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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폐방화복으로 소방관 돕고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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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레오 이승우 대표
방화복은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장비다. 특수 섬유인 아라미드(Aramid)로 만든 방화복은 섭씨 400~500℃에도 타거나 녹지 않으며 외부 물질에 걸려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불과 유해물질,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소방관의 신체와 목숨을 지키는 필수품이다.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은 내구연한 3년을 채운 뒤 대부분 버려진다. 매년 폐기되는 방화복의 양은 약 70톤. 이렇게 버려지는 폐방화복으로 가방과 지갑, 액세서리 등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2022년에만 약 10톤의 폐방화복을 수거해 제품을 만들었다. 판매 수익금 일부는 소방관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방화복을 새활용하고 소방관을 돕는다는 이 회사의 이름은 ‘119레오(REO)’다. 119 뒤에 붙은 레오는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Rescue Each Other)’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119레오 이승우(30) 대표는 “소방관이 우리를 구하듯 우리도 소방관을 구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119레오가 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폐방화복으로 소방관과 지구를 구하고 있는 이 대표를 서울 동작구 대방동 119레오 매장에서 만났다.

119레오의 시작이 궁금하다.
2016년 대학교 동아리 활동 중 암 투병 소방관들의 사연을 접했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하다 암에 걸렸지만 국가로부터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당면한 소방관이 많았다. 고 김범석 소방관이 대표적이다. 김 소방관은 8년 동안 1021회나 현장에 출동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암으로 2014년 세상을 떠났다. 공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아 치료비와 유족보상금 등을 지원받지 못했다. 유족은 소송을 통해 2019년 어렵게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았다. 이런 소방관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고 그들을 돕고 싶었다. 그러다 소방관을 보호하는 방화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방화복을 가방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시작했다.

방화복으로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제품을 만들려면 방화복에 있는 그을음이나 때를 제거해야 한다. 방화복을 세탁하고 가공하기 위해 분해하는 과정 모두 쉽지 않았다. 제품을 만들려고 공장에 찾아가면 생소한 소재다보니 안 된다, 못한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가방이나 제품 샘플을 만들어 공장을 설득했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도와주고 의견을 주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방화복이라서 좋은 점이 있나?
강도 대비 가볍고 튼튼한 소재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방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방화복으로 가방을 만들면 무겁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짊어지는 장비가 무거워서 옷까지 무거우면 구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폐방화복은 어떻게 수급하나?
업무협약(MOU)을 맺은 인천소방본부, 광주소방안전본부, 서울 10개 소방서 등에서 “폐방화복이 쌓였다”고 연락이 오면 직접 현장에 찾아가 수거한다. 우리가 방화복을 가져오면 폐기 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소각 또는 매립되는 양도 줄어서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수거한 폐방화복은 인천중구지역자활센터·서울광진지역자활센터에서 세탁·임가공을 거친다. 어려운 사람들과 일거리를 나눈다는 뜻도 있다.

어떤 제품을 만드나?
폐방화복을 새활용(업사이클링)한 백팩과 슬링백 등의 가방과 카드지갑, 팔찌 등 액세서리를 만든다. 방화복 외에도 기동복을 새활용한 제품도 있다. 소방호스로 만든 지갑, 의자 등 리빙 제품도 있다.

소비자의 반응은?
처음에는 버려지는 방화복으로 만들었다고 더러운 제품을 준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현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제품을 갖고 싶어한다. 의미 있는 제품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가 잘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디자인만 보고 구매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디자인에도 신경 쓴다. 20대 여성부터 40대 남성까지 구매층도 다양하다.

판매 수익금 일부는 소방관을 위해 기부한다고.
방화복이라는 공공재를 다루는 만큼 어떻게 하면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매년 영업 이익의 50%를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은 암 투병 소방관과 화재 피해 아동 지원 등에 쓰였다.

소방관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매년 5월 4일(국제소방관의 날)과 11월 9일(소방의 날) 전시 팝업 행사를 열고 있다. 소방관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알릴 수 있는 사진전과 체험전, 소방관 초청 토크쇼 등을 진행한다. 이번 소방의 날에는 ‘힘’을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우리를 지켜주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소방관의 처우나 환경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소방관들이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에 나선 건 2003년부터다. 그전까지는 방수복을 입고 화재를 진압했다는 게 믿어지나?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소방관의 처우와 환경은 나아지고 있다. 2019년 고 김범석 소방관이 공무상 상해 판정을 받았다. 2022년 5월에는 ‘위험직 공무원 공상추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무원이 업무 수행 중 재해를 겪을 경우 일단 공상으로 인정하고 인과관계 입증 책임은 국가가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방직이 국가직으로 전환됐고 인력 충원도 이뤄졌다.

11월 9일 열린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용기 있는 소방관을 가진 나라가 안전한 나라”라며 “소방관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우리 소방 조직이 세계 최고의 재난현장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인공지능(AI) 활용 긴급 출동 운선순위 자동분석 시스템 구축 ▲이동식 소화수조 확대 ▲소방 로봇 보급 등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또 ▲보호장구 확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국립 소방병원 및 심신 수련원 건립 ▲공안직 수준의 기본급 인상 및 구조 구급 활동비 증액 ▲지역 소방지휘관 직급의 경찰관 수준 상향을 통한 현장 지휘권 확립 등 소방관들의 안전 강화와 복지 확충을 약속하기도 했다.

소방관에게 어떤 게 더 필요할까?
여전히 구급대원이나 소방대원을 폭행하는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켜주는 소방관에 대한 감사와 인정이 부족한 것 같다. 소방관의 처우나 환경만큼 시민의식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119레오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처음 암 투병 소방관을 돕겠다고 했을 때 앞이 막막했다. 그러나 꾸준히 하다 보니 세상이 조금씩 변하더라.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계속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커졌다.

앞으로 목표는?
재생으로 지구를 구하는 문제를 고민한다. 현재 방화복에서 아라미드 단섬유를 추출해 실로 만드는 과정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새활용이라는 한계를 넘어 순환경제로 한 발 더 다가설 계획이다. 실을 짜서 원단을 만들면 가방이나 지갑, 액세서리 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아라미드 소재의 특징을 살려 텐트나 아웃도어 제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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