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흔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젠 세계의 ‘K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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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유행에 올라탄 어설픈 흉내에 그칠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서비스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얘기입니다.
첫인상은 ‘이게 대체 무슨 영화야’ 였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만드는 ‘K-팝’ 영화라니요. 게다가 3인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실은 악귀를 때려잡는 데몬 헌터였고 심지어 악귀들도 5인조 남성 아이돌을 결성해 맞대결을 펼친답니다. 실소가 절로 나왔죠. 2021년 제작 발표 이후 별다른 정보도 없어 존재감이 사라졌죠.
그런데 6월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41개국에서 1위를 기록(6월 27일 기준)하고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아이튠즈·스포티파이 등 주요 음원 서비스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유어 아이돌’은 현지시간 7월 4일 스포티파이 미국 차트 데일리 톱 송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BTS 정국·지민의 솔로곡과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만 가진 대기록입니다. 급기야 현지시간 7월 8일 공개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OST 7곡이 입성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같은 날 앨범 판매량을 집계하는 빌보드 200에선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악귀 아이돌 사자 보이즈의 데뷔곡 ‘소다팝’은 틱톡·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수의 챌린지를 양산하며 대세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완전체로 돌아온 방탄소년단(BTS)도 라이브 방송에서 해당 곡을 흥얼거리며 “그 영화 봤냐”고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낯설지만 보편적인 이야기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리뷰를 집계하는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95%, 관객 94%의 긍정 평가(6월 29일 기준)를 받았죠. 슈퍼스타 아이돌의 악귀 사냥이라는 낯선 소재에도 고른 호평이 이어진 이유는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상처와 결핍을 마주하고 극복할 때 비로소 ‘진짜 나’로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습니다.
또 도깨비와 저승사자, 무당과 굿 같은 한국적 소재로 차별화를 추구하면서도 오컬트 장르의 보편성 덕에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은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 측면에서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우선 한국 문화가 국적과 상관없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장르’가 됐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매기 강 감독은 (작품을 영어로 만든 부분에 대해) “문화적으로 온전히 한국적인 영화가 미국 회사에 의해서 제작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가진 강력한 힘을 나타내주는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요즘 미국에서는 뭐든 K가 앞에 들어가면 열광한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습니다.
‘K스러움’의 가능성
동시에 이 작품은 한국인·한국계 창작자들이 모국에 보내는 헌사이기도 합니다. 5세 때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한 매기 강 감독은 언젠가 한국의 문화를 담아낸 애니메이션을 꼭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애정과 열정 덕에 한국적 요소는 설익은 흉내가 아닌 완벽한 고증으로 재현됐습니다. 주인공들은 무대의상 액세서리로 전통 장신구 노리개를 착용하고 조선시대 전통 도검인 사인검(四寅劍)을 무기로 씁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김밥과 새우깡, 설렁탕과 컵라면을 흡입하며 기운을 얻고요. 작호도(鵲虎圖)에서 모티프를 따온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는 등장할 때마다 치명적인 귀여움으로 시선을 빼앗습니다. ‘수저 밑에 냅킨 깔기’나 ‘대중목욕탕의 초록색 때수건’ 등 한국인만 알아챌 수 있는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매기 강 감독은 이에 대해 “모든 부서의 한국인 직원들이 디테일(코리안리즘)을 더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진짜 K-팝다운 음악을 만든 것도 철저한 고증의 일환입니다. 한국의 연예 기획사 더블랙레이블과 프로듀서 테디가 음악 작업에 참여했고 걸그룹 트와이스는 삽입곡 ‘테이크다운’을 직접 불렀습니다. 사자 보이즈가 청량 콘셉트 데뷔곡 이후 다크·섹시 콘셉트로 컴백하는 설정 역시 아이돌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더 대박 아닌가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국을 소재 삼아 다른 나라만 돈 버는 게 아니냐’는 댓글에 이런 반박이 달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를 자랑하는 것과 남들이 나서서 퍼뜨리는 건 차원이 다르죠. 오히려 이게 더 대박 아닌가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산(産)이 아닌 한국식 대중문화, 즉 K-콘텐츠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 콘텐츠의 K화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속편을 바라는 이유는 바로 그 ‘K스러움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홍성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간지 기자.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으로 불리며 책 ‘그거 사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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