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약은 시간과의 싸움 마약 적발 순간이 치료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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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치료전문기관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다. 끓는 기름을 들이붓는 것처럼 뜨거웠다가 온몸을 톱으로 켜는 것처럼 시리다. 잦은 구토로 어금니가 삭았고 앞니가 빠졌다.”
‘지옥의 마약’ 펜타닐에 중독됐던 래퍼 윤병호(24) 씨의 증언이다. 이는 비단 윤 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국내 청소년 10명 중 1명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실시한 ‘청소년 매체 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 결과 10.4%가 펜타닐 패치를 사용해봤다고 답했다. 2021년 경남 창원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펜타닐을 흡입한 청소년 40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청소년 사이에 급속도로 퍼진 펜타닐, 이들은 어떻게 마약을 구했을까? 조사에 응한 응답자의 94.9%는 ‘병원에서 구했다’고 답했다. 펜타닐은 ‘지옥의 마약’이기 이전에 진통제였다. 말기암환자 등 극심한 통증을 겪는 이들을 위해 1960년 벨기에 제약회사 얀센이 개발했다. 10대들은 누리소통망(SNS)에서 ‘펜타닐 패치를 처방해주는 병원’ 리스트를 공유했다. 펜타닐은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달하는 효과를 낸다. 만약 질병이나 통증이 없는 사람이 펜타닐을 지속적으로 복용한다면? 100배의 효과는 1000배의 부작용으로 돌아온다.
펜타닐 등 합성마약 중독은 현재 미국 18~45세 청장년층의 사망원인 1위다. 교통사고나 자살,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2년에만 미국에서 10만 9680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실제로 펜타닐의 치사량은 2㎎, 삶은 계란에 소금을 살짝 찍었을 때의 양 정도다. 한국에서도 마약에 중독되거나 사망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9월까지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2만 230명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사범인 1만 8395명을 넘어섰다. 마약사범 증가세는 청소년에서 두드러진다. 10대 마약사범은 659명으로 2022년(294명)의 2배 이상 늘었다. 2013년 43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15배를 기록했다.
급증하는 마약중독자들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하려면 치료보호기관이 중요하다. 한국의 마약중독치료 최전방에 인천참사랑병원이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마약치료 전문기관은 24곳이지만 입원치료가 가능한 곳은 2곳뿐이다. 2022년 병원치료를 받은 중독자는 421명, 그중 276명을 인천참사랑병원이 담당했다. 전체 마약치료의 65.6%를 한 병원에서 담당한 셈이다. 천영훈 원장을 포함해 단 두 명의 의사가 간호 인력과 2교대로 돌아가며 마약환자를 돌봤다. 의료진의 노력을 갈아넣는 현장이지만 전체 약물 중독자로 보면 치료기회를 얻은 중독자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2008년부터 마약치료에 뛰어들었다. 최근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
마약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걸 체감한다. 7~8년 전만 해도 마약중독자들은 40~50대 남성이 많았다. 지금은 (중독자들이) 점점 더 어려지고 많아지며 심각해지고 있다. 입원환자 중에는 14세도 있다.
10대에 마약을 접하면 어떻게 되나?
필로폰을 한 번 했다는 건 220볼트 콘센트에 꽂아야 하는 전자제품을 100만 볼트에 꽂은 셈이다. 뇌가 거의 녹아내린다고 보면 된다. 우리 병원에서 10대 마약 환자들의 인지기능과 사고능력을 분석한 결과 지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저하되는 양상을 보였다. 마약 환자들은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는데 전두엽이 손상되면 행동조절능력도 떨어진다.
왜 중독자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많아졌을까?
웹툰이나 글로벌동영상서비스(OTT)에서 마약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너무 많아졌다. ‘마약은 손대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의식 자체가 희미해진다.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마약 적발 소식이 뉴스를 장악하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으로는 한국 10대들의 스트레스가 높다는 게 우려스럽다. 마약은 시작과 동시에 중독이다. 예외는 없다.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릴수록 끊기 어렵다. 전두엽이 파괴되면 그만큼 충동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약물에 중독되는 원리가 궁금하다.
