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공존 지식 보다 지혜 필요 도구 아닌 반려자로 인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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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초연결시대, 지식의 영역에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선 지금, 어느 시대보다 삶의 가치를 분별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해졌다. 어떤 문화가 형성돼야 인류는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 인문은 이런 문화의 확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우리는 현재 어느 지점에 와있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기후 재앙이나 인공지능(AI) 관련 위기는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라고 한 바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할 때 자신은 생각하고 느끼는 주체로, 세상은 인식할 대상으로 봤다. 자신과 주변을 분리해서 바라본 거다. 자연의 모든 정보는 인간이 설계한 장치나 실험도구로 수집되고 인간이 만든 언어와 개념체계로 해석됐다.
인간 중심주의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원의 보고로, 생명체는 식용·관상용·애완용으로, 기계는 인간 생활의 편익을 위한 소모품으로 봤다. 기술 개발의 목적 자체가 인간 욕망의 끝없는 구현에 있다. 인간 외의 존재를 도구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배타적인 인간 사회가 구축되고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유일한 행위자라는 관점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위계가 설정되고 차이에 따른 차별이 정당화됐다. 결국 인간 외의 존재는 차별하는 휴머니즘이 강화되면서 인간마저 대상화하고 차별하게 된 거다.
Q 인간이 AI와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미래의 자율형 로봇을 전자 인격체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인격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human)과 인격(person)을 구분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종(種) 개념으로, 인격은 ‘이성을 갖고 반성하며 생각하는 지적 존재자’로 봤다. 나는 인격성을 지적활동에 필요한 요건과 능력들로 보고 인간성은 지적 활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지혜의 추구로 보고 있다. 인간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이지만 인격성은 동식물이나 비인간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다. 인격성에 어느 정도 층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Q 인격성에도 층위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격성의 다양한 요소들이 등급이나 차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성, 감성, 자율성, 도덕성, 자유의지 같은 인격 요소들이 각기 다른 수준이나 레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Q 그렇다면 AI도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
인간은 자기 필요와 영향력을 평가하며 존재자들에게 특정한 지위를 부여한다. 강아지가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얻은 것처럼 AI에도 인격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삶에 중요한 존재들에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것이다.
Q AI와 공존하면서도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지식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누적·집중되고 폭발적으로 팽창한다. 지식은 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지혜는 지식과 다르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지식 중에서 어떤 것들이 유용한지 판단하는 것이 지혜다. 지식은 쌓는 것이지만, 지혜는 쌓인 지식을 보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혜는 메타인지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가치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Q 특별히 지혜가 더 중요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AI는 ‘지식의 총화(모든 지식을 모아놓은 것)’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지식의 차원에서는 AI와 경쟁할 수 없다. 인간이 설 자리는 바로 지혜다. 지혜는 지식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안내해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혜로 무장된 선장 역할을 해야 한다. 인간 중심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AI와 동등한 관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Q 청소년들이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지식 중심의 교육보다 감성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배려와 존중, 우정 등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성을 중요시하는 ‘관계 지향적 감성교육’을 해야 한다. 또한 AI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도 감성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반려 감성’이라고 부른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반려자로 여기는 감성이다.
Q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와 배타적 휴머니즘이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했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환해야 할까? 그리고 인문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탈 인간중심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통해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연과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나는 뉴휴머니즘이라 부른다. 뉴휴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포용과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관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도덕적 감정을 키워야 한다. 체험교육과 도덕적 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이것을 실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인문적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윤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사회적·법적체계에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뉴휴머니즘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Q 인문학을 통해 건강한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AI를 도구가 아닌 반려자로 인식하게 하는 ‘반려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 도덕적 AI 솔루션을 만들어 AI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AI와 감성적 상호작용을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AI를 주제로 한 드라마·영화·소설 등을 통해 대중이 AI와의 건강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인문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AI와 인간이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담 전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inmun360.culture.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중원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이학박사 학위.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역임. 현대 물리학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기술의 철학, 현대 첨단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 관련 문제가 주요 관심 분야.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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