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장애 길에서 맨발로 가을을 느끼다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만산홍엽(滿山紅葉)은 늦어도 계절의 변화는 분명하다. 눈에 맺히는 색보다도 손끝에 스치는 바람, 그리고 습기가 가셔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서 먼저 가을이 느껴진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에도 특별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물이 깎아내린 협곡과 높이 솟은 응회암 절벽, 폭포와 계곡이 어우러진 지질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주왕산을 비롯한 청송군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돼 있는데 제주도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다. 규모로만 보자면 주왕산국립공원은 가장 작은 국립공원에 속하지만 감흥은 여느 국립공원에 비할 바 아니다. 특히 상의주차장에서 용추폭포에 이르는 2㎞ 넘는 무장애 길은 철마다 길을 걸으며 계절을 느끼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응회암이 만들어낸 절경
주왕산을 온전히 다 느끼려면 해발 822m의 가메봉에 오르는 등산로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가메봉에 오르는 길은 주왕산국립공원 누리집에서도 ‘누구나 오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험난하다. 가메봉 정상을 800m 앞두고 나타나는 오르막길이 매우 가파르기 때문이다.
대신 대부분의 탐방객은 용추폭포까지의 평탄한 길을 선택한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오갈 수 있는 무장애 길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경치가 펼쳐지기 때문에 봄가을 성수기 주말에는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첫 발걸음을 떼는 곳은 상의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주왕산국립공원의 입구 역할을 하는 대전사까지 넉넉히 걸어도 30분이 걸린다. 여기까지의 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다. 대전사에 들어서면 주왕산의 상징 같은 기암단애가 눈에 들어온다. 저절로 탄성을 내뱉게 된다. 대전사 전각을 앞에 두고 기암을 촬영해보길 권한다.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 듯 멋진 작품을 남길 수 있다.
기대감은 점점 높아진다. 대전사를 지나쳐 가면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된다. 최근 여기서부터 ‘맨발로 걷기’가 가능해졌다. 발 씻는 곳도 마련돼 있고 작은 황토체험장도 있다. 맨발걷기 마니아들은 벌써부터 신발을 벗어던진다. 용추계곡까지는 자극이 적은 길이기 때문에 맨발로 걸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용추폭포로 향하는 길은 남녀노소 모두 걷기 좋은 길이다. 곳곳에 화장실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다. 더러는 간식을 가져와 둘러앉아 먹으며 망중한을 즐기기도 한다.
곧장 길을 걸어가면 용추협곡이 나오지만 샛길을 따라가면 주왕굴, 무장굴, 연화굴 같은 지질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주왕산은 백악기 시대 화산 폭발로 생겨난 곳이다. 화산재와 암석조각들이 엉겨붙어 만들어진 암석을 응회암이라고 하는데 주왕산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 암석이 응회암이다.
응회암이 만들어질 때 암석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세로로 긴 틈이 생겨 만들어진 지형을 두고 주상절리라고 한다. 주왕산에서는 이런 주상절리, 판상절리 같은 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중 몇 군데에서 침식되고 풍화를 겪으며 굴이 만들어졌다. 모든 굴에 갈 수는 없지만 한 군데 정도는 꼭 들러봐야 한다.
신선세상으로 들어가는 듯 신비로운 길
대전사의 부속암자인 주왕암을 지나 주왕굴로 향했다. 주왕굴은 주왕산의 유래가 된 인물 주왕이 은거해 살았다는 곳이다. 주왕은 진(晉)나라 후예로 당나라에 대적해 진나라 재건을 꾀했던 인물이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주왕산까지 피신했다. 결국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와 싸우다 최후를 맞았다.
당시 사람들은 신라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은 주왕이 산신이 됐다고 믿었다. 주왕굴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고 믿어 이곳에 사당을 차려놓고 산신상을 봉안했다. 하늘이 겨우 보일 듯한 좁은 협곡에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부적들을 보니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이 자취를 감췄다.
다시 큰길로 돌아와 용추폭포를 향해 걷다보면 주왕산의 명물 중 하나인 시루봉이 눈에 들어온다.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고 해서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어린아이 눈으로 보면 영락없는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 “여기는 눈, 저기는 코” 짚어가며 까르륵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함께 웃는다.
용추폭포가 다가오면 아찔한 기분이 든다. 깎아지른 듯한 단애 사이에 몸을 넣어 들어가다 보면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하다. 여기저기서 내뱉는 감탄사를 배경으로 길 위에 서서 협곡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이 많다.
용추폭포는 이 길의 하이라이트다. 둥글게 물이 고이는 폭포는 3단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걸어온 길을 포함해 용추폭포까지를 두고 용추협곡이라고 부르는데 청송군의 설명에 따르면 옛 선비들은 이 계곡이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위 사이를 지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폭포의 전경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용추폭포를 지나 용연폭포까지 걸어가볼 수도 있다.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길처럼 평탄하지만은 않지만 초등학생 어린이 정도의 체력이라면 거뜬히 다녀올 수 있다. 하늘이 비치는 용연폭포 아래 고인 호수, 폭포의 수면을 한참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다. 오는 길에 용추폭포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면 가는 길에는 시루봉이 보이는 시루교에서 ‘자연탐방로’라고 안내된 옆길을 걸어볼 수 있다.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을 구경했다는 망월대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가보자.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조금 올라가보면 놀라울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연화봉과 병풍바위, 급수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망월대다. 지각 단풍이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공룡발자국도 보고 한옥에서 하룻밤을
청송군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주왕산 기암단애, 용추협곡을 비롯해 신성리 공룡발자국, 청송 얼음골 등 24곳이 세계적으로도 지질학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그런 만큼 주왕산국립공원 외에도 청송 곳곳은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 알려진 주산지는 1720년 조선 경종 시절에 만들어진 자연유산이다. 약 200m 길이, 8m 깊이의 이 저수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밑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주산지 바닥을 이루는 응회암과 퇴적암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주산지를 찾는 사람이면 한 번쯤 카메라를 꺼내는 곳, 150년 묵은 왕버들 앞에서 사진을 찍어보자.
주산지 인근에 있는 절골계곡도 찾아가볼 만하다. 주왕산의 남쪽 한적하게 자리 잡은 계곡에는 기암괴석과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절골계곡에서 가메봉에 이르는 탐방로를 가려면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누리집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높다란 암석을 헤치고 계곡 속을 걷다보면 일상의 고단함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청송에는 공룡발자국도 있다.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기에 적합한 곳이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며 노출됐던 발자국은 사실 오랜 시간 볼거리는 아니다. 발자국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서면 끝이지만 공룡 모형이며 화석 발굴 체험 공간 등이 아동친화적이라 시간을 보내기 좋다.
이외에도 청송에는 객주문학관, 송소고택 같은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는 명소도 있다. 송소고택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인근 청송민예촌도 최근 숙박처로 재건됐는데 옛집의 매력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청송을 찾는다면 한옥에서 묵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효정 기자
뚜벅뚜벅 걸어서 청송 돌아볼까
누구든 시내버스 요금 ‘0’원
지역 관광을 떠날 때면 꼭 필요한 것, 자동차다. 그러나 청송에서는 차가 없는 뚜벅이도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청송의 시내버스 요금이 0원이기 때문이다.
청송군의 모든 시내버스는 1월부터 무료로 운행되고 있다. 청송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 외국인까지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시내버스 노선도 다양하다. 주왕산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만 10개가 넘는다. 주요 관광지에 모두 버스로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청송에서는 뚜벅이 여행자도 마음 편히 걸어서 지역을 즐길 수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