우리 신경세포는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을 준비하고 적절히 방출한다. 그런데 마약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100배 이상의 강도로 신경세포를 자극해 버린다. 필로폰의 경우 한 번의 투약으로 한 사람이 평생 느낄 도파민을 느낀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엔도르핀, 도파민이 쏟아지면 우리의 뇌는 그 양을 기록해 적응한다. 거대한 자극을 경험하고 난 뇌는 그다음부터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자극에 반응하지 못한다. 일상 수준의 엔도르핀, 도파민은 한동안 뇌가 못 느낀다. 마약을 한 번이라도 했던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약에 중독되면 치료는 가능한가?
먼저 마약중독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끊을 수 없는 질병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는 뇌의 문제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뇌가 원한다. 마약중독에 빠지거나 재발한 이들을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마약중독은 치료와 재활 없이는 벗어나기 어렵다.
처벌이 강화되면 마약을 끊는 데 도움이 될까?
처벌 강화도 한 축이 돼야 한다는 면에 동의한다. 특히 10대 마약사범의 경우 촉법소년(형사처분 대신 소년법 적용을 받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개념을 알아서 ‘걸려도 된다’는 안이한 인식이 있다. 하지만 단속과 구속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구치소가 마약범들이 모여 새로운 마약 정보와 법망을 피하는 법을 나누는 곳이 됐다. 적발과 동시에 치료가 시작돼야 한다. 마약 투약으로 적발돼 구금돼 있는 시간이 치료의 골든타임이다.
왜 그런가?
사회에서는 너무 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다. 휴대폰 몇 번 누르면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독자들을 힘들게 한다. 내가 본 24세 청년은 정신병원에 여섯 번 입원했다. 환청이나 환각이 쉼 없이 이들을 괴롭힌다. 구치소에 구금돼 외부와 격리돼 있을 때 해독과 단약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단약을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
중독자들은 마약의 각성효과 때문에 2~3일 동안 잠을 자지 않다가 기절하듯 잠을 잔다. 이후 극심한 통증, 탈모, 가려움, 호흡곤란 등 금단현상이 시작된다. 처음엔 즐거움을 위해 약을 하지만 나중에는 고통을 잊기 위해 약을 한다. 단약 1주 차가 되면 환각이 사라지고 악몽을 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독과 회복 프로그램을 병행해 1년 동안 단약에 성공하면 재발률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진다. 1년이 지나면 뇌가 회복되고 갈망의 강도가 줄어든다. 2년 차, 3년 차엔 더욱 그렇다.
국내 치료기관이 너무 적다. 마약중독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기관은 인천참사랑병원과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두 군데다.
중독치료의 경험과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렵다. 책으로 공부해 뛰어들기도 어려운 분야다. 흔히 마약중독치료가 조현병 치료보다 10배, 알코올중독 치료보다 100배 어렵다고들 한다. 마약중독환자는 환각과 환청, 피해망상 등으로 난폭하기도 하고 금단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의료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이들이 다시 약에 손을 대는지를 24시간 지켜봐야 한다. 마약중독환자가 급증하면서 우리 병원 의료진도 번아웃(탈진 증후군)이 와 3분의 1이 그만뒀다. 현재 두 명의 의사와 간호진이 2교대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15년 동안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
치료가 어려운 만큼 치료에 성공했을 때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약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신경중추가 망가지니 실제로 사망률도 높다. 지난주에만 우리 병원에서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삶이 재건될 때 기쁨은 기적 같다. 실제로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들은 회복된 후 이전의 자신보다 인격적으로 더 성장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마약중독에서 회복한 사람이 다른 마약중독자를 돕는 회복상담사로 일하기도 한다.(인천참사랑병원의 최진묵 마약중독상담실장은 23년 동안 마약중독에 빠졌다가 약물을 단절하고 지금은 회복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마약중독 양상이나 치료의 특성이 있나?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선진화돼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중독성 약물을 구한다. 통증이 있다고 호소하면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다이어트약이나 우울증약 등이 일반화되면서 항정신성약물도 보편화됐다. 이건 다시 말해 컨트롤타워를 잘 만들고 시스템을 잘 짠다면 약물의 오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공동체 의식이 있다. 중독에 빠졌다가 치료회복가로 나선 이들을 보면 중독에 빠진 이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중독성 약물을 중복처방받지 않도록 의료시스템으로 막고 중독에 빠졌다가 회복된 이들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확실한 효과가 나올 것이다. 마약에 중독됐던 이들이 사회로 복귀해 제2의 인생을 살 기회도 열릴 것이다.
