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 넘어 큐어 인 코리아로 (Cure in Korea)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피부과 병원 대기실. 미국, 일본, 대만에서 온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립니다. 타국의 병원에서라면 느낄 법한 불안이나 불편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국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상주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의 의료기술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료를 대기하면서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전통시장·올리브영·남산타워 등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17만 467명에 달합니다. 이는 2023년(61만 명)보다 93% 늘어난 것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사업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16년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가 누적 505만 명이란 통계에 이르면 지난해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됩니다.
이쯤 되면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경험에 한 가지를 덧붙여도 될 듯합니다. 바로 ‘한국에서 건강해지고 예뻐지는 경험’입니다. K-팝·K-푸드·K-뷰티의 명성을 이어갈 의료 한류, K-메디컬이 뜨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K-메디컬의 진화
K-메디컬의 저변은 더 넓어지고 보다 깊어졌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202개국의 외국인 환자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환자의 국적을 살펴보면 일본과 중국의 비중이 높은 편(60%)이지만 타 지역 환자 수도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급성장했습니다. 특히 2023년 1만 2828명이 방문했던 대만은 이듬해 8만 3456명이 한국을 찾으며 550%의 증가율을 보여줬습니다.
피부과·성형외과 외에도 한방통합·내과통합·치과·안과·검진센터 등 모든 진료과에서 외국인 환자 수가 늘었습니다. 미용·성형을 넘어 한국 의료기술 전반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입니다. 지역별로도 고른 성장이 이어졌습니다. 제주도는 유치 환자 수가 전년 대비 221% 늘어나 서울(111%), 부산(134%)을 뛰어넘는 증가세를 보여줬습니다.
정부 역시 이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외국인 환자 유치업 인허가 보증보험료 인하, 비자제도 개선, 미용 및 성형 부가세 환급제도 연장, 외국인 환자 사전·사후관리 간소화 등 제도 개선을 이어왔습니다.
K-메디컬의 무대는 이제 전 세계입니다. 검증된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의료기관이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6월 의료해외진출법 시행 이후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신고 건수는 해마나 늘어 2024년 15개국 45건의 성과를 냈습니다. 누적으로 따지면 총 34개국 249건에 달합니다.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료업계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가 나서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보건산업 분야의 협력을 논의하고 바레인에서는 한국 의사의 의료 활동 승인을 획득하는 등 정책적 조력을 아끼지 않은 덕입니다.
민간기업의 노력도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래컴퍼니는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복강경 수술 로봇 ‘레보아이’로 남미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몽골 시장에 이어 남미 국가 최초로 파라과이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 4월에는 현지 종합병원에서 첫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기술력을 입증했습니다.
의료관광, K에 신뢰를 더하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인 환자와 동반객이 진료뿐 아니라 쇼핑·숙박·여행 등을 통해 국내에서 소비한 금액은 7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 의료관광 산업이 이제 진료·치료·처방 중심의 경험을 넘어 여행과 문화 체험을 종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한 겁니다. 외국인 환자 수에 비례해 의료관광 지출액 또한 급증하며 그 온기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 한 명의 평균 지출액은 일반 관광객보다 약 1.8배 높습니다.
의료관광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확인한 정부는 2023년부터 건강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관광과 의료관광 클러스터 지원사업을 통합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치유라는 시너지 효과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치유·의료관광 거점을 조성한다는 포석입니다. 공모에 선정된 대구·경북, 부산, 인천, 강원, 전북, 충북 6개 시·도는 지역별로 특화된 의료 연계 관광 상품을 통해 의료관광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진료·치료 기간 ‘머물러야 하는 기간’을 ‘더 머물고 싶은 시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통한 것입니다.
의료관광 파급효과는 단순히 경제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영역이라도 한국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 자산의 축적으로 이어집니다. 한국 의료는, 그리고 한국은 ‘신속하고 정확하고 친절하다’라는 믿음이 자리 잡습니다. K-메디컬, 메디컬 코리아라는 브랜드 파워가 곧 국가 이미지 제고로 직결되는 셈입니다.
K-메디컬, 세계를 치유하다
글로벌 의료관광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호라이즌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95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였던 글로벌 의료관광 시장은 연평균 23.7% 성장해 2032년에는 794억 달러(약 11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의 의료관광 산업은 정부 목표치(2027년 70만 명 유치)를 초과·조기 달성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높은 의료 수준과 접근성, 한류 콘텐츠 확산으로 인한 긍정적 이미지, 기존 방문자들의 좋은 경험과 신뢰가 재방문·지인 추천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이 모든 조건이 K-메디컬의 세계화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의료관광객 100만 명 시대라는 전환점에 선 한국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의료관광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기관은 양적 확대를 넘어 서비스 품질 강화를 통해 외국인 환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정부는 비자 및 체류 제도 개선, 교통·관광 인프라 확충, 지역별 의료관광 클러스터 활성화 등 정책적 조력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기술력 위에 ‘큐어 인 코리아(Cure in Korea)’의 신뢰를 더하고 있습니다. 세계인이 한국에서 치유 받는 경험을 통해 K-메디컬은 산업을 넘어 한국의 브랜드가 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홍성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간지 기자.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으로 불리며 책 ‘그거 사전’을 썼다.
[자료제공 :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