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내 탓 아닌 뇌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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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 다짐을 한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운동을 하겠다고, 책을 많이 읽겠다고, 영어를 배우겠다고, 금연하겠다고. 그리고 첫날은 목표를 향해 열심이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면 귀찮아지고 삼일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간다.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생겼을까?
우리는 왜 결심한 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까? 이 물음에 대부분 사람들은 ‘의지가 약해서’라고 답한다. 물론 자신의 나약한 의지도 전혀 상관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작심삼일’의 배후에는 뇌가 있다.
습관 담당 뇌 영역 활성화 결심 의지 꺾어
매일 피우던 담배, 늘 하던 게임을 하루아침에 끊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몸에 밴 습관 때문이다. 신경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우리 뇌에 ‘습관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이 회로에 걸려들면 습관이 돼 좀처럼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 듀크대 신경생물학부 니콜 카라코스 교수는 실험용 쥐의 레버 실험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했다. 그는 쥐의 거주 공간에 레버를 설치한 후 쥐가 이 레버를 당길 때마다 치즈가 나오게 했다. 그랬더니 뇌의 신경활동 부위인 기저핵에서 특정한 뇌파가 나타났다.
하루는 치즈가 부족했다. 그래서 레버를 누를 때 치즈가 나오지 않았다. 이때 습관을 나타내는 뇌파도 사라졌다. 하지만 레버를 누르는 습관이 생긴 쥐는 더이상 치즈가 없어도 레버를 계속해서 누르는 행동을 보였다. 이후 다시 레버를 누를 때 치즈가 나오게 했더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쥐의 뇌파가 빠르게 회복됐다.
카라코스 교수팀은 레버를 누르는 습관이 생긴 쥐와 일반 쥐의 뇌도 비교했다. 그 결과 기저핵의 활성이 다르게 나타났다. 기저핵에는 행동의 ‘진행’과 ‘그만’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가지 신경회로가 있다. 습관이 생긴 쥐는 이 두 가지 신경회로가 모두 활성화됐고 둘 중 ‘진행’에 해당하는 신경회로가 더 활성화됐다. 결국 일단 습관이 들면 그 습관을 계속 진행하는 뇌의 신경회로가 크게 활성화돼 행동을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는 게 카라코스 교수의 설명이다.
카라코스 교수에 따르면 금연을 결심한 사람 중 5%밖에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뇌의 이런 직접적인 활동이 금연 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며칠 후 담배 피우는 사진만 봐도 또다시 흡연 욕구를 느낀다. 사실상 한번 만들어진 습관회로가 사라지지 않아 조그만 자극에도 뇌의 반응이 쉽게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신경세포에서는 도파민·아드레날린·아세틸콜린·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이들 물질은 신경세포 사이를 돌아다닌다. 신경전달물질이 같은 길을 여러 번 반복해 다니면 일종의 ‘기억 네트워크’가 된다. 자주 하는 생각의 흐름이 머릿속에서 네트워크로 굳어져 ‘습관’이 된다. 기억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번 생긴 나쁜 습관 또한 사라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했던 행동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한다.
우리 뇌는 변화하려는 속성과 회피하려는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변화를 시도하면 뇌에서 회피 반응이 일어난다. 새로운 습관은 더 많은 에너지와 주의력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뇌에 도전과 위험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뇌가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려는 것을 꺼리고 자꾸만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것, 이것이 바로 작심삼일의 원인이다.
뇌 구조 바꾸고 습관 만들려면 ‘작심삼십일’ 필요
뇌 과학자들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원인의 하나는 뇌 기능의 한계 때문으로 나타났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정보가 들어와 새 계획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뇌가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정보 개수는 대략 5~9개로 추산한다. 세계 각국의 전화번호가 지역번호 세 자리와 개인번호 네 자리로 이뤄져 있는 이유다.
그런데 새해 결심을 세우면 평상시에도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뇌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돼야 한다. 뇌는 이를 ‘과부하’로 받아들여 새해 결심은 결국 며칠 못 가서 흐지부지된다. 컴퓨터 메모리가 작으면 속도가 느려지거나 작업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심삼일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의 작용 시간은 보통 사흘 정도. 이들 호르몬의 약발이 다하는 순간 새해 결심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포기의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해 결심을 세우지 말라는 건 아니다. 뇌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과거 경험이나 습관만으로 행동한다면 점차 쇠약해진다. 일상적인 일들은 무의식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심을 실행하기 힘들더라도 의지가 확고하면 뇌 신경회로의 유혹을 견딜 수 있다.
일본의 뇌과학 전문가인 이시우라 쇼이치 박사는 뇌 구조를 바꾸는 일은 30일간의 지속적 반복, 즉 ‘작심삼십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뇌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일정 기간 의식적으로 반복된 행동을 해야 무의식에 입력돼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작심삼십일을 통해 모든 사람의 소망과 목표가 이뤄지길 응원한다.
뇌는 인간의 장기 중 가장 구조가 복잡하다. 뇌파를 인식?분석하는 연구는 습관뿐 아니라 자율주행이나 국방 기술 분야에도 중요하다. 2023년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재 미국 대비 72.5%인 국내 뇌과학 기술을 85% 수준으로 높여 선도국가로 도약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정책과 관심으로 우리의 뇌과학 기술이 한층 더 도약하길 기원한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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