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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양곡창고에서 수상한 냄새가 한적한 농촌 마을 연 3만 명이 몰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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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청년경제연구소 사업단장 박시윤 카페 샘샘 대표
KTX 정읍역에서 차로 약 15분. 들녘을 지나 전북 정읍시 정우면 초강리 마을로 들어서면 오래돼 보이는 330.5㎡의 대형 양곡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곡식 자루와 소금 더미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문을 열면 진한 커피향이 흘러나온다. 비영리단체 정읍청년경제연구소와 샘골농협(지역 농협)이 손잡고 2024년 4월 새롭게 문을 연 디저트 카페 ‘샘샘(SAME2)’이다. 농협 소유의 양곡창고를 정읍청년경제연구소가 임대해 운영하는 구조다.
샘샘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정읍 소재 65개 밀 농가와 계약을 맺어 이곳 밀과 쌀로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시음회부터 어르신 음악회, 주민들과 함께하는 할로윈 행사 등을 열며 ‘마을 문화공간’으로서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7명의 정읍 청년이 이곳에서 일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농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상생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발간한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사례집’에 우수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농식품부는 샘샘을 ▲청년과 지역 농협의 협력으로 지속가능한 지역 활성화 모델 구축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해 자립 가능한 경제 모델 형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로컬 브랜드 구축과 일자리 창출 사례로 평가했다.
처음 낡은 창고를 카페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알려졌을 때 ‘과연 되겠느냐’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나니 분위기는 달라졌다. 주말마다 전주, 익산, 군산 등 인근 도시에서 손님이 몰려들었고 문을 닫으려던 인근 주유소와 슈퍼마켓의 매출까지 늘었다. 주민들도 “마을이 분주해졌다”며 활기찬 변화를 반겼다. 2025년 3월 기준 누적 방문객은 3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60% 이상이 외지인이다.
샘샘을 이끌고 있는 박시윤 대표(정읍청년경제연구소 사업단장)를 만났다. 정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댄스스포츠를 전공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가죽공방과 무인 와인숍 등 창업에 나섰다. 현재는 샘샘을 계기로 유휴공간을 지역 명소로 탈바꿈시키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왜 한적한 정우면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빈 창고가 여러 채 모여 있는 곳은 흔치 않거든요. 게다가 접근성도 좋습니다. 정읍 주민들에게는 시내에서 20분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주나 익산, 군산에서 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30분이면 가깝다”고 말씀하세요. 실제로 주말이면 인근 도시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단순히 카페 하나를 열자는 게 아니라 타지 사람들까지 유입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카페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 샘샘을 일종의 안테나숍으로 삼아 앞으로 다양한 확장을 시도해보자는 구상도 있었습니다.

‘논두렁 시음회’나 ‘논두렁 할로윈 축제’ 같은 문화 행사를 이어온 이유도 그래서인가요?
샘샘을 카페로만 두고 싶지 않았어요. 지역을 알리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논두렁 시음회’에서 ‘논’은 시골이 아니라 ‘논하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희가 개발한 쌀 아이스크림이나 정읍 한우를 활용한 베이크 제품을 주민들이 맛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열거나 아이들과 청년들이 함께 즐기는 할로윈 이벤트도 진행했어요. 세대와 지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샘샘이 마을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샘샘이 들어서고 난 뒤 마을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저희가 정읍 출신인 걸 모르고 주민들이 “외지 청년들이 투자만 했다가 금방 떠날 거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의 진심, 마을과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고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아직 주민 개개인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더라도 외지 손님이 몰리면서 마을이 분주해진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폐업을 고민하던 주유소가 활기를 되찾고 팔려고 내놨던 건물을 수리해 임대하려는 움직임도 생겼습니다. 어르신들이 “마을이 살아난 것 같다”고 말씀해주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외관은 낡은 양곡창고 모습을 그대로 뒀는데요.
이곳이 지닌 흔적과 이야기를 지키고 싶었어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을 주민에게는 늘 보아온 창고의 모습이 있어야 정체성이 이어지고 외지 손님에게는 ‘여기가 원래 양곡창고였구나’하는 스토리가 전해질 수 있잖아요. 요즘 유행하는 외장재로 새롭게 덮어버리면 마을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동네와 어울리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카페 뒤편에 놓인 철도 길이 눈에 띕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지금은 폐역이 됐지만 예전에는 이곳에 ‘초강역’이 있어서 지역 농산물이 밖으로 뻗어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게 아쉬워 카페에 그 서사를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기찻길을 사다 깔았습니다. 요즘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핫플레이스를 찾는 사람도 많잖아요. 기차역이 포토존 역할과 샘샘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콘셉트라고 생각합니다.

