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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울리는 단풍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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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 전남 장성군에 다녀왔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뉴스 때문에 마음은 떠나기 전부터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네’라고 했던 두목(杜牧)의 시 ‘산행’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만산홍엽을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장성에 도착할 때까지 고속도로 주변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단지 ‘초록 단풍’이었다. 잎사귀가 반쯤 떨어져버리거나 색이 바랜 나무도 없지는 않았으나 내가 상상했던 고운 단풍은 아니었다. 이상기후 때문일까? 내년에도 붉은 단풍을 볼 수 없는 걸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가을이다.
이번에 초록 단풍을 보기 전까지는 장시흥(張始興)의 ‘관폭도(觀瀑圖·폭포를 바라보는 선비)’가 그다지 이해되지 않았다. ‘관폭도’는 상당히 큰 작품인데 넓은 화면의 상당 부분이 먹색으로 칠해져 있다. 가을 정취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늦여름의 계절감이 느껴진다. 폭포를 감상하는 그림이라면 가을이 아니라 여름 풍경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제시를 보면 ‘늦가을 단풍이 그늘진 계곡을 울리고(晩楓鳴陰壑)/ 나는 듯한 폭포는 묵은 이끼 위에 떨어지네(飛泉落古苔)’라고 적혀 있어 늦가을이 분명하다. 늦가을의 폭포는 시원함보다는 한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관폭도는 늦가을이 아니라 여름 풍경을 상징하는 소재로 그려진다. 나 역시 ‘관폭도’를 보면서 바위틈에 군데군데 물든 붉은 낙엽이 아니었더라면 여름 풍경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그동안은 장시흥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대신 그가 계절감각이 부족했다고 단정해버렸다. 장시흥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鄭敾)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다. 이 작품에서도 구도와 필법에서 스승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는 호가 방호자(方壺子)로 정조 때 규장각 소속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늦가을의 단풍이라면 조선 말기에 활동했던 안중식(安中植)의 ‘풍림정거도(楓林停車圖)’를 따라갈 작품이 없다. 이 작품을 보면 서리맞은 단풍잎을 봄꽃보다 더 붉게 그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현실에서 보는 단풍조차도 안중식의 작품만큼 강렬한 인상은 주지 못할 정도다. 붉게 물든 단풍을 드러내기 위해 뒷산을 은색으로 물들여 마치 서리맞은 듯한 분위기를 낸 것조차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단풍이라면 두목의 ‘산행’이라는 시와 그 시를 소재로 그린 안중식의 ‘풍림정거도’가 기준작이었다.
한 작품만이 최고라고 정해버리면 나머지 작품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버리는 것이 나의 병폐다. 20여 년 동안 글을 쓰면서 안중식의 ‘풍림정거도’는 수없이 소개했으면서도 장시흥의 ‘관폭도’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던 행적이 바로 그 증거다. 결국 그 얘기는 나의 경험이 한정돼 있고 관찰력이 편협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번에 장성을 다녀오면서 초록 단풍을 보지 않았더라면 장시흥의 ‘관폭도’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초록 단풍이 어찌 이번 한 번만 물들었겠는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 현상을 눈여겨보지 못했을 뿐이다. 정현종은 ‘시간의 그늘’이라는 시에서 ‘시간은 항상/ 그늘이 깊다.// 그 움직임이 늘/ 저녁 어스름처럼/ 비밀스러워/ 그늘은/ 더욱 깊어진다’고 했다. 그 깊은 그늘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작품과 인생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시간이 조금 더 지난다면 제시에 적힌 ‘늦가을 단풍이 그늘진 계곡을 울리고’라는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계곡을 울리는 단풍소리는 도대체 어떤 소리일까?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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