10대가 직접 공급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또래집단 사이에서 예전에 술·담배를 권했던 것처럼 이제 약을 권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한 번만 해봐라’며 끌어들인다. 공급책도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싸게 주거나 서비스를 많이 준다.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1g에 20만 원이라면 12만 원에 주고 중독되면 40만~50만 원에 판다. 중독자가 공급책이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중독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 번째 방법은 약물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중독자들은 뉴스만 봐도 괴롭다. 주사기나 하얀 가루만 봐도 생각난다. 휴대폰도 끊고 친구도 끊고 약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창구를 차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회복자 상담가와 전문가가 늘어나야 한다. 마약치료에서 의사는 메인이 아니다. 회복자 상담가들이 현장의 중심이 돼야 한다. 해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 단약은 시간싸움이다. 오래 걸려도 반드시 회복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마약은 특히 재범률이 높다.
재발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하는 것은 고통과 절망 때문이다. 쾌락 때문이 아니라 방법을 못 찾아서 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타자화하면 재발률은 더 높아진다. 이들이 살아가는 생활 전반에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도록 재활센터나 치료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 처절한 반성과 후회만큼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처음 1년은 길이 안 보이겠지만 1년이 지나면 뇌가 회복되면서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치료의 효과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환자들을 만나면 방법을 혼자 찾지 말고 같이 찾아보자고 말한다. 자전거를 배우려고 해도 부지기수로 넘어진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산꼭대기에서부터 곡예하듯이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스키어들은 나무에 집중하지 않고 나무 사이에 난 길에만 집중한다. 중독자들 앞에 얼마나 많은 길을 만들어주느냐가 중요하다. 다양한 길이 있어야 하고 길 사이를 넓혀주는 게 중요하다. 근절만큼이나 치료와 회복이 중요한 시기다.
2023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하수도 처리장의 생활하수를 분석한 결과 전국 34곳의 처리장에서 모두 마약성분이 검출됐다. 어디도 마약에서 예외인 곳은 없었다. 지난 50년간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한 예산은 1조 달러다. 이후 처벌과 치료를 병행하는 약물법원이 4000여 곳 생겼다. 1년 6개월에 거친 감호기간에 마약을 끊으면 형을 감경해주고 범죄기록을 지워줬다. 약물법원 수료자는 재범률이 3배 낮았다. 한국에서 현재 마약치료를 전담하는 병원은 2군데, 마약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는 전국적으로 4곳이다. “전세계 젊은이들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쓰러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처벌과 단속만큼 치료와 회복을 위한 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는 천 원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유슬기 기자
박스기사
정부, 마약류 치료보호기관 적극 지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월 20일 인천참사랑병원을 방문해 마약류 중독치료 의료진을 격려하고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조 장관은 “대다수 병원과 의료진이 마약류 중독치료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에 있는 인천참사랑병원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면서 “정부의 치료보호 정책에 적극 참여한 참사랑병원이 경영난 등의 사유로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치료보호기관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5월 26일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법무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마약류 중독의 이해, 마약은 질병이다’라는 주제의 강의에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을 초청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는 마약을 예방하는 범죄예방정책국, 마약을 단속하는 검찰국, 마약으로 수감되는 사람들을 교정·교화하는 교정본부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법무부가 보유한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마약) 예방부터 치료, 재활까지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스기사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막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0월 9일 경찰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기관 합동점검에 나섰다.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수는 1946만 명으로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마취제와 최면진정제, 항불안제 순으로 처방량이 많았다. 점검 대상은 의료기관 22곳으로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 빅데이터를 분석해 ▲청소년 등 젊은층의 수면마취제 의료 쇼핑이 의심되는 기관 ▲의사가 대진·휴진 등으로 처방할 수 없는 기간에 마약류를 처방한 기관 ▲다른 사람 명의로 대리 처방이 의심되는 기관을 선정했다. 식약처는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 ‘마약류 오남용 타당성 심의위원회’에서 의학적 타당성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행정처분·수사 의뢰 등 조치할 계획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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