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변동 K-뷰티 그 힘은 인디 브랜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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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시장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변의 진원지는 에이피알(APR). 8월 6일 에이피알은 장 초반 주가 21만 7000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시가총액은 8조 1795억 원, 뷰티업계 시총 1위에 올라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1년 6개월 만에 K-뷰티 터줏대감인 아모레퍼시픽(8월 6일 기준 7조 5163억 원)과 LG생활건강(4조 6308억 원)을 제친 겁니다.
‘전통의 강호를 제치고 왕좌에 앉은 신예’라는 구도만으로는 이번 이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두 기업의 부침이 아닌 메이저와 인디 브랜드라는 기존 체계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재구축되는 변곡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인디는 ‘독립적인’이란 뜻의 영어 단어 ‘independent’의 줄임말입니다. 인디 영화, 인디 음악처럼 대기업이나 주류 시장에 속하지 않고 설립자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방식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를 인디 뷰티로 정의합니다. 또한 시장과 소비자의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민함 역시 인디 뷰티의 특징입니다.
인디 뷰티의 세 가지 경쟁력
인디 뷰티 브랜드는 화장품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메디큐브, 탬버린즈, 메디힐, 달바, 조선미녀, 티르티르, VT리들샷, 아누아 등 다양한 브랜드 제품이 온라인 커머스와 로드숍에서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죠.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화장품 판매업체 수는 2만 7932곳, 이 중 연매출 1000억 원대 메가 브랜드가 25곳에 달합니다. 양과 질 측면에서 모두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인디 브랜드의 성장은 세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소비자의 변화입니다. 과거 소비 패턴이 모델의 유명세와 브랜드 파워에 기댔다면 이제는 성분과 제품력을 중시하는 꼼꼼한 소비가 브랜드 흥행을 견인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쌀·어성초·달팽이 점액·시카 등 차별화된 원료와 효능을 알아본 고객들은 기꺼이 입소문 전파자를 자처합니다. 다이소·올리브영 등 로드숍을 통한 판매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고객과의 오프라인 접점이 촘촘해진 영향도 있습니다. 또 디지털 네이티브인 1020세대가 누리소통망(SNS)과 인플루언서를 통한 디지털·온라인 마케팅에 익숙한 점도 홍보 예산이 부족한 신생 브랜드에 도움이 됐습니다.
두 번째는 생산 방식의 변화입니다. 이제는 화장품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잘나가는 화장품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 대신 화장품을 연구·제조·생산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의 연간 총생산 능력(CAPA)은 각각 33억 개, 10억 개에 달합니다. 글로벌 수준의 ODM 역량 덕분에 인디 브랜드는 제품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디 공식, 해외에서도 통한다
마지막은 K-뷰티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K-컬처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K-뷰티 시장 역시 보폭과 무대를 넓혔습니다. 2010년대 중국 시장에서 고가 럭셔리 브랜드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K-뷰티는 2020년대 미국·일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2024년 미국 화장품 수입 시장에서 1위인 프랑스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했죠. 같은 기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02억 달러로 세계 3대 수출국에 올랐는데 이 중 68억 달러가 중소기업 몫이었습니다. 젊은 소비자의 취향을 발 빠르게 파악해 틱톡·인스타그램 등 SNS 마케팅을 펼치는 인디 브랜드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물류센터와 현지 유통사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K-뷰티 유통 채널을 운영하는 실리콘투·아시아비엔씨 등도 생태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입니다.
소비자·생산자·환경의 변화에서 촉발된 K-뷰티 패러다임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메이저(대기업) 중심에서 인디 브랜드의 아이디어와 ODM의 기술력, 전후방 산업의 전문성이 결합한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는 겁니다. 한계도 있습니다. 뷰티 산업의 낮아진 진입 장벽에 따른 우후죽순 출시, 차별성과 제품력이 아닌 인플루언서의 유명세에 기댄 운영은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표하게 만듭니다. 이미 자리 잡은 브랜드조차 높아진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실적으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결국 답은 인디 뷰티라는 초심에 있습니다.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을 세우고 있다면 K-뷰티는 다음 물결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홍성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간지 기자.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으로 불리며 책 ‘그거 사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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