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손긔졍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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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특별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1실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전시품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다. 익숙한 우리 유물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청동 투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딴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손 선수의 삶을 조명한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는 금메달과 월계관 등 손 선수의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품 18건이 전시돼 있다. 그중에서도 2800여 년 전에 제작된 세계적 유물인 청동 투구는 관람객을 만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50년 만에 찾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이 청동 투구는 금메달을 딴 손 선수에게 주어진 특별 부상품이었지만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베를린의 한 박물관에 보관돼오다 손 선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됐다. 1986년 50년 만에 투구를 돌려받은 손 선수는 “이 투구는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1994년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정부는 해외 유물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높여준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품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평가해 1987년 투구를 보물로 지정했다.
청동 투구와 함께 전시에는 그가 받은 금메달과 월계관, 우승 상장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념 특별전 이후 14년 만이다. 손 선수의 서명이 담긴 엽서의 실물도 최초로 공개됐다. ‘1936년 8월 15일, KOREAN 손긔졍’. 시상대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그는 해방 전까지 국제대회 출전 금지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글로 사인해줬다. 손 선수는 지도자로서도 한국 마라톤에 황금기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 함기용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그가 봉송한 성화봉 뒤편으로는 그의 생전 인터뷰에서 발췌한 글이 적혀 있다. 평생 가슴 속 돌덩이로 지녀왔을, 일장기를 달고 뛴 올림픽에 대한 그의 부채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남의 나라 국기로 우승했던 내가
50여 년 후 우리 서울에서 올림픽에서 성화를 드는 것,
그것이 나로서는 베를린올림픽 우승 이상의 영광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 기쁨을 이렇게 (아이처럼 뛰면서) 표현하였다.’
손 선수의 여정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영상도 만날 수 있다. 일장기를 달고 뛴 청년 손기정의 모습부터 1947년과 1950년 미국에서 열린 보스턴마라톤에서 ‘KOREA’ 대표로 당당히 세계를 제패한 그의 제자들,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주자로 나선 노년 손기정의 모습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며 이어진다. 그날의 영광과 감동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영상은 상실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요즘 세대에게 귀중한 교육자료다. 특별전은 올해 1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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