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 등 정당하게 컬렉션 구축 인류가 이룩한 예술적 자취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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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궁전 내에 있는 전쟁 갤러리 ©Poudou99
260년 역사에 빛나는 에르미타주미술관 역사의 출발지이자 현재 본관인 겨울궁전은 러시아 황제의 정궁(正宮)답게 당대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뛰어들어 호화롭고 웅장하게 건축한 바로크 양식의 전형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여름궁전이 황제의 여름 거처용 별궁 성격이었던 반면, 겨울궁전은 1762년부터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국의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155년 동안 황제의 공식 관저이자 황실의 의식이 거행되던 메인 궁전이었다. 화사한 연둣빛 색조가 궁전 외벽을 아름답게 지배하는 3층 건물로 1057개의 방과 1786개의 문, 1945개의 창문이 달린 화려한 내부 구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1826년에는 겨울궁전 내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769~1821, 재위 1804~1815)과 대결에서 승리한 조국 전쟁(1812년 6월~1813년 1월)을 기념해 군사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조국 전쟁의 영웅이자 예카테리나 대제(1729~1796, 재위 1762~1796)의 손자인 알렉산드르 1세(1777~1825, 재위 1801~1825)를 비롯한 러시아 장군들 위주로 300여 점의 군인 초상화가 전시된 방이다. 겨울궁전과 네바강 사이에 있는 광장 중앙에 알렉산드르 1세를 기념하는 높이 47.5m의 거대한 기둥 조형물이 서 있다.
겨울궁전은 제국 멸망 후 러시아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된 데 이어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난 뒤 국립미술관으로 변모했다. 이때, 미술관 소장품이 대폭 증가하는 데 혁명 정부가 귀족들의 개인 컬렉션을 몰수해 모두 에르미타주미술관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표트르 3세(1728~1762, 재위 1762.1.5.~1762.7.9.)부터 니콜라이 2세(1868~1918, 재위 1894~1917)까지 모두 8명의 황제가 겨울궁전을 거쳐 갔다.
▶겨울궁전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높이 47.5m의 거대한 알렉산드르 기둥 조형물 ©Leonard G.
▶겨울궁전 성 게오르기 홀에 있는 러시아 황제의 대(大) 옥좌(玉座) ©Hajotthu│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에르미타주미술관 컬렉션의 변천사
원시 문화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미술을 거쳐 러시아 미술,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300만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에르미타주미술관 컬렉션은 양과 질에서도 우수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다른 열강들과 달리 매입과 기증 등 정당한 절차에 따른 컬렉션의 역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인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문화유산이다.
특히 예카테리나 대제는 에르미타주미술관 설립의 주역일 뿐 아니라 후대 황제들이 문화선진국을 지향한 자신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초창기 미술관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술관 개관 당시 예카테리나 대제가 수집한 개인 컬렉션 200여 점 중에는 17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쌍두마차 렘브란트(1606~1669)와 페테르 폴 루벤스(1577~1640)의 작품 20여 점이 포함됐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안목이 뛰어났다. 또한 미술관의 자산인 컬렉션의 꾸준한 확장과 작품들을 보관, 전시할 미술관 건물 증축을 연계해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함으로써 사실상 현재의 에르미타주미술관 체계를 완성한 인물이다.
명망 높은 해외 귀족과 유명한 미술품 수집상들과 교류하던 예카테리나 대제는 1769년부터 1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컬렉션을 늘려나갔다. 1769년 독일의 외교관으로 당대 최고의 수집가로 이름을 날리던 하인리히 폰 브륄 백작(1700~1763)으로부터 회화 컬렉션을 사들인 데 이어 1772년에는 프랑스 금융계의 실력자이자 예술애호가인 피에르 크로자트(1665~1740)가 조카 루이 앙투안 크로자트(미상~1770)에게 상속한 명품 컬렉션을 확보하는 등 1781년까지 유럽의 값진 예술품들을 속속 에르미타주미술관으로 들여왔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직계혈통인 알렉산드르 1세도 1814년 나폴레옹의 첫 번째 아내인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1763~1814)가 소장하고 있던 렘브란트의 회화와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의 조각품 등 30여 점의 조제핀 컬렉션을 구매해 에르미타주미술관 소장품의 자산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에 공헌했다.
전후인 1948년에는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및 신인상파 작품과 20세기 마티스(1869~1954), 피카소(1881~1973) 회화 등 300여 점의 근현대회화가 푸시킨 국립미술관에서 이관돼 수준급의 서양미술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푸시킨 국립미술관은 원래 모스크바 서양미술관으로 1912년 개관한 뒤 1917년 10월 혁명 후 국립미술관으로 바뀐 데 이어 1937년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사망 100주기를 맞아 푸시킨 국립미술관으로 명명됐다.
