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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공간에서 소통의 장소로 문을 여는 순간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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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옛 공주읍사무소
공주를 너무 몰랐다. 충남 공주시를 방문한 후 서울로 돌아오면서 든 생각이다. 언제부턴가 지방자치단체마다 하나둘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관광과 연계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유행했다. 이는 때마침 불던 레트로 열풍과 맞물리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여기저기에 일명 ‘뉴트로(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 여행지가 생겨났다. 하지만 실제 방문해보면 실망하기 일쑤였다. 내부는 공개하지도 않은 낡은 건물 사이를 걷거나 폐철로 등에서 1970년대 교복을 대여해 사진을 찍는 정도가 전부인 곳이 많았다. 그래서 옛 공주읍사무소를 방문하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근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나 비로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공간에 주목했을 뿐이다. 저마다의 시절을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려니 생각했다.
눈으로 보기 전엔 몰랐다. 공주는 그 어느 곳보다 완벽한 근대문화의 중심지였다. 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가장 자연스럽게 근대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정비된 도시였다. 공주는 1500여 년 전 웅진(熊津)이라 불리는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다. 조선시대에는 300년간 충청감영이 존재했던 지역의 중심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충남도청이 있었던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 삼국시대 이전의 선사문화 유적에서 고려, 조선에 이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유적이 그야말로 널린 곳이었다. 워낙 백제의 수도로 알려진 탓에 무령왕릉, 공산성 등의 백제 유적지만 떠올릴 뿐 다른 시대의 공주는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없다. 여러 시절의 다양한 매력을 가진 공주는 역설적이게도 찬란한 백제 역사의 희생자일지 모른다.







근대 공주의 출발점이자 상징
충남 공주시 반죽동에 위치한 옛 공주읍사무소 건물은 근대 공주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근대 공주를 여행하는 출발점이다.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은 1923년 충남금융조합연합회회관으로 건축됐다. 이후 충남도청이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할 때 금융조합연합회도 따라 옮겨가면서 공주읍사무소로 사용되다 1986년 공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3년여 동안 시청사로 쓰였다. 일반 회사에 매각되기도 했지만 2008년 공주시가 재매입했다. 근대 공주를 상징하는 건물인데다 50여 년간 공주 행정의 중심이었고 시민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기 때문이다. 2009년 국가등록문화재 제443호 ‘구 공주읍사무소’로 등록됐고 재단장 후 2010년 지역문화사업에 따른 디자인 카페, 2014년 공주영상역사관을 거쳐 2021년부터 옛 공주읍사무소로 시민 품에 돌아왔다.
그런데 왜 옛 공주읍사무소가 근대 공주의 상징일까? 그것은 이 건물이 과거 충남금융조합연합회회관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충청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근대 금융기관 역시 공주를 중심으로 발달해 전국에서 조합원이 가장 많은 지방금융조합이 있었다. 금융조합은 오늘날 은행과 같은 기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금융조합연합회는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창구가 아닌 연합회 산하 조합장들의 회의나 실무 책임자들의 연수, 공주 지역의 유지 모임 정도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평범한 공주 시민들은 거의 들어가볼 일이 없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금융조합연합회가 대전으로 옮겨가고 읍사무소로 바뀌고 나서야 공주 시민들이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단절의 공간에서 소통의 장소로 바뀐것이다.
옛 공주읍사무소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건축물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해 근대 건축물로서 정취를 느낄 수 있게 복원됐다. 1층은 옛 공주읍사무소의 연혁과 입지, 건축물의 특징과 건축 의미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와 근대 공주 시가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근대 공주 시가지를 재현해놓은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충남금융조합연합회회관 건물 주위로 경찰서, 도청, 법원, 세무서, 우체국, 학교 등 주요 기관이 밀집해 있었다. 모형 옆으로 일본어로 제작된 1926년의 공주시가도가 보였다. 지금도 도보로 가볼 수 있는 곳들이 제법 보였다.









읍사무소 문이 작은 이유는?
1층에서 꼭 보고 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나무 전봇대다. 공주 유일의 나무 전봇대이자 이제는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근대의 파편이다. 나무 전봇대는 공주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일제강점기에 설치됐지만 내구성을 이유로 1960년대부터 콘크리트와 쇠 전봇대로 교체됐다. 이 전봇대 역시 콘크리트 전봇대로 대체될 예정이었으나 주민의 반대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전봇대 수령은 100년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변함없이 전봇대는 건물 밖 맞은편 골목에 위치하지만 꼭 1층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고풍스러운 건물의 창문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치 근대 공주를 농축해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2층은 읍사무소를 재현한 포토존과 시민 모임 및 세미나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목재로 만든 사무용 탁자와 의자,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유선 전화기가 시간여행을 본격적으로 알려준다. 1980년대 만들어진 국산 타자기와 수기로 작성된 보수지급명세서, 공주시 공무원증도 전시돼 있다. 재현된 공주읍사무소 사무실 칠판에는 ‘대한독립만세’가 크게 쓰여 있었다. 관람객의 글씨로 보이는데 그 공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옛 공주읍사무소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출입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입구의 출입문은 건물 크기에 비해 유난히 작다. 금융 관련 건축물이라 보안 문제로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한번 돈이 들어오면 나가기 어렵게 한다는 뜻이었다는 설이 더 신빙성 있게 회자된다. 이렇게 건물은 문의 크기, 창문의 모양 하나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옛 공주읍사무소가 있는 반죽동을 중심으로 봉황동, 중동, 중학동 일대는 공주의 원도심이다. 이곳에는 2014년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조성된 ‘나태주 골목길’, ‘추억의 하숙촌길’, ‘근대문화골목길’, ‘추억의 중동 147골목길’, ‘박찬호 골목길’ 등 여러 개의 테마 골목길이 있다.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 양쪽으로 골목길이 형성돼 있는데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옛 이야기와 추억이 곳곳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인위적인 복원이 아닌 있던 그대로의 정취를 살린 분위기가 정겹다.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러운 것이 없다. 어떤 골목은 1970년대 드라마 세트장 같고 또 다른 골목은 일제강점기 시대극의 무대 같다. 그렇게 걷다보면 갑자기 조선시대의 우물이 나타난다.





시간 속을 걷는 공주 원도심
근대문화골목길은 영명학교, 구 선교사 가옥, 중동성당, 3·1중앙공원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가득하다. 특히 공주는 3·1만세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다. 사애리시(본명 앨리스 해먼드 샤프) 선교사는 충남 천안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를 만나 수양딸로 삼고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친 뒤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시켰다.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의 발자취는 골목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다. 물론 충남 최초의 우유보급소 등 다양한 명소도 있다.
봉황동의 하숙촌길 담벼락에는 1970년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교육도시 공주는 하숙문화가 발달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게스트하우스와 한옥카페, 갤러리와 공방 등이 속속 채우고 있다.
옛 공주읍사무소 방문은 근처에 있다는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짧게나마 원도심의 정취를 만끽하려고 일부러 옛 충청감영 자리였던 공주사대부고를 지나 나태주 시인의 시와 꽃 그림으로 꾸며진 ‘나태주 골목길’을 거쳐 갔다. 공주풀꽃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 헌병대장 관사였다. 문학관까지 오는 길에만 여러 시대를 거쳤다. 문학관 마당에서는 누군가 잔뜩 쌓인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나태주 시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니 ‘아니다’라는 손짓을 하고서는 낙엽이 가득한 수레를 끌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런데 누가 봐도 나태주 시인이었다.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손짓까지 나태주 시인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주에서는 이렇게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강은진 객원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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