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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과 약탈 사이 대영제국이 구축한 인류 문명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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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박물관 입구. 이오니아식 거대한 기둥들이 눈길을 끈다. ©Ham

영국은 한때 전 세계 인구와 영토의 4분의 1을 다스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유일무이의 절대 권력을 자랑했다. 대영제국(大英帝國, The British Empire)이란 국가 명칭도 이때 나왔다. 17세기 이후 영국 본국과 자치령, 식민지 등을 통틀어 일컫던 대영제국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른 법제화로 영연방이 출범할 때까지 300년 동안 지속됐다.
영국의 수도 런던 블룸즈버리에는 인류 4대 문명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 있다. 대영 박물관이다. 대영제국 시대인 1759년에 개관한 영국 최초의 국립박물관이다. 희한하게도 영어 명칭(The British Museum)에서는 대영 박물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개관 당시 대영제국이었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정착된 명칭이 2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통용된다. 대영 박물관의 유래를 더듬기 위해서는 대영제국의 역사 조명이 전제돼야 하는 이유다.

▶대영 박물관의 핫 플레이스 이집트관 ©Txllxt TxllxT│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대영제국의 출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대영제국의 기원은 신대륙 발견의 의지를 드러낸 헨리 7세 국왕(1457~1509, 재위 1485~1509) 시절인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나 실제 잉글랜드 식민지가 신대륙에 최초로 건설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 재위 1558~1603) 때였다.
불과 25세에 여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왕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45년간 통치를 하면서 유럽의 작은 섬나라가 훗날 세계를 제패하는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을 다진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대영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지는 승부의 분수령은 대서양 전투였다. 16세기 당시 대서양은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가 지배하고 있었다. 대서양 항해권은 해외 진출을 도모하던 영국의 사활이 걸린 승부처. 스페인 무적함대와 정면승부에서 엘리자베스 1세 휘하의 영국 해군이 승전국으로 대서양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마침내 대륙정복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대영제국으로 가는 활로를 뚫은 영국은 17세기 들어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1627년 최초로 정복한 바베이도스를 시작으로 1925년 제한적 식민지였던 키프로스를 완전히 정복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복 또는 식민지로 삼은 국가만 54개국에 이른다.
강력한 해상장악력을 바탕으로 패권국가로 군림한 영국은 5대륙 곳곳에 세운 식민지와 정복 전쟁으로 점령한 나라에서 인류 문명의 유산을 대거 수집해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말이 수집이지 점령국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강제로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는 무려 800만여 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유물이 영국 본토로 옮겨졌다.
유물이 보관된 공간이 바로 대영 박물관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寶庫) 대영 박물관은 대영제국의 영화 뒤에 가려진 수많은 피점령국과 식민지의 가슴 아픈 역사가 스며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약탈당한 유물의 반환 당위성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외벽의 조각상을 떼 내 전시한 엘긴 마블 ©Txllxt TxllxT


▶람세스 2세의 거대 흉상 ©Pbuergler

대영 박물관 설립과 한스 슬론 경
대영 박물관은 대영제국 시대에 문을 열었지만 설립의 초석을 세운 사람은 따로 있다. 열렬한 문화 애호가이자 수집가(컬렉터)였던 그는 평생 7만 점이 넘는 예술품을 수집했다. 개인 컬렉션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인데다 컬렉션의 내용도 실로 다양해 인물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의 이름은 한스 슬론(1660~1753). 아일랜드 태생으로 본업이 내과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슬론은 성장기 시절 잦은 병치레로 자연스레 의학과 약학에 빠져든 게 계기가 돼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약학 지식도 남달라 식물학자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슬론의 진가는 다른 곳에서 꽃을 피웠다. 여든 넘어까지 전 세계의 유물을 찾아다닌 편집광적 수집가, 이야말로 슬론이 끈질기게 매달렸던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다. 본업인 의사가 무색하게 슬론이 개인 컬렉션 역사에 길이 남을 방대한 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호기심과 탐구욕을 주체할 수 없는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수집벽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근원적으로 나름 존재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 그는 특히 역사의 숨결이 깃든 진귀한 물건, 즉 인류의 문화유산과 생명체의 뿌리인 식물의 종(種) 연구와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모름지기 세상만사에 공짜는 없는 법, 하물며 시간과 정열과 재력, 삼박자의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한 전문적인 유물 컬렉션에는 많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건은 경제력인데 슬론은 직업이 의사라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데다, 부유한 자메이카 사탕수수 농장주의 미망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덕분에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슬론의 개인 컬렉션은 예술품과 식물 표본, 고서를 비롯한 장서, 미라, 골동품, 화폐 등 인류 문화와 관련된 전방위적인 유물에 걸쳐있다. 슬론은 사후 수집품 모두를 국가에 헌납했다. 문화유산은 결코 개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신념을 실천한 것이다. 슬론의 개인 컬렉션을 토대로 왕실이나 교회 부설이 아닌 세계 최초의 독립적인 국립박물관, 대영 박물관이 설립됐다. 1759년 1월 15일이었다.

