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교감하는 줄 위의 종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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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2대 예능보유자인 김대균 명인이 줄의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뜨는 허공잽이를 하고 있다.
2022년 8월 남자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 차영현이 은메달을 목에 걸어 주목을 받았다. 차영현은 독특한 이력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바로 ‘줄타기 연희자’라는 ‘부캐’(부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전통 연희 활동가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어린 시절 줄에 올랐다. 그는 최연소 줄타기 연희 기록을 갖고 있다. 차영현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피겨는 무대에 서는 느낌이다. 줄타기 공연도 무대라서 많은 연기 경험을 갖게 됐다. 덕분에 관객 앞에서 부담감과 긴장감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피겨스케이팅과 마찬가지로 줄타기도 무대에 홀로 선다. 차이가 있다면 무대의 크기다. 줄타기는 아슬아슬한 외줄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화려한 몸짓으로 공연을 펼쳐야 한다. 줄을 타는 사람은 절대 시선을 발아래로 향하지 않는다. 시선은 항상 정면을 응시한다. 고개가 떨어지는 순간 몸도 떨어진다. 그렇게 줄 위를 내딛는 발걸음이 줄 위가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받을 때 줄타기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줄광대가 줄 끝의 작수목에 서 있는 사이 어릿광대(왼쪽)가 땅에 드리운 줄그림자를 따라 땅줄타기를 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객과 소통으로 완성되는 공연성
줄타기는 예부터 각종 축제와 행사 때 어김없이 연행된 우리의 전통 공연예술이다.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줄타기는 체계적으로 보존·전수돼 오다가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가 줄타기의 가치를 높이 산 대목은 바로 관객과 소통으로 완성되는 공연성이다.
다른 나라 줄타기는 공연자가 단순히 줄 위를 걷지만 우리의 줄타기는 연희자가 노래와 춤, 곡예를 하면서 풍자와 해학이 담긴 재담을 늘어놓고 관객과 서로 교감한다. 기예와 재담, 가요가 어우러지는 한 편의 연극인 셈이다. 한 마디로 외줄로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극적 줄타기’, ‘줄 위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줄타기 공연의 주인공은 줄을 타는 연희자다. 이를 줄광대라고 한다. 줄광대는 높이 3m 허공에 매여 있는 길이 35m 외줄 위에서 재담과 기예로 잡노릇을 하면서 관객을 즐겁게 한다. 땅에선 어릿광대가 줄광대의 상대역으로 등장해 재담을 주고받으며 줄판의 흐름을 조절한다. 어릿광대는 공연 진행자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즉흥적인 현장 상황을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관객과 줄광대를 이어주면서 판줄을 엮어가야 한다. 어릿광대의 역할에 따라 줄광대의 연행 효과가 극대화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보통 줄타기 연행의 이야기 주제는 당대 민중의 한을 풀어주고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소재를 활용한다.
노래와 춤이 가는 곳에는 당연히 음악도 따라 다니는 법. 줄광대와 어릿광대의 놀음 흐름을 매끄럽게 하고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반주를 함으로써 전체 판놀음 분위기를 상승시켜 주는 기능은 삼현육각이 맡는다. 반주를 연주하는 악단을 떠올리면 된다. 삼현육각은 장고와 피리, 해금, 대금, 북 등의 연주자로 구성되며, 연주곡엔 염불타령과 허튼타령, 당악, 엇모리, 중모리, 자진모리, 경기굿 등 다양한 장단이 있다.
마지막으로 줄타기 공연의 화룡점정은 관객이다. 관객은 줄광대의 놀음에 추임새로 화답하며 공연의 완성도와 재미를 한껏 올려주는 특급 조연이다.
줄광대 기예 동작 43가지 달해
관객이 보기에 줄 타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 같지만 줄광대의 기예 동작은 43가지에 이른다. 대표 동작인 쌍홍잽이는 줄광대가 두 발로 줄 위에 섰다가 뛰어서 가랑이 사이로 줄을 넣고 앉았다가 그 반동으로 몸을 솟구쳐 줄 위에 오르는 기술이다.
외홍잽이는 줄 위에 섰다가 왼발로 줄을 딛고 오른발을 줄 밑으로 내렸다가 튀어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동작이고 앵금뛰기는 허튼타령 장단에 맞춰 줄 위에서 한 발만을 딛고 앞으로 나가는 기예다.
줄타기는 언제부터 대중 공연으로 정착된 걸까?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문헌상 처음 등장한 건 고려시대다. 고려 중기 문신인 이규보의 시문집 에는 “비단 장벽에 안개가 끼어 있고 채색 산에는 구름이 자욱한데, 솟대타기와 줄타기는 장안이 온통 구경하고, 북소리와 현악 소리는 팔가에 늘어서서 모두 듣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2대 제전으로 연등회와 팔관회를 열었는데 두 행사에선 공히 줄광대의 공연이 연행됐다.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행사 등을 묘사한 그림에서도 줄타기를 한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줄타기 초대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 고 김영철 명인에 이어 2대 예능보유자인 김대균 명인은 현재 전통 판줄을 하는 유일한 줄타기꾼이다. 김 명인이 외줄 위에서 보낸 세월만 40년이 넘는다. 그는 경기 과천시 갈현동 관악산 자락에 줄타기 전수교육장 등을 갖춘 전통줄타기보존회를 운영하면서 1년에 50~60차례 국내외 공연을 한다. 가을 햇살 아래 외줄에 올라서 우리 전통 연희의 백미인 줄타기를 체험하고 싶다면 한 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김정필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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