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금강송 숲을 지켜라! 소광리대첩 이야기
작성자 정보
- 칼럼 작성
- 작성일
본문
김평기 울진국유림관리소장 |
낙엽을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의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강한 바람으로 대형산불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3월 4일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울진군청 산림힐링과장에게 걸려온 전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북면 두천리에서 산불이 발생했는데 대형산불로 이어질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없이 산불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산불은 능선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고, 발화 3시간만에 삼척과 울진을 잇는 7번 국도를 넘어 직선거리 약 10㎞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본부와 삼척 LNG저장소를 위협하고 있었다.
산불이 강한 바람(초속4~13m, 순간최대풍속 26m/s의 남서풍)을 타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민가를 태우고 국도를 덮쳐 연기로 앞도 안보이는 불길 속을 지나갈 때는 흡사 전쟁터와 같았고, 한편으로는 덜컥 겁도 났다. 부임한지 두달도 안된 초임소장에게 왜 이런 큰 시련을 주시나라는 마음도 잠시,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고 있을 직원들의 안전과 발화지점에서 얼마 안 떨어져 있는 소광리 금강송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숙종때 황장봉산으로 지정할 만큼 보호해야 할 200년생 소나무가 8만 5000본 정도 보존되어 있고 500년 이상된 금강송 보호수와 멸종위기식물, 산양이 분포·서식하고 있는 산림생태·유전적·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보호지역이자 울진국유림관리소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다.
최초 발화지역인 북면 두천리 진화현장은 국가기간시설(원자력·LNG충전소) 최우선 방어에 산불헬기가 집중됨에 따라 진화인력만으로 주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티며 두천~상당~하당리를 오가면서 산불과 게릴라전 벌인지 3일째,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500년 대왕소나무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수시로 방향이 바뀌는 강한 바람과 높은 능선부에 보이지 않는 잔불, 인력진입이 어려운 곳곳의 험준한 지형은 산불진화에 가장 큰 적이자 불안한 요소였다.
직원들과 진화대원들이 하나 둘 지쳐 갈 무렵, 다른 지역 국유림관리소, 지자체·산림조합, 영림단 등 천군만마와 같은 지원군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소광리 금강송 숲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천리에 남아 있는 잔불 정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지휘부와 1차 방어선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됐다.
현장지휘부를 두천리 십이령 주막촌에 두고 방어선을 계곡부 합수지점(소광리와 두천리 경계에서 1.5㎞지점)으로 하여 지원나온 진화인력과 진화차를 투입하여 잔불정리와 방어선 구축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산세가 험하고 돌과 암석이 많아 인력진입이 어려운 능선부와 암석지의 잔불은 소광리 방향으로 바뀌는 동풍을 타고 다시 화세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발화 5일째, 모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풍을 타고 능선을 따라 진행한 산불은 결국 밤사이에 소광리와 두촌리 경계인 십이령과 광산골 능선을 넘고 말았다. 주저앉고 싶었다. 두려워 울고 싶었다. 500년 금강송 군락지마저 잿더미로 변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았다.
현장지휘부를 소광리 생태관리센터로 옮기고 아침부터 지상진화대를 투입하고 공중진화를 시작하였지만, 상황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정오부터는 짙게 쌓인 연무로 인해 헬기지원이 어려워지고. 험준한 산악지형과 돌풍으로 인해 여차하면 화마에 고립될 수 있어 지상진화마저 쉽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2차 방어선 구축이 시급했다. 금강송 집단군락지와 근접거리에 2020~21년에 시설한 산불예방임도를 방어선으로 주요 능선과 계곡입구에 진화인력을 전진 배치하고 아침까지 버텨주길 당부했다. 밤부터 세력이 더 세진 산불은 그 화력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석력지까지 잠식하고 깨진 돌이 아래로 굴러 불씨가 튀면서 예상치 않았던 방어선까지 무너질 위기의 상황은 계속됐다.
다른 구역의 진화인력을 쪼개어 돌려막기식으로 투입하기를 반복하며 약 15㎞의 임도를 정신없이 계속 돌다보니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꺾일 것 같지 않던 화세도 우리의 노고를 알았는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여기저기 진화인력의 안전과 진화상태를 확인하며 서로에게 격려를 하던 중 땀과 그을림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맡은 바 소임과 역할을 다했다는 자긍심이 꽉 차있는 큰 형님뻘 되는 진화대원의 눈빛과 지칠만도 한데 몇날 며칠을 쉬지도 않고 자신의 일터를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냐고 하면서 되려 나보고 힘내라는 영림단원들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어찌 이들 뿐이랴. 극심한 피로감에도 산림공무원의 소명을 다 하기 위해 정신없이 진화작업 중 산불에 휩싸여 위급한 상황에 처했던 직원도, 부인이 큰 수술을 하는 당일 날도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직원도, 식사를 조달하기 위해 입술이 부르트도록 밤낮없이 지원해 주는 직원도, 당장 오고 싶지만 상황 근무로 현장에 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모두가 나에겐 너무 소중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지난 6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서 금강소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사진=산림청) |
3월 9일 발화 6일째, 오늘은 꼭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이날도 소광리 계곡부에 꽉 찬 연무로 인해 오후부터는 헬기진화가 쉽지 않았다. 벌써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어젯밤의 생지옥 같은 악몽이 되풀이 될 것 같았다. 지상 진화인력들이 버틸 수 있을지, 방어선 중 구멍이 어디에서 생길지 걱정이 되었다. 저녁이 가까워 질수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울진소방서장을 찾아가 소방차를 산불예방임도에 배치해 줄 것을 요청드렸다. 협의과정에서 젊은 소방직원이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소방차 10대를 2번에 걸쳐 임도를 순환하면서 물대포로 살포하자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소방차 안전운행을 위해 차량교행이 가능하도록 안내와 임도정비를 요구했다.
