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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땅 평화의 집 기억 위에 희망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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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경기 화성시의 서쪽 끝자락에 이르면 바다와 들, 갯벌이 맞닿은 평화로운 마을 매향리(梅香里)에 닿는다. 이름 그대로라면 매화 향기가 바람에 흩날려야 할 마을이지만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이곳에는 매캐한 포연의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1951년 여름, 6·25전쟁 중이던 어느 날 미국 공군기가 평범한 어촌 마을 매향리의 하늘 위로 날아들었다. 공군기가 마을 앞바다의 작은 섬 ‘농섬’을 폭격한 그날 이후 이곳은 2005년까지 미 공군의 폭격 연습장 ‘쿠니 사격장(Kooni Range)’으로 사용됐다. 매향리의 옛 이름 ‘고온리(古溫里)’의 영어 표기 ‘Kooni’를 미군들이 ‘쿠니’라고 발음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로부터 54년 동안 매향리 주민들은 보드라운 꽃향기 대신 전투기의 굉음과 포탄의 폭음 속에서 살아야 했다. 오발탄과 불발탄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1967년에는 임신 8개월의 여성이 조개를 채취하다 오폭으로 숨지는 비극도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분단의 상흔은 여전히 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다. 매향리는 그렇게 군사와 민간, 지배와 피폭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장소가 됐다.
그 상흔의 땅 위에 올봄 ‘매향리평화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화성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서울 강남 교보빌딩 등을 설계한 스위스의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고 한만원 HnSa건축사사무소 대표가 파트너로 협업한 작품이다.
보타는 이 기념관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치유와 화해의 무대가 되기를 바랐다. “건축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며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장치”라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건축을 단순히 공간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의 기억을 새기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언어로 여겼다. 이곳은 단순한 기념 시설을 넘어 ‘기억과 회복’의 과정을 공간으로 엮어낸 하나의 서사다.
기념관은 폐허를 복원하기보다 상처를 직시하고 그 너머의 시간을 향한다. 과거를 애도하면서도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기억’은 현재의 경험으로, ‘상처’는 사유의 장치로 전환된다.





회랑·전망대·광장… 치유의 서사를 짓다
옛 철조망의 일부를 남긴 입구를 지나면 기념관의 전체 구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콘크리트로 된 용수철 형태의 전망대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원형 고리가 반복되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한때 폭격이 시작되던 하늘을 평화의 하늘로 되돌리고자 하는 의지가 응축된 형상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매향리의 평화로운 들판과 서해의 바다, 그리고 저 멀리 농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전망대는 추모의 상징인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풍경을 마주하게 하는 장소다. 콘크리트의 묵직한 질감 속으로 스며드는 빛은 공간을 부드럽게 감싼다. 기억의 상처와 치유의 빛이 공존하며 그 안에서 평화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 옆으로 이어지는 회랑은 벽돌로 된 삼각형 모듈이 반복되는 구조로 기둥 사이를 통과하는 빛과 그림자가 리듬을 만든다. 그 리듬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공간 속에 파문을 그린다. 방문객은 이 회랑을 걸으며 폭격의 시간에서 평화의 시간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다. 걷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순례이자 치유의 과정이다. 발밑의 그림자는 과거를 밟고 있지만 시선은 전망대의 빛을 향한다. 건축은 더 이상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는 경험이 된다.
회랑과 전망대 앞에는 녹지로 조성된 평화공원이 펼쳐진다.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예술행사나 공연을 열 수 있는 열린 광장이다. 전쟁의 상처를 봉인하지 않고 공론의 장으로 되돌리는 공간이다. 탑의 수직성, 회랑의 반복성, 광장의 개방성이 어우러지며 비로소 치유의 서사가 완성된다.



장소의 재생, 건축의 전환
기념관은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위병소, 미군 장교 숙소, 사격 통제 시설 등 과거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전시실과 아틀리에, 세미나 공간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고 그 구조를 다시 쓰는 방식은 일종의 ‘기억의 재활용’이다.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간이 자라난다.
산책로에는 주민들이 이 지역에서 수거한 포탄으로 만든 조형물이 놓여 있다. 폭력의 상징이 예술의 매개체로 바뀌었다. 이 길을 걷는 일은 곧 기억의 지층을 밟는 행위다. 폭격의 잔해가 평화의 오브제로 변모하는 과정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옛 사격 통제실을 개조한 전망대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갯벌과 농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지상과 해상, 공중폭격 훈련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새삼 ‘평화’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건축으로 쓰는 평화
매향리평화기념관은 한국사회의 아픈 기억을 넘어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품는다. 전쟁과 갈등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며 건축은 그 보편성을 담아내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보타는 “이곳에서 태어난 평화의 메시지가 여전히 갈등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 곳곳에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매향리평화기념관은 지역의 기념물을 넘어선다. ‘평화를 말하는 건축’으로 인간이 기억과 상처를 어떻게 공간 속에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매향리를 되찾기 위한 지역 주민의 투쟁 역사가 기록돼 있는 기념관 내부 상설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이런 문장과 마주쳤다. ‘우리는 이 땅을 되찾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 이 비장한 문장은 매향리평화기념관이 품은 서사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들의 잃어버린 시간이 건축 속에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콘크리트와 벽돌, 빛과 바람을 타고 흐르는 평화의 염원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닿는다. 포연의 시대는 저물고 다시 매화 향기가 날릴 시간이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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