장소성을 감안하면 메뉴 가격에 대한 고민도 많았겠습니다.
최대한 비싸게 받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어요. 아메리카노를 35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서비스 개념으로 책정한 겁니다. 그런데도 “저쪽에서는 1500원인데 왜 이렇게 비싸느냐”라고 말하는 손님도 있고 반대로 “이 정도 규모의 카페에서 3500원이면 저렴하다”는 손님도 있습니다. 가격보다 퀄리티에 만족해서 단골이 된 고객도 많아요.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고 하루에 두세 번씩 들르기도 합니다.

이 지역 농산물을 적극 활용한 메뉴들이 많다고요.
정우막걸리로 만든 ‘초강역술러시’는 저희가 직접 양조장을 찾아가 개발한 메뉴예요. 빵에 들어가는 밀은 샘골농협을 통해 지역 농가에서 공급받고 있고요. 신제품을 낼 때는 주민 시식회를 열어 피드백을 적극 반영합니다. 우리 밀은 잘 부풀어오르지 않아 빵 크기가 작은 편이에요. 어르신들이 “너무 작다”는 말씀을 많이 해서 크기를 잡아내는 데만 6개월 가까이 테스트했습니다. 지금도 요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밀 빵은 밀도가 높아 찰지고 풍미가 깊다는 게 장점이에요.

주민들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초강력 커피’를 많이 찾으세요. ‘초강역’과 ‘초강력’을 합친 이름인데요. 익숙한 맥심 원두에 샘샘만의 레시피로 곡물을 섞어 만든 음료예요. 곡물 크림을 활용한 ‘누룽지라떼’, ‘서리태라떼’, ‘땅콩라떼’ 같은 메뉴도 반응이 좋아요. 지역 곡물을 활용하다 보니 어르신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고 하세요.

샘샘을 거쳐간 청년 직원들이 벌써 7명이라고요.
능력 있는 청년은 많지만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샘샘에서는 단순히 카페 업무를 맡기는 게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려 합니다. 실제로 함께 일했던 직원 중 한 명은 지금 정읍 시내에서 카페 창업을 준비 중이에요. 샘샘 로스터리 기계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만들어낸 오랜 양곡창고의 변신은 이제 시작이다. 박 대표의 도전은 계속 확장 중이다. 7월 말 카페 뒤편의 또 다른 폐창고를 복합문화공간(165.2㎡)으로 리모델링을 마쳤다. 이곳은 전시와 공연 대관, 주민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맞은편 옛 마을회관은 담장을 허물고 레스토랑(164.8㎡)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지역 농가에서 재배한 우리 밀을 활용한 파스타를 선보이는 ‘촌슐랭 프로젝트’다. 샘샘 덕분에 조용했던 마을이 하나의 문화 거점으로 변모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 유휴 양곡창고를 갤러리로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넓히는 구상도 그리고 있다.

농촌 유휴공간이 성공적으로 재탄생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과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저희도 처음엔 반대와 우려가 많았지만 결국 신뢰와 유대감을 쌓는 게 핵심이었어요. 주차 문제처럼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죠. 주민들이 오랫동안 창고 공터에 차를 세워뒀는데 카페 주차장이 손님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정 시간 이후에는 주민들이 편히 주차하도록 했더니 오히려 손님들에게 마을 주차 공간을 안내해줄 만큼 협조적으로 변했어요. 특히 어르신들과 소통할 때마다 면장님이 직접 나서 다리를 놓아주신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정읍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나요?
최근에는 타 지역 농협에서 “우리도 유휴 창고가 있는데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이곳에서 얼마나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청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계획이 있다고요.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어르신 100분의 이야기와 생활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전시 공간에 설치하려고 해요. 언젠가 마을이 사라지더라도 주민들의 흔적은 잊히지 않도록요. QR코드를 붙여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게 할 계획이에요. 또 시니어 패션쇼 같은 문화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이미 유행처럼 자리 잡았는데 농촌 어르신들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죠. 어르신들이 모델이 되고 청년들도 ‘촌 스타일’ 의상을 입고 함께 어울리는 축제를 만들려고 합니다. 마을을 활기차게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키워가고 싶어요.

이근하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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