저녁 10시. 소방차 10대를 인솔하여 산불예방임도에 진입을 시작하였다. 위험 구간별로 소방차를 배치하고, 임도 절토부 약 60~70m 상단까지 강한 압력으로 물을 살포하였다. 효과가 있었다. 저녁 10시부터 시작한 산림-소방 산불진화 공조작전은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고 임도 가까이 거침없이 침투해 오던 화세가 진정되고 있었다.
3월 10일 발화 7일째, 다행히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어 헬기 공중진화가 아침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다. 오늘은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해병대, 경찰 등 지상진화인력도 증원되어 집결하기 시작하였고 영덕·영주·구미·태백국유림관리소장님과 지방청에서도 과장님들이 현장지휘를 지원해 주시기 위해서 와 계셨다.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다.
급격히 피로감이 밀려왔다. 졸음이 쏟아져 내렸지만 십이령~소광리로 오는 장평임도 방어선이 걱정됐다. 수시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계곡인지라 방어선이 무너지면 500년 대왕소나무가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전날 울진군청 산림힐링과장과 산림조합중앙회 남부사업소장에게 부탁한 굴삭기를 대동하여 장평임도에 소방차 진입이 가능하도록 임도 곡선구간을 넓히고 측구를 메워 노폭을 확장하도록 지시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꿈속에서도 불을 끈다.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깨보니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대충 몸을 추슬러 소광리 현장으로 다시 가보니 지원 나오신 소장님들이 구간별로 지휘를 맡아주시고 계셨다.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라 정말 든든했다.
공중진화대가 투입되고, 구간별로 특수진화대가 잔불과의 사투를 벌이고, 장평임도쪽으로 소방차가 진입하여 계곡을 타고 능선으로 올라오는 주불을 정리하면서 산불도 서서히 그 세력이 약해져 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깜깜한 임도의 곡선구간을 돌 때 마다 기세등등했던 산불의화력은 보이지 않고 너무도 조용했다. 높은 석력지에 붙어 있는 작은 불씨는 보였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소광리 밤하늘의 별이 무척이나 빛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3월 11일 발화 8일째, 소광리 아침 바람이 좋았다. 아침 일찍 시작된 헬기 공중진화를 필두로 특전사·해병대·경찰의 군병력과 영림단, 산불예방진화대, 임도관리단 등 약 2천여명을 구간별로 배치하고 잔불과의 마지막 전투를 시작했다.
반면, 북면 덕구리에서 산불이 능선을 타고 울진과 삼척의 경계인 응봉산을 넘어 덕풍계곡까지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삼척국유림관리소장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주불을 제대로 잡지 못해 삼척까지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응봉산 주변에는 임도가 없어 삼척쪽으로는 진화차나 인력 진입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산불에서 임도가 왜 필요한지, 며칠 전 소광리 산불예방임도가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을 되새기며 그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 주었듯이 우리도 삼척 응봉산으로 특수진화대와 예방진화대를 투입시키고, 생태관리원들에게 소광리쪽으로 비산되는 불씨가 없도록 감시활동과 지속적으로 물을 뿌리도록 하였다. 군데군데 뒷불이 났지만 감시와 마무리를 잘 하면서 큰 고비없이 12일이 지나고 드디어 기다리고 단비가 13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2일동안 내린 비는 반갑고 고마웠다. 아직 두꺼운 낙엽층에 남아서 숨을 쉬고 있는 불씨가 변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헬기와 지상 진화인력으로 뒷불감시체계로 전환하면서 3월 4일 오전 11시 17분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9박 10일(213시간 43분)만에 진화가 완료되었다. 2000년 동해안 산불(고성·울진군, 강릉·동해·삼척시) 191시간(7일 23시간)보다 하루가 더 긴 역대 최장시간동안 약 4만명 이상이 투입된 국가재난이었다. 직원이나 진화대원 중에는 아직도 불을 끄는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보는 이들마다 고생했다고 격려하지만, 소리없이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맡은 바 소임과 책임을 다하신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500년 소광리 금강송 숲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명명한 ‘소광리대첩’에서 나에게 그들은 영웅이었고, 애국자였다. 이 글을 통해 이번 산불진화에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 덕분에 금강송 숲을 지켰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울진국유림관리소 직원분들과 진화대원분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500년 역사를 지킨 승리의 주역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먼 훗날 소광리 금강송 숲을 다시 오셨을 때 내가 이 숲을 지켰노라고 당신들은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