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드러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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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쇼핑몰의 문화센터에서 첫 강의를 할 때였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강의였는데 일부러 자주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도화선이 돼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몇몇 수강생은 질문 자체에 부담을 느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특히 가장 뒷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던 A씨가 그랬다. “자꾸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요!” A씨는 나를 향해 큰소리로 짜증 내며 말했다. 그의 도발적인 행동에 강의실 분위기는 금세 차가워졌다.
무례(無禮)는 크게 선천적인 성품과 선택적인 성질로 나뉜다. 선천성 무례는 대부분 상대를 괴롭히거나 무시하기 위한 목적보다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감정을 내뱉어 버린다.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고 얼마나 힘들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누구인지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무례함은 어린아이의 행동과 닮았다. 좋게 해석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만지는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면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무릎을 낮춘다. 무릎을 낮춘다는 건 눈높이를 맞춘다는 뜻이다. 그리고 최대한 상대의 불손함을 들어주고 받아준다. 그날 나는 수십 명의 수강생 앞에서 소리 질렀던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르실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잘 모르니까 함께 공부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은 어렵지만 차분히 배우다 보면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조금씩 알게 될 거예요.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고정하시고 끝까지 강의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의 정중한 태도에 A씨는 짜증을 누그러뜨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퉁명스럽게 이어갔다. 선천성 무뢰배들은 자신의 충동적인 감정이 받아들여지면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상대를 공격하지 않을 때가 많다.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는 동물의 본성처럼 발톱을 집어넣고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강의 재미있었어요.” A씨는 강의가 끝난 후 나에게 찾아와 음료수를 던지듯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을 나섰다. 사과조차 불손하게 하는 A씨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 모습에 화가 나거나 모욕감이 들지는 않았다. 불량하고 거친 성품의 소유자도 친해지면 도움이 될 때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내에서 다툼이 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대항할 용기가 없을 때 선천적 무뢰한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상대가 누구든 눈을 부릅뜨며 여과 없이 속말을 쏟아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내 편이 돼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타고난 천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노력한다면 잠시 잠깐 원하는 모습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의지가 약해지면 다시 원래의 성품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타고난 성향을 비난만 하는 것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악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원래 그렇게 태어난 성질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지내야 한다. 고슴도치도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면 날카로운 가시를 눕혀 다치지 않게 안아준다. 자신의 부족한 성품을 받아주는 상대에게 무뢰한 역시 뾰족한 마음의 가시를 눕히며 안아줄 준비를 한다. 비록 따끔하고 거칠어 편하지 않은 품일지라도 안겨보면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uling) 대표이자 ‘마음 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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