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이 잘 어울리는 음악가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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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자신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말했다. 인간에게 실존적 외로움이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
외로움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는데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 교 목사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과 고독의 정의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고.
바쁜 일상생활을 하는 개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 폴 틸리히의 이 격언은 이해가 된다. 외로움은 즐기기 힘들지만 고독은 어찌 보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보통 외로움 속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사회활동이나 취미에 집중하고, 고독감 속에서는 자아성찰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정서적 상태는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욕구를 자극시키기도 하는데 외로움과 고독을 주제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는 작가 중에는 일본인들도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도 있다.
그가 외로움과 고독을 주제로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던 것처럼 문학 이외에 음악과 회화에서도 이 실존적인 주제는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주제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와 화가는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와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연상이 된다.
특히 슈베르트의 음악을 설명하거나 감상할 때 프리드리히의 회화 작품은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두 명의 예술가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로 인간의 외로움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한발 더 나아가 치유해주고 있다.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이들은 인생의 여러 굴곡들을 어떻게 자신의 예술로써 풀어나갔을까?
◆ 슈베르트(Schubert)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음악은 무한한 아름다움과 아련함 그리고 쓸쓸한 고독함 등 여러 감정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베토벤 사후 그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베토벤에서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이거나 한 순간도 숨쉴 틈 없는 엄청난 몰입 감을 느끼게 해주기보다는, 문학적 이해와 섬세한 감수성에서 나오는 좀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고전에서 낭만으로 가는 시기적 교차점에 있기도 하지만 그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성의 에너지가 음악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슈베르트는 18세기말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교장선생님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학교생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그는 유독 음악을 좋아했다.
슈베르트는 유년시절 빈 소년 합창단의 전신인 왕립소년 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첫 작품을 작곡하고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했다고 알려진(실제로는 사실과 다르지만) 살리에리의 문하로 들어가 작곡을 공부했다.
스승과 함께 음악을 공부하면서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였고 베토벤을 존경하게 되었다. 슈베르트에게는 그의 재능을 아끼고 후원하는 모임인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일명 ‘슈베르트의 밤’이 있었는데 재력가와 법률가 등의 친구들이 주축이 된 살롱문화 형태의 토론회였다.
그곳에서 슈베르트는 문학에 눈이 트이게 되고 음악과 시를 연결해 수많은 가곡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뛰어난 음악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전에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그가 친구를 만나서 하는 첫인사가 보통 “배가 고프다네”였고,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테레제와의 사랑도 실패하면서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마저 놓쳐버리게 되었다.
빈의 슈베르트가 마지막을 보냈던 방에는 그가 사용하던 기타가 있다. 피아노를 살 돈이 없었던 그가 기타를 사용해 작곡을 했던 것이다.
600여곡의 가곡을 포함해 1000여곡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31살의 나이로 요절하는데, 그가 베토벤만큼만 이라도 살았더라면 음악사가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다비드 프리드리히(David Friedrich)
고독하지만 신비하고 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린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독일 초창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현재는 독일이지만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에서 태어난 그는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7살이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3살 때는 빙판이 깨져 자신을 구하러 온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으며 17살에는 누이가 죽게 된다.
이런 어두운 가족사는 그를 유한한 인간보다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해 몰입하게 했으며 그 대상을 거대한 자연에서 찾았다.
당대 또 다른 풍경화의 대가인 컨스터블(John Constable)이나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와 비교한다면 그의 작품은 휠씬 진지하고며 엄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그를 두고 동료화가들은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는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뒷모습과 안개 등이다. 뒷모습은 자연 앞에서 무기력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 하고, 안개는 어두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족사를 표현하는 듯 하다.
또한 그림에서 종종 보이는 십자가와 수직의 느낌은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서 그의 종교적 숭고함을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에게 그림이란 신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 드리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난 시점에는 밝은 작품들이 탄생했는데, 그것은 마치 슈베르트가 연인이었던 테레제를 만난 시점에 작곡된 교향곡 3번이 밝고 에너지 넘치며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자연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인간 실존에 관해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자신의 심상에 비춰진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했다.
그는 “마음의 눈과 육체의 눈은 구별되어야 하며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이 풍경화이지만 내면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그의 철학적 사유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이 히틀러의 사랑을 받아 한동안은 독일 나치즘의 이상으로 치부되는 시기가 있었지만 사실 인간실존과 자연에 대한 한 철학적이고 영적인 탐구를 해온 작가가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는 인간내면의 실존적 외로움을 자신의 예술로서 승화시켰다. 두 예술가의 작품은 고전에서 낭만으로 넘어오는 시대적 요구와 함께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내적인 성찰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여러 감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인간의 나약함과 실존적 외로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깨닫게 했으며 숭고함의 가치 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결국 그들의 주제는 그것이 인간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포용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어진 이유는 자본주의의 고도화로인한 가치중심사회가 되어버린 현대에 모든 것에 가치가 매겨지고 비슷한 가치끼리만 교환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단 이것이 상품에만 적용되는 것 이 아니고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에 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좋은 상품이 되어야만 하는 시대, 우리는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를 통해 그들이 추구해온 가치를 다시 한번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 추천음반
슈베르트의 가곡 이외에 기악곡과 교향곡을 프리드리히 그림과 함께 추천해드리고 싶다.
교향곡 3번은 프리드리히가 아내 봄머와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에서 그린 <뤼겐의 백악절벽(1818년작)>,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는 아내를 그린 <창가의 여인(1822년작)>이다.
현악5중주(String Quintet)는 슈베르트가 죽기 2달전에 작곡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듯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의 깨달음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와 함께한 멜로스(Melos) 사중주단의 연주앨범과 프리드리히의 말년 그림인 <인생의 단계(1835년작)>를 함께 감상해보시길 추천한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심포니 는 개인적으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년작)>가 잘 어울린다. 마치 키에르 케고르의 발언처럼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라고 말하는 듯 하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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