대해 ‘부대에선 엄했지만 부대 밖에서는 한없이 자상했다’고 하셨어요. 저도 아빠처럼 공과 사를 구별하며 제 몫을 다해내고 싶어요.

희망하는 병과나 근무지가 있나요?
함정 병과를 선택해 배를 꼭 타고 싶어요. 아빠가 근무했던 2함대에서 근무하고 싶어요. 2함대는 북한과 가까워 근무 강도도 높고 위험하지만 저에겐 2함대가 제일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 건조된 천안함에도 꼭 승선하고 싶어요.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잘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졸업 후 3개월간 장교 훈련을 받을 때 포기하지 않고 잘 마칠 수 있도록 아빠가 응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딸이 되도록 꼭 해낼 겁니다.

김해나 씨의 거수경례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밝고 씩씩한 김해나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자도 덩달아 힘이 났다. 몇년 후 2함대에 올라 서해를 지키는 해군장교 김해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훈 기자

박스기사
고 김태석 원사는?


1973년 9월 15일 경기 성남에서 태어났다. 3남3녀 중 막내였다. 1993년 8월 14일 해군 부사관 144기로 임관해 전주함, 강원함, 제천함, 청주함을 거쳐 2009년 4월 13일부터 천안함에 승선했다. 17년 군 생활 중 15년을 2함대 소속 함정에서 근무했다.
그는 천안함에서 가스터빈, 엔진 정비, 유지·보수 임무를 담당하는 내기장이었다. 김 원사가 근무하는 동안 천안함은 정비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동료들은 김 원사를 매사에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군인이었다고 회상한다. 생전에 그는 주변에 딸들이 소녀시대 춤을 추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고 자랑했다. 2010년 4월 30일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박스기사2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경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초계함(PCC)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 공격으로 침몰해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했다.
당시 생존 장병들은 좌측 후미에서 “꽝! 꽈~앙” 소리와 함께 배가 정전되면서 몸이 30㎝~1m 정도 떴다가 우측으로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이는 어뢰 공격의 전형적인 형태다. 피격 1시간 뒤 인천 해양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함미는 이미 가라앉았고 함수 쪽에 있던 승조원 58명은 구조됐다.
침몰한 천안함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수색 작전을 벌이던 해군 특수전전단(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수색에 동참한 금양 98호 선원 일곱 명도 실종돼 사망했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천안함 침몰을 두고 온갖 음모론(좌초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 등)이 퍼졌다. 2010년 5월 15일 우리 쌍끌이어선 ‘대평 11호’가 수심 47m 펄에 박힌 북한제 어뢰 추진체를 인양해내 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냈다. 당시 미국, 영국, 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천안함 국제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 공격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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