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박물관에 빛나는 예카테리나 대제 컬렉션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네바강 쪽에서 바라본 에르미타주미술관. 왼쪽에서 두 번째 건물부터 에르미타주 극장, 대(구) 에르미타주, 소 에르미타주, 겨울궁전 ©Yair Haklai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다. 러시아의 거점 공업도시이자 육·해상 및 항공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문화와 교육, 과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러시아 역사의 고비마다 한복판에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원래 사람이 살기 힘든 네바강 삼각주의 늪지였다. 도시의 기원은 18세기 초 러시아가 발트해의 주도권을 놓고 스웨덴과 벌인 대북방전쟁(1700~1721) 초기에 획득한 잉그리아라는 지역이다. 1703년 발트해 연안의 잉그리아를 손에 넣은 로마노프 왕조(1613~1917)의 4대 군주이자 러시아 제국(1721~1917)의 초대 황제 표트르 1세(1672~1725, 재위 1682~1725)는 불모지인 네바강 어귀에 스웨덴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구축했는데 이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의 시초다.
1713년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천도(遷都)하면서 영토 확장의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표트르 1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최고 수준의 공업도시 겸 거점 항구요, 문화예술 및 교육의 보고(寶庫)로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1914년 모스크바로 재천도 될 때까지 200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페트로그라드(1914~1924), 레닌그라드(1924~1991) 시절을 거쳐 1991년 9월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러시아 최대 규모이자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거론되는 에르미타주미술관이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데 도시 건설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데다 화려한 궁전과 성당 등 문화재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이자 인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빼어난 문화재, 인공 운하, 천연 수로가 많아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리며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와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묘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에 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의 파상공격을 처절하게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폴 들라로슈(1797~1856), 표트르 1세 초상화, 캔버스에 유화, 130.6×97cm, 1838,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소장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의 출발이자 상징적 건축물인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Alex Fedorov│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의 건립자 표트르 1세
인공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주역이자 유럽의 변방 러시아를 강대국 반열에 올린 개혁 군주이자 황제다. 정치, 경제, 문화, 학문, 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선진 서구 문물을 과감히 수용해 강력한 혁신 정책과 영토 확장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봉건적 잔재를 타파함으로써 부국강병에 성공한 황제로 평가된다.
1703년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의 첫 삽을 뜬 표트르 1세는 항만시설 구축과 운하를 잇달아 개통시킴으로써 서방세계로 진출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러시아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역사적인 건축물 조성에 힘을 쏟았다. 대표적인 유적이 황제의 여름 관저인 바로크 양식의 페테르고프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시 페테르고프에 있는 이 궁전은 1714년에 공사를 시작해 1723년에 완공됐는데 아름다운 정원과 인공 폭포, 분수로 유명해 러시아의 베르사유궁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파괴됐으나 재건공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현재 해군중앙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상품거래소와 구 세관 건물도 표트르 1세 때 건축됐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300년 역사의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도 표트르 1세 재위 말기인 1724년 1월에 세워졌다. 표트르 1세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안 묘지에 묻혀 있다.
표트르 1세 사후 약 40년이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화유산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에르미타주미술관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표트르 1세의 외손자 며느리인 예카테리나 대제(1729~1796, 재위 1762~1796)다.
표트르 1세와 함께 러시아 제국 황제 중 단 2명에게만 부여된 대제(大帝, Great Emperor)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시외할아버지인 표트르 1세의 문화 사랑과 개혁의 꿈을 이어받아 에르미타주미술관 설립의 물적 토대를 확립하고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영토 확장을 이끈 여걸 중의 여걸이었다.
▶표도르 로코토프(1735~1808)가 그린 예카테리나 2세 초상화, 캔버스에 유화, 263×188cm, 1780년경, 에르미타주미술관 소장
에르미타주미술관의 기원과 역사
에르미타주미술관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1764년이다. 지금 에르미타주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겨울궁전이 미술관의 시초다. 겨울궁전은 러시아 황제의 정궁(正宮)으로 표트르 1세의 딸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1709~1762, 재위 1741~1762)에 의해 세워졌다.