▶사각형 구조의 대영 박물관을 공중에서 촬영한 항공사진. 오른쪽 가운데가 입구로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보인다. ©Luke Massey & the Greater London National Park City Initiative


대영 박물관의 증축 역사
런던 블룸즈버리에 자리한 17세기 풍 몬터규 귀족 가문의 저택이었던 몬터규 하우스를 정부가 사들여 개축한 곳에서 출발한 대영 박물관은 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무료입장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슬론의 개인 컬렉션을 중심으로 왕실 보유 유물을 더해 구축한 초기 소장품은 1772년 영국의 외교관이자 고고학자 겸 컬렉터였던 윌리엄 해밀턴(1730~1803) 경이 그리스·로마 유물을 기증하면서 양적 확대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1778년에는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로 명성을 떨쳤던 제임스 쿡(1728~1779)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수집한 진귀한 물품들을 박물관 소장품 목록에 올렸다.
19세기 들어 대영 박물관의 컬렉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798년 나일강 전투에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함대를 물리치며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데 이어 1815년 워털루 전쟁 승리로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의 기념비적인 문화재들이 대영 박물관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급증한 소장품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821년 건축가 로버트 스머크(1780~1867)에게 의뢰해 대대적인 증·개축 공사에 들어가 4각형 구조의 지금의 대영 박물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영 박물관은 1828년 ‘왕의 도서관’으로 불리는 동관이 맨 먼저 완성됐으며 1834년 서관의 북쪽 건물이, 1838년에는 북관이 완공됐다.
1846년 몬터규 하우스를 철거한 자리에 새로 지은 서관의 남쪽 건물을 끝으로 로버트는 현역에서 은퇴했다. 박물관 입구 중앙의 원형 열람실로 계획된 남관은 로버트의 동생인 시드니 스머크(1797~1877)가 설계를 맡아 1857년 완공했다. 원형 열람실의 기능은 1997년 대영 도서관으로 이전됐으나 건물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1884년 화이트 관이 신축됐으며 1914년 에드워드 7세 전시실이, 1938년에는 듀빈 갤러리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듀빈 갤러리는 1962년 재개관했다.
대영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7만 5000㎡(2만 2687평) 규모에 인류 4대 문명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10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 입구를 떠받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인 이오니아식 거대한 기둥 44개가 인상적이다. 높이 14m의 각 기둥 밑에 있는 기단(주춧돌)과 소용돌이 문양으로 장식된 기둥머리 부분에서 우아하고 여성미가 특징인 이오니아식 건축기법이 뚜렷이 나타난다.

▶고대 국가 아시리아의 수호신 라마수 ©Mujtaba Chohan│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의 유물 대거 소장
고대 이집트와 수단 유물 11만여 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물 10만여 점,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심의 중동 유물 33만여 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유물 컬렉션 등을 보유하고 있는 대영 박물관은 사실상 인류문명의 전당이나 다름없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이집트관인데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실마리가 된 로제타석과 이집트 테베 신전에서 발견된 람세스 2세의 거대 흉상, 미라 등이 대표적인 유물들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외벽의 조각상을 뜯어 그대로 옮겨온 엘긴 마블과 메소포타미아 고대 국가 아시리아의 수호신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린 상상 속의 괴물 라마수(Lamassu)도 대영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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