▶겨울궁전(가운데 아래 사각형 건물)을 중심으로 한 에르미타주미술관을 공중에서 내려다본 장면. 겨울궁전 바로 왼쪽 건물이 미술관 명칭의 유래가 된 소 에르미타주, 그 옆이 대 에르미타주다. 대 에르미타주와 소 에르미타주 뒤로 신 에르미타주 건물이 보인다. 겨울궁전 앞으로 궁전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궁전광장 뒤 건물이 구 해군 참모본부다. ©Andrew Shiva
▶겨울궁전 파빌리온 홀에 전시된 18세기 황금 공작 시계 ©Andrey Filippov
▶구 에르미타주 128번 방에 있는 높이 2.57m, 무게 10t의 거대 화병 ©jimmyweee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본관 겨울궁전
에르미타주미술관은 총면적 4만 7767㎡(1만 4449평)에 본관인 겨울궁전, 미술관 명칭의 유래가 된 소 에르미타주, 대대적인 미술관 증축의 결과물인 구(또는 대) 에르미타주와 에르미타주 극장, 니콜라이 1세(1796~1855, 재위 1825~1855) 재위 말기인 1851년에 세운 신 에르미타주 등 5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공식적으로 미술관 공간은 아니지만 겨울궁전 뒤 광장 건너편에 자리한 구 해군 참모본부도 에르미타주미술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곳에 인상파와 신인상파, 마티스와 피카소 등 근현대회화의 보석 같은 작품들로 이뤄진 서양미술 컬렉션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400여 개의 전시실을 보유한 5개 건물로 이뤄진 에르미타주미술관은 동서 가로 길이가 250m에다 미술관 전시 동선의 총연장이 무려 27km에 이른다.
겨울궁전은 8명의 러시아 황제가 거주했던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본관이다. 선사 시대 유물을 비롯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문명 등 인류 조상들이 이룩한 예술적 자취를 간직한 다양한 컬렉션으로 꾸며져 있다.
겨울궁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 세 군데가 있는데 러시아 황제 대(大) 옥좌(玉座)가 비치된 성 게오르기 홀과 황금 공작 시계가 놓인 파빌리온 홀, 렘브란트 만년의 걸작 ‘돌아온 탕아’가 걸려있는 회화관이다.
성 게오르기 홀의 대표 유물 대 옥좌는 금으로 도금된 등받이와 화려한 붉은 색상의 벨벳으로 치장된 벽에 러시아 제국을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다.
1850년 겨울궁전에 들어선 파빌리온 홀에서 단연 인기를 끌고 있는 황금 공작 시계는 황금으로 제작된 수제 공작새와 닭, 새장 안의 부엉이가 한 세트로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콕스사가 제작했다. 러시아 장군 포템킨(1739~1791)이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선물한 것으로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면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편 채 빙그르르 돌고 닭이 울면서 잠들어 있던 부엉이가 깨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궁전 소장 회화의 하이라이트는 렘브란트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돌아온 탕자’(1668년경)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그림은 재산을 탕진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아들과 두 손으로 아들을 끌어안으며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아버지의 부성애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역작이다. 예카테리나 대제가 재위 5년째인 1766년 프랑스의 앙드레 조제프 후작(1695~1767)에게서 사들인 것으로 에르미타주미술관 254번 방에 전시 중이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캔버스에 유화, 262×205cm, 1668년경
▶빈센트 반 고흐, ‘밤의 하얀 집’, 캔버스에 유화, 59×72.5cm, 1890│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세계 최고 수준의 마티스 컬렉션
구(舊) 에르미타주는 예카테리나 대제의 지시로 16년간의 공사 끝에 1787년 문을 연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티치아노(1488년경~1576), 조르조네(1477년경~1510)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대가들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구 에르미타주의 명물로는 128번 방에 놓인 대(大) 화병이다. 높이 2.57m, 무게 10t에 이르는 이 화병은 러시아 변경 알타이 지방에 있는 도시 콜리반에서 생산되는 벽옥(碧玉)으로 만들어졌다 해서 콜리반 화병으로도 불린다.
신(新) 에르미타주에는 17세기 네덜란드 전성기 회화와 플랑드르 미술, 16~18세기 스페인 회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와 조각 외에 기원전부터 근현대에 걸친 서양 보석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겨울궁전 뒤 광장 건너편에 있는 구 해군 참모본부 전시실은 19~20세기 서양미술을 빛낸 거장들의 컬렉션으로 꾸며져 있다. 컬렉션은 부유한 사업가 출신으로 19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 컬렉터였던 미하일 모로조프(1870~1903)-이반 모로조프(1871~1921)의 소장품과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1854~1936)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이들이 수집한 컬렉션의 주인공은 폴 세잔(1839~1906)을 비롯해 모네(1840~1926), 고흐(1853~1890), 고갱(1848~1903), 르누아르(1841~1919), 말레비치(1879~1935), 일리아 레핀(1844~1930), 마티스, 피카소 등 세기를 빛낸 거장들이다.
특히 에르미타주미술관의 마티스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1967년 마티스의 그림 40여 점을 기증한 미모의 한 여인 덕분이었다. 그 여인은 러시아 출신으로 마티스의 연인이자 비서 겸 예술적 동지로 마티스의 임종을 지켜본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1910~1994)였다. 그녀는 여든네 살이던 199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1995년에는 오랫동안 소재를 알 수 없었던 고흐의 그림 ‘밤의 하얀 집’이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개최한 전리품 전시 때 다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밤의 하얀 집’은 1890년 6월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불과 한 달여 전 프랑스 오베르에서 그린 그림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강탈당한 뒤 행방불명됐던 작품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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