1754년~1762년 8년 간의 공사 끝에 1천 개가 넘는 방과 홀을 갖춘 장엄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위용을 드러낸 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막을 내릴 때까지 황제들이 거처한 겨울 관저였다. 아쉽게도 페트로브나 여제는 겨울궁전이 완공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페트로브나 여제 사망 후 그녀의 한 살 위 언니의 아들로 14세 때 황태자로 책봉된 표트르 3세(1728~1762, 재위 1762. 1.5.~1762. 7.9.)가 황제로 즉위했으나 6개월 만에 폐위됐다. 표트르 3세의 아내 예카테리나가 황실 근위대를 동원해 무능하고 평판이 나빴던 남편을 강제 폐위시키고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자신이 직접 수집했던 플랑드르 및 네덜란드 회화 200여 점과 선대 황제들의 컬렉션을 더해 즉위 3년 차인 1764년 겨울궁전에서 비공개 상설 전시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에르미타주미술관의 출발이었다.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심미안이 남달랐던 예카테리나 대제는 국력 신장을 도모하는 한편, 문화강국을 지향하는 포부를 현실화할 미술관 전용 건물을 새로 짓기로 하고 겨울궁전 바로 옆에 별관을 신축했다. 1766년에 완공된 이 별관이 지금의 소 에르미타주 건물이다.
에르미타주는 프랑스어로 ‘은둔소’라는 뜻으로 홀로 그림 감상하기를 좋아해 외부 공개를 금지한 예카테리나 대제가 직접 작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관 명칭이 에르미타주인 까닭이다.
예카테리나 대제 시절, 늘어난 컬렉션을 수용하기 위한 증·개축 공사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1783년~1786년 에르미타주 극장이, 1771년~1787년 16년에 걸쳐 대(또는 구) 에르미타주 건물이 각각 건립됐다. 대 에르미타주 건물이 들어선 해에 예카테리나 대제는 궁전과 정원 장식용 고대 로마 조각 작품들을 사들였는데 이를 토대로 고대 로마 유물 컬렉션이 구성됐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을 형성하는 마지막 건물인 신 에르미타주는 예카테리나 대제의 손자인 니콜라이 1세(1796~1855, 재위 1825~1855) 재위 말기인 1851년에 지어졌다. 겨울궁전, 소 에르미타주, 대(구) 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 신 에르미타주 등 5개의 건물은 연결통로로 이어지는 구조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은 1852년에서야 귀족들에게 공개됐고 일반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1863년부터다. 1837년 화마에 휩싸이는 곤경을 겪기도 했으나 2년 후 설계 원안대로 복원됐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의 본관인 겨울궁전 ©Skif-Kerch
▶표트르 1세의 여름 궁전인 페테르고프궁 ©Alex Fedorov│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초기 컬렉션 형성에 공헌한 예카테리나 대제
에르미타주미술관 설립의 일등 공신인 예카테리나 대제는 프로이센 왕국 귀족의 딸로 무력으로 남편을 끌어내리고 러시아 제국의 황제 자리를 꿰찬 냉철한 계몽 군주였다. 30대 초반에 친위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34년간 제국을 통치한 그는 영토 확장과 경제 발전을 통한 국력 신장을 주도했으며 학문과 교육, 문화예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러시아를 문명국가로 변모시키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위대한 소산 중 하나가 에르미타주미술관 설립과 컬렉션 확장이다.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훌륭한 예술품을 알아보는 타고난 안목을 더욱 갈고 닦은 그는 4000점에 가까운 명품 회화 컬렉션과 1만 점이 넘는 진귀한 보석, 3만 8000여 권의 장서와 동전 컬렉션에 이어 자연사 유물까지 에르미타주미술관의 초기 컬렉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5개의 궁전건물에 400여 개의 전시실, 300여 만 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에르미타주미술관의 자산적 토대는 로마노프 왕조의 예술적 업적을 계승 발전시킨 예카테리나 대제 시절에 구축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주목할 만한 국가 위상 증대와 예술적 성취 못지않게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장부였다. 에르미타주미술관 컬렉션의 변천사와 건물구조, 컬렉션 유형 및 대표 소장품은 이어지는 하(下) 편에